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H/생로병사

친절도 의술이다

浮萍草 2015. 12. 5. 12:05
    오래갈 병이거나 중증도 낮으면 의사의 인격을 생각해 찾아가고
    큰 수술을 해야하거나 치료하기 힘든 병이라면 의술에 무게를 두고 찾아가야
    환자·의사 기대치가 서로 맞아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족이 갑자기 아프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기 마련이다. 주변에 아는 의사라도 있으면 제일 먼저 찾게 된다. 명색이 의사 출신 기자인지라 그런 상담 요청을 제법 받는다. 한번은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와이프가 여러 관절이 아픈데 약을 먹어도 잘 낫지 않는다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통증이 한 관절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앓은 기간이 제법 되어 단순한 상태가 아닌 것으로 들렸다. 진통제만 먹어서는 될 일이 아니라고 봤다. 정밀검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평소 알고 지내던 한양대 류머티스병원 배상철 교수를 추천했다. 배 교수에게는 여차여차한 환자가 진료 예약을 했으니 잘 좀 부탁드린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고는 잊고 지냈다. 열흘쯤 후 지인한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와이프는 입원을 해 류머티스 관절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무 고마우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데 뭐하러 매일 전화까지 해가며 와이프 상태를 챙겼나. 바쁠 텐데 미안하네. 덕분에 와이프는 많이 좋아졌어"라고 했다.
    어라? 이게 무슨 말인가. 나는 솔직히 그렇게 한 적이 없었다. 배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뒤늦은 환자 안부와 함께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는 "회진 때마다 김 기자한테서 치료가 잘되는지 매일 연락이 온다. 잘해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환자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나는 겸연쩍어하며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는데, 아무튼 감사하다"고 했다. 이어진 배 교수의 말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내가 그렇게 말한 것은 김 기자 체면 세워주려고 한 게 아니야. 환자를 위해 일부러 그런 거야. 환자들은 누구나 불안한 상태가 되지. 자기가 여러 사람으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고 의료진이 자기를 챙겨주고 있다고 믿으면 심적으로 안정돼 병이 빨리 나아. 특히 류머티스 관절염 같은 만성 통증은 더욱 그렇지." 아하! 이 신선한 놀라움. 배 교수는 부탁하는 이의 얼굴도 살려주고 의뢰받은 환자의 마음도 살펴주는, 환자 민원 세계의 진정한 고수(高手)였다. "이 분야에 어느 의사가 최고야?" 다급한 환자 측이 의사를 찾을 때 제일 먼저 묻는 말이다(나이 지긋한 병원장이 무조건 최고인 줄 아는 이도 가끔 있다). 이 '최고'라는 것에 허점이 있다. 명의라고 소문난 의사 중에는 진료보다는 연구를 잘해서 이름난 의사도 꽤 있다. 명의라고 해서 꼭 병을 잘 고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연구가 올해 미국의사협회지에 실렸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일 년에 두 번 정도는 명망 있는 심장내과 교수들이 모두 참석하는 큰 규모의 심장학회가 열린다. 이 경우 심근경색증 환자에게는 당대 최고의 심장 전문의가 모인 학회장이 제일 안전한 곳이 되지 싶다. 대가들이 빠져나가고 비교적 젊은 의사들이 지키는 병원은 불안한 곳이 된다. 이에 미국 하버드대 의대 연구진이 대규모로 열린 심장학회 기간에 입원한 심장병 환자들의 사망률 10년치를 조사해서 학회가 없던 평상시와 비교했다. 결과를 요약하면 이렇다. 난도가 낮은 치료가 필요했던 환자들의 생존율에는 변화가 없었다. 반면 고난도 치료가 필요했던 중증도가 높았던 환자들의 생존율은 심장학회 기간에 되레 더 높았다. 이런 현상은 주로 교수들이 포진한 대학병원에서 일어났고, 심장학회 때만 빚어졌다. 암학회나 정형외과학회 동안에는 심장병 환자의 사망률에 차이가 없었다. 결론은 명망 있는 심장내과 교수들이 병원을 비우는 사이,중증 심장병 환자들이 더 많이 살았다는 얘기다. 젊은 교수들이 무리하지 않고 보존적 치료를 해서 오히려 사망률이 낮아졌다는 추정이다. 대가들의 명망이 주로 연구 업적에서 기인한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이처럼 명의라는 게 환자 입장에서 때론 허명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특별히 부탁받은 환자나 VIP들의 치료 결과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늘 하던 대로 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을, 뭔가 잘해줘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사달이 나기 쉽다. 뇌암이 발견된 70대 후반 환자가 있었다. 잘 낫지 않는 뇌암 종류여서 항암제나 방사선치료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그런 경우 어떤 방침이 환자에게 최선인가가 우선이다. 하지만 특별한 환자에게는 "어떻게 해주는 게 최고지?" 가 앞서게 된다. 하지 않아도 될 치료를 할 때 일을 그르친다. 가족이나 자신이 간단치 않은 병에 걸리면 물어물어 적절한 병원과 의사를 찾게 된다. 오래갈 병이거나 중증도가 높지 않다면 의사의 인격을 먼저 생각하면 된다. 큰 수술을 해야하거나 난치병이라면 의술에 무게를 두는 게 좋다. 그래야 환자와 의사, 서로 기대치가 맞다. 환자를 살갑게 대하고, 잘 낫게 하는 의사가 많으면 좋으련만. 어느 세상이나 품성과 실력, 둘 다 갖추기는 쉽지 않은가 보다.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 기자,의사 docto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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