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H/생로병사

1번, 35번, 141번… 메르스가 낳은 '번호 인간'

浮萍草 2015. 7. 26. 10:51
    그들도 각자 인생이 있는데 메르스 세상선 번호로 통용
    자신·가족·사회 지키기 위한 고독 견딘 이타적 시민의식이 전염병 극복할 힘 불어넣어
    격리 이겨낸 이들에게 격려를
    ▲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르스 파동이 시작된 뒤 어느 날부터 신문과 방송마다 메르스 확진 번호가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1번은 국내 최초 메르스 환자고, 14번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수퍼 전파자다. 35번은 메르스 감염자로 박원순 서울시장과 한판 붙은 삼성서울병원 의사다. 141번은 검사 결과를 기다리라는 의료진의 말을 메르스 진료를 안 해주는 것으로 오해하고 응급 진료소를 뛰쳐나간 무개념 환자로 꼽힌다. 그 외에도 많은 환자가 메르스 번호로 표기됐다. 번호를 들으면 어떤 상황에 놓인 그 환자가 떠오른다. 사람마다 각자의 인생과 삶이 있었을 텐데 전염병 세상에서는 간단하게 번호로 통한다. 182명의 '번호 인간'을 통해 우리 사회는 1만명이 훌쩍 넘는 격리자가 나왔다. 역사적으로 전염병 관리에서 대규모 격리가 시작된 것은 흑사병(黑死病)으로 불리는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던 1347년 무렵이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시칠리아 섬이나 지중해 일대의 섬에서 들어온 배들을 통해 페스트가 퍼진다는 것이 감지됐다. 이에 베네치아 시(市)정부는 항구로 들어오는 모든 배를 강제로 정박시키고 아무도 내리지 못하게 했다. 선원들을 40일간 그 배 안에 가둬놨다. 그 기간 배에서 페스트 환자가 안 나오면 그제야 항구를 열었다. 여기서 40일은 잠복기와 같은 의학적인 근거를 갖고 정한 것이 아니었다.
    왜 40일로 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악마로부터 유혹을 받아 사막을 방황한 기간에서 따왔다고 하기도 하고,히포크라테스가 했던 방식이라는 말도 있다. 그 당시는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한 개념조차 희박할 때였다. 어찌 됐건 격리를 영어로 '콰란타인(quarantine)'이라고 하는데, 그 어원은 이탈리아어로 '40'이라는 뜻에서 비롯됐다. 그 이후 대규모 전염병이 생길 때마다 집단 격리가 등장했다. 격리 장소로는 차단이 쉬운 섬이 애용됐다. 1840년대 아일랜드 대기근을 피해서 10만여명의 아일랜드인이 캐나다로 이민 올 때 발진티푸스 전염병도 따라왔다. 그러자 캐나다 정부는 패트리지라는 섬에 아일랜드 이민자 1만여명을 가두고 격리했다. 이후 전 세계 곳곳에 전염이 돌 때마다 '격리 섬'이 등장했다. 우리나라가 1916년 한센병 환자를 소록도에 모아 치료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격리는 일종의 강제적 징벌이었던 셈이다. 그런 심리적 각인 때문인지,이번 메르스 파동 때도 많은 사람이 메르스 낙인과 격리가 두려워 메르스 발생 병원을 방문했던 사실을 숨기는 일이 빚어졌다. 자택 격리를 권고받았음에도 이탈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사례도 빈번했다. 격리가 주는 고통과 두려움, 그로 인한 사회적 편견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2003년 당시 사스(SARS·중증호흡기증후군)가 싱가포르를 강타했을 때 고촉통 총리가 낸 대(對)국민 담화문은 그 내용을 그대로 지금의 대한민국에 옮겨놔도 될 정도로 우리의 상황과도 맞아떨어진다. 요지는 이렇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전염병 관리 규칙과 지침을 지켜야 우리는 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사스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못합니다. 만일 열이 난다고 해서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옮겨다니면 그동안에 당신은 가족들이나 친구들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의사에게 모든 사실을 말해야 합니다. 당신이 여행을 갔다 온 사실을 숨기지 말아야 합니다. 자택 격리 명령을 받은 일부 국민의 행동을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택 격리는 일반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자택 격리를 당하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그 가족들도 보호하는 것입니다. 자택 격리를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싱가포르의 사스 대응과 격리는 한국 메르스에도 여전히 유효했다.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이번에 메르스 잠복기 2주간의 격리를 겪은 사람들은 모두 격리의 고통을 호소했다. 감염의 불안감 때문에 열이 나지 않는데도 열이 나는 듯한 노이로제 증세에 시달렸다. 같은 집 안에서도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감옥 속의 감옥과 같은 생활이었다고 말한다. 메르스 환자 발생 병원의 의료진은 격리 생활 동안 마치 자신이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감염 관리 부실에 대한 세상의 비난이 자기에게 집중된 듯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러저러한 격리의 고통을 참고 버틴 성실한 이타적 시민의식이 그들에게 있었다. 대다수의 착한 격리자가 있었기에 우리 사회는 앞으로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을 극복할 힘을 얻었다. 산술적으로 각각의 격리자 한 명이 5000명씩을 메르스 공포로부터 구한 셈이다. 우리는 언제고 누구나 다시 '전염병 번호 인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연대와 시민의 협조가 있다면 신종 바이러스가 가져오는 집단적 위협을 물리칠 수 있다. 격리는 여전히 최고의 무기다. 격리를 지킨 시민에게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내자.
    Chosun ☜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 기자,의사 doctor@chosun.com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