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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김장

浮萍草 2015. 11. 11. 10:09
    조선시대에도 1960년대에도… 겨울철 최고 행사
    이진한 기자
    한민국의 11월은 김장의 계절이다. 김장은 '조선 가정에서는 겨울 동안에 음식의 큰 근본이 될 뿐 아니라 이 김장을 한번 잘못 담거노면 겨울이 다 지내도록 불유쾌하게 먹습니다'(1935년 11월 12일 자 동아일보)라고 할 정도로 겨우내 밥과 함께 먹던 반식량이었다. 겨울에 채소를 절여 먹는 풍습은 고려 이규보(1168~1241)의 가포육영(家圃六詠)에 무를'소금에 절여 아홉 달 겨울을 대비한다'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 오래됐다. 의견이 갈리지만 김장의 어원을 침장(沈藏)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조선시대에는 초기부터 궁중에 채소를 담당하는 침장고(沈藏庫)가 있었다. 조선 말 문신이자 서예가인 최영년이 지은 책 해동죽지(1925년)에서는 김장을'珍藏(진장)'조선요리학(1940 년)에서는'陳藏(진장)'으로 표기하고 있다. '김장 때에는 아홉 방 부녀가 다 나온다는 말이 있으니 이것은 좀처럼 나오지 아니하든 규중처녀도 김장 때 에는 나온다는 말'(조선요리학)처럼 궁중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겨울을 준비하는 최고의 행사이자 공동체 의식을 확인하는 축제였다.
    서울의 고급스러운 김장김치에는'양지머리 국물이나 설렁탕 국물'(1935년 11월 13일 자 동아일보)을 넣기도 했다. 날이 추운 평안도에서는 '경성보다 양념을 적게 너흐니 깨끗하고 또 국물이 슴슴하야 먹게 되면 씩씩하기 한이 없습니다'(1935년 11월 14일 자 동아일보)라는 기사 내용처럼 쨍하고 시원한 국물의 김치를 먹었고, 함경도에서는 대구나 동태를 넣은 김치를 다른 지역보다 한 달 정도 먼저 담갔다. 개성에서는 손님용으로 보쌈김치를 만들어 먹었다. '기온이 별안간 내려간 요즘 김장 걱정이 새록새록 주부들의 가슴을 태우게 되었다. 고추도 사야 하고 마늘도 준비해야 하고 젓독도 들여 놓아야 때만 되면 곧 김치를 담글 수 있었기 때문에'(1962년 10월 24일 자 동아일보)란 신문 보도에서 알 수 있듯이 1960년대에도 김장은 도시 서민들의 중요한 겨울 나기였다. 1960년대와 70년대에는 직장인들에게 김치 보너스도 지급되었고 '(이화여대)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김장을 할 때가 되면 김치방학이라는 것을 가졌다. 그들은 김장을 하면서 배추의 노란 속 고갱이를 뜯어내어 빨간 양념을 넣어 먹음직스런 쌈을 싸가지고는 볼이 터져나갈 정도로 한 입씩 집어넣는 것이었다' (1962년 7월 3일 자 경향신문). 김장 문화는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음식강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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