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한식의 탄생

[30] 막걸리

浮萍草 2015. 10. 14. 19:24
    가을이 제철인 술… 농주·탁주·재주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
    조선일보 DB
    걸리는 농주(農酒)라 불렀다. 고된 농사일에 톡 쏘는 탄산 성분이 녹아 있는 시원한 막걸리는 청량음료이자 음식이며 술이었다. 가을걷이 햅쌀은 막걸리를 담기에 가장 좋은 재료였다. 조선 문신 이산해는 '전가잡영(田家雜詠)'이란 시에서 '벼 베기는 항상 게가 살찌는 가을이라 갓 빚은 막걸리(濁醪)로 사계를 지내니 농가의 이 즐거움 해마다 있는 일 인간 세상 만호후(萬戶候)가 부럽지 않다네'라고 적고 있다. 제조 기술이 발달한 요즘도 온도에 민감한 막걸리는 가을부터 겨울이 제격인 술이다. 막걸리라는 한글이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19세기 초에 필사된'광재물보(廣才物譜)'에'濁酒(탁주)'와 함께 나오는'막걸니'다. '청구영언'(靑丘永言·1728년)에 나오는'달괸 술 막걸러'를'마구 거른 술'이란 뜻의 막걸리 초기 어형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막걸리는 한문으로 뇨(醪), 앙(醠), 리(醨)로 쓴다. 거르지 않은 탁하고 걸쭉한 술이란 뜻의 탁료(濁醪),하얀 술이라고 해서 백주(白酒),술 도수가 낮다 해서 박주(薄酒),신맛을 중화시키려 재를 넣은 탓에 회주(灰酒),찌꺼기가 있는 술이라 재주(滓酒)라 부르는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송나라 사신 서긍의'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1123년)에는'고려인들은 술을 좋아하지만 좋은 술을 구하기 어렵다. 서민의 집에서 마시는 것은 맛이 텁텁하고 빛깔이 진하다'라고 해 서민들이 탁주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1281년) 가락국기(駕洛國記)에 수로왕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요례(醪醴)를 빚었다는 기록으로 봐서 삼국시대에도 탁주를 먹었음을 알 수 있다. 막걸리는 일제 강점기의 주세 정책과 1960~1970년대의 쌀 막걸리 금지 일본식 입국(粒麴)을 이용한 막걸리 제조 등 전통 막걸리의 근본을 흔드는 격랑 속에서 만신 창이가 되었지만 최근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Premium Chosun Vol ☜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음식강산' 저자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