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H/생로병사

역사도 삶도 바꾸는 疾病

浮萍草 2015. 9. 20. 10:18
    치통이 선사한 강인한 인상 '美 건국의 아버지' 만들었고
    히틀러 독재 성대수술로 가능… 갑상선癌은 장수에 되레 도움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질병 열심히 살라는 '백신' 아닐까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미화 1달러 지폐에는 입을 살짝 악물어 굳건한 의지를 보이는 그의 얼굴 표정이 담겨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강인한 정신을 느끼게 한다. 그런 모습은 치열했던 삶의 결과물이겠지만 아쉽게도 질병의 징표에 가깝다. 그는 영국과의 독립 전쟁을 치르면서 동시에 치통과도 싸워야 했다. 그의 치아는 썩고 흔들려서 당시 치의학 수준으로는 이를 뽑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1781년 독립 전쟁이 끝났을 때는 남아 있는 아래 어금니 쪽 몇 개의 치아와 저급한 수준의 의치를 철사로 간신히 붙들어 매고 다니는 정도가 됐다. 그리하여 워싱턴은 안면 근육을 과도하게 긴장시켜 입술을 꽉 다물고 아래 턱을 위로 달라붙게 했다. 이런 인상이 독립 전쟁 후 미국과 협상하던 영국 측 인사들에게는 미국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로 비쳤을 것이다. 그 강인함이 현재의 1달러 지폐에 박혀 있다. 워싱턴의 치통이 미국 독립에 기여한 셈이다. 워싱턴이 만약 지금 시대의 대통령 후보였다면 결코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철사 의치는 발음을 불명확하게 만들고 우물우물하게 하여 미디어 선거에서는 빵점이니까 말이다.
    물론 현재의 치과 기술 수준이라면 워싱턴이 치아를 그렇게 놔두지도 않았겠지만…. 역사적으로 의학이 정치의 주요 변수로 작용한 사례는 꽤 있다. 1935년 독일 총리 아돌프 히틀러에게는 큰 고민이 생겼다. 성대에 폴립(용종)이 생기는 바람에 목소리가 이상해진 것이다. 폴립은 성대를 혹사하여 그 마찰로 도톰한 굳은살이 생긴 것으로 보면 된다. 생명을 위협하는 암은 아니다. 성대 폴립 때문에 히틀러는 힘주어 말할 때 오리와 비슷한 목소리가 나와서 격정적이고 선동적인 연설을 할 수 없게 됐다. 당시 성대 수술 수준이 발달하지 않았고 수술을 받다가 사망하는 이도 많았다. 많은 이들이 이비인후과 수술을 앞두고 머뭇거렸다. 하지만 히틀러는 성대 폴립 제거 수술을 받았고 성공리에 마쳤다. 수술이 실패로 끝났거나 아예 수술하지 않았다면 히틀러의 연설은'도널드 덕'처럼 들렸을 것이고, 세계 역사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정복자 나폴레옹이 앓았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질병은 수십 가지다. 아메바성 농양, 비소 중독,위암,소화성 궤양,하지 정맥류 등 종류와 부위도 다양했다. 설사 나폴레옹의 병이 이보다 수가 적었고 가벼웠더라도 치료가 잘 이뤄질 수 없었다. 그가 하도 많이 전쟁을 치르는 바람에 당시 프랑스에는 제대로 남아 있는 군의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1790년대에는 의사 면허를 현금으로 살 수도 있었다니 나폴레옹이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았다면 더 위험에 처했을지도 모른다. 나폴레옹은 중년이 되면서 점점 뚱뚱해졌고 방광 결석으로 고생했다. 오줌 속 돌멩이가 방광 요도를 막아 전장에서 소변을 못 보고 펄쩍펄쩍 뛰는 상황에 부닥치곤 했다. 그는 치질로도 고생하여 그 유명한 워털루 전투에서는 치질이 항문 밖으로 탈루돼 전략에 집중할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처럼 결석과 치질이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잔병이었다면 나폴레옹의 운명도 달라졌지 싶다. 이처럼 질병과 의학은 역사도 바꾸고 개인의 인생도 흔든다. 인간의 질병과 몸의 변화는 신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중년 이혼이 여성의 폐경기에 많은 것은 복잡한 변수가 있겠지만 여성호르몬의 급격한 감소로 인한 심리적 불안도 작용했을 것이다. 자신과 상대가 그 변화에 잘 적응했다면 그렇게 고민하고 싸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러기에 몸의 변화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결정은 의학적 배경을 감안해서 이뤄져야 한다. 연인들의 사랑 유효기간이 1~2년에 불과한 것은 행복호르몬인 세로토닌의 분비 한계 탓이라는 설(說)도 있다. 이후 친밀호르몬인 옥시토신으로 대체되면 오랜 친구처럼 지내게 될 텐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 연인의 헤어짐은 신체 호르몬의 전환 실패인 셈이다. 질병이 꼭 삶의 불행한 쪽으로만 작용하는 것도 아니다. 갑상선암 환자와 암이 없는 일반인이 누가 더 오래 살까. 국내 암 등록 통계 자료에 따르면 전이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견되고 치료받은 갑상선암 환자는 오히려 암에 걸리지 않은 일반인보다 5년 후에는 더 많이 살아 남았다(갑상선암 5년 상대 생존율 100.4%). 감상선암이 아무리 생존율이 높다지만 당사자에게는 공포의 암이다. 그래서 이들은 지나온 생활방식을 바꾼다. 치열한 육식에서 차분한 채식으로 옮겨가고 바쁘다는 핑계로 거르던 운동도 챙겨서 한다. 가능하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하고, 매사를 좋게 생각한다. 그 결과로 갑상선암 환자가 암이 없는 일반인보다 오래 사는 것이다. 고령 장수 사회에서 질병은 피할 수 없다. 역사도 바꾸고 삶도 바꾸는 신체 질병을 조신하면서도 열심히 살라는 '정신 백신'으로 받아들이자.
    Chosun ☜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 기자,의사 doctor@chosun.com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