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세종 회장과 충무공 사장

39 위대한 과학자 장영실은 중국 출신 노예였다

浮萍草 2015. 10. 28. 21:01
    종의 통치 목적은 백성과 나라를 평안하게 하는 것이었다. 
    세종은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강해야 나라가 평안해진다.”고 하여 백성을 어떤 무엇보다 중요시 하였고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였다. 
    백성을 위하여 한글을 창제한 세종은 가뭄 등으로 백성이 농사에 힘들어 할 때에는 점심도 먹지 않았고 반찬의 수도 대폭 줄여 식사했다.
    대궐 밖에 나가 백성의 곤궁한 모습을 보면 눈물을 줄줄 흘렸다. 세종에게 있어서 백성은 하늘이고 아들과 딸이었다. 
    그러므로 세종에게 관리 임명 기준은 왕의 권력을 보좌해주고 지켜줄 수 있느냐가 아니라 백성에게 얼마나 이로움을 줄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세종은 통치 기간에 한 명의 사대부도 죽이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성품이 온유하고 총명한 군주였다. 
    그러나 세종은 관리 임명에는 단호하고 파격적이며 혁명적이었다, 세종의 시대의 과학기술 수준은 당시 세계에서 최고였다고 사학자들은 평한다.
    
    ㆍ중국인 범죄자 아들 노예도 고위 관직 임명하는 세종의 혁명적 인사
    세종이 열은 과학기술의 황금시대는 장영실이라는 위대한 과학기술자를 중용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불세출의 위대한 과학기술자 장영실은 세종에게 발탁되기 전에는 중국 출신의 노예 신분이었다. 중국인인 장영실의 아버지는 고려 말 중국에서 범죄를 짓고 고려로 도망 와서 동래현의 관기와 살다가 장영실을 낳은 것으로 추측된다. 즉 장영실은 이민족 범죄자의 아들이었고 가장 천한 노비 신분이었다. 신분질서가 가장 중요한 그 시대의 노비신분이며 제대로 배운 것도 없는 외국인 범죄자의 아들 장영실을 기술이 있다 하여 양반으로 신분을 바꾸어 주고 고관직에 임명하였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파격적인 인사였다. 1437년 세종은 대신들의 반대를 누르고 노비 출신 장영실을 종삼품 대호군에 까지 임명을 강행했다, 이것은 혁명 때에나 가능한 인사였다. 지금으로 하면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외국인 범죄자 아들을 기술이 출중하다 하여 정부 주요 부처의 국장으로 임명하는 것과 같다.
    노비출신 과학기술자 장영실(왼쪽), 장영실이 만든 혼천의. /장대성

    조일전쟁(임진왜란) 발발 14개월 전 선조가 이순신을 종4품의 진도군수 직에서 몇 일 만에 정3품의 전라좌수사로 파격적인 승진인사를 했다. 지금으로 하면 중령이나 대령을 소장급으로 특진시킨 것과 같은데 가능하겠는가? ㆍ사소한 과오 있다 있어도 능력있으면 주요 보직 기용
    황금대사헌이라는 소문은 물론 살인한 여인과 간통했다는 의심까지 받는 황희 같은 고위공직자를 요즘 대통령이 총리에 임명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초등학교 졸업장 하나 없는 장영실 같은 기술자가 정부 주요 부처의 국장으로 임명될 수 있겠는가? 현재 대한민국의 인사제도와 관행 하에서는 이순신 장군 같은 전쟁 영웅도 황희 같은 명재상도 장영실 같은 위대한 과학기술자도 나올 수 없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이승만 대통령이 일제 강점시대에 일본군 장교 출신들을 국군 창설 때 장교 임명에서 모두 제외하였다면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침략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에서 소련과 중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북한공산군을 무슨 수로 막아낼 수 있었겠는가? 친일은 민족에 대한 범죄행위니 이완용, 송병준 같은 거물 친일파들은 당연히 처단해야 한다. 하지만 해방 당시 문맹률이 90%인 상황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을 단지 친일했다고만 해서 모두 제거했다면 새로 조직된 행정부나 군대의 운영은 어려웠을 것이다. 조직 인사에서 과거의 과오를 중시하여 미래에 위대한 업적을 창출할 사람을 사소한 과오 때문에 제외한다면 조직 발전에 장애가 될 것은 당연하다.
    Premium Chosun ☜        장대성 전 강릉영동대 총장 dschang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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