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 맛 세상

요리사 全盛 시대

浮萍草 2015. 6. 11. 09:24
    요리를 생계수단으로 대했던 과거 '技能人' 요리사에 비해
    요즘 셰프들은 새 음식 창작과 준수한 외모로 위상 높였지만
    放送에만 혼 뺏긴 몇몇을 보면 투박했던 '옛 주방장'이 그리워
    김성윤 문화부 기자
    식 분야 취재를 맡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서울의 한 특급호텔 주방장을 인터뷰할 일이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호텔 주방장이 가족에게 해주는 특별한 음식에 대해 듣고 만드는 법을 소개하는 기사를 기획했다. 일반인들은 '호텔 요리사라면 집에서도 별미를 해 먹을 것'이란 환상을 흔히 갖는다. 기자도 그랬다. 보통 사람은 평소 먹지 않는 색다르고 이국적인 음식 이야기를 잔뜩 들으리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인터뷰는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집에서 가족들에게 어떤 음식을 만들어 주시나요? 호텔에서 손님들에게 내는 요리?"(기자) "집에서는 요리 안 해요."(주방장) "네? 네…. 그럼 주말 쉬는 날에는 뭘 드세요?"(기자) "사 먹어요."(주방장)
    "아 네…. 그럼 외식은 주로 뭘 하세요? 파스타? 스테이크?"(기자) "고기 먹어요."(주방장) "고기요? 어떤 고기 요리를 주로 드세요?"(기자) "소고기요."(주방장) "그럼 자주 가는 단골 고깃집이 있나요?"(기자) "아니요. 멀리 가기 귀찮아서 그냥 집 앞 가까운 데 가요. 우리집 아파트 상가에 있는 고깃집요."(주방장) 이날 취재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원했던 답변을 듣지 못했다. 기사로 쓸 만한 내용이 없었다. 결국 이날 주방장을 취재한 내용은 전부 버리고 방송에 자주 출연하는 요리연구가를 급하게 다시 인터뷰해 기사를 써야 했다. 과거 요리사들은 대개 이랬다. 요리는 그저 생계수단일 뿐이었다. 요리사가 되고 싶어 선택한 경우는 드물었다. 집안 형님이나 고향 친구가 서울의 식당에서 일하고 있어서 우연히 주방에서 일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요리사는 별로 없었다. 식당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자기 대(代)에서 끝내겠다는 주인이 많았다. 자기가 만든 음식을 즐기는 요리사는 드물었다. 특히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서양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들은 제대로 요리가 됐나 확인하기 위해 맛을 보기는 했지만 그걸로 식사를 하지는 않았다. 선배 혹은 요리학교에서 배운 대로 똑같은 맛을 내기만 하면 충분했다. 세상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나만의 독창적인 요리를 만들겠다는, 그러니까 요리를 창작으로 접근하는 요리사도 별로 없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과거 한국의 요리사들은 스스로를 단지 근로자 내지는 기능인(技能人)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그러니 자동차공장 직원이 집에서 자동차를 조립하지 않듯, 호텔 주방장이 집에서 요리하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취재를 요청하면 귀찮아했고, 겨우 설득해서 인터뷰를 하면 썰렁한 단답형 대답이라서 기사 쓰기가 어려웠다. 이러니 어쩌다 외국 요리사를 취재하게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일단 '사진이 되는' 외모인 데다 말들도 잘했다. 화가나 작가, 건축가를 만났을 때처럼 음식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술술 쏟아냈다. 식당 주인 겸 주방장인 오너셰프(owner chef)가 대부분이라서 식당 홍보를 위해 취재에도 적극적으로 응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한국 요리사들이 외국 요리사들처럼 바뀌었다. 맛, 음식, 맛집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선택에 의해 요리사가 된 사람이 늘어났다. 집안 좋고 학벌 좋은 '엄친아' '엄친딸'들이 요리사가 되려고 해외 유명 요리학교로 유학을 다녀왔다. 과거 요리사들은 조리복을 벗으면 그냥 평범한 아저씨였다. 요즘 요리사들은 헤어스타일부터 튄다. 옆·뒷머리는 확 밀고 윗머리는 길게 놔둔 최첨단 '투블록커트(two block cut)'를 뽐내는가 하면, 팔뚝에 커다란 문신을 새기기도 한다. 물론 이 문신은 조폭의 그것처럼 남들을 겁주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또 다른 액세서리다. 식당 바깥에서 만나는 요리사들은 몸에 잘 맞는 맞춤양복을 빼입고 나타난다. 옷맵시뿐 아니라 얼굴도 연예인 뺨치는 '얼짱 셰프'는 수많은 팬을 거느린다. 이들에게 요리란 단순한 직업을 넘어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다. 한국의 전통 식재료를 프랑스 테크닉으로 재해석하는 등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요리를 개발하기 위해 애쓴다. 이런 노력은 이른바 '모던 한식'이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한식으로 꽃피우고 있다. 방송에서 음식 관련 프로그램이 꾸준히 증가해왔지만 특히 올 들어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에 맞춰 요리사들도 엄청나게 등장하고 있다. 요리방송뿐 아니라 예능프로에도 한두 번 나오는 게스트가 아니라 고정으로 출연한다. 스케줄을 챙겨주는 매니저와 소속사도 있으니 '연예인 같은 요리사'를 넘어선 '연예인 요리사'라고 불러야 할 듯싶다. 요리사로 방송에 나와 성공을 거둔 후 식당은 하지 않고 방송에만 출연하는 '요리사 출신 연예인'도 생겼다. 요리사들이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건 나쁘지 않다. 요리사의 위상을 높이고 우수한 젊은 인력을 요리업계로 끌어들이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하지만 요리사가 요리를 잘해서가 아니라 방송을 잘해서 뜬다는 건 아쉽다. 청소년들이 단지 유명해지고 싶어서 아이돌을 지원하듯 요리사를 지원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호텔리어, 미술관 큐레이터 등 인기 있다 싶으면 끌어다가 소모해버리는 방송에 요리사들이 이용되는 건 아닌가 걱정되기도 한다. 과묵하게 요리만 하던 촌스러운 '아저씨 요리사'들이 가끔은 그립다.
    Chosun ☜       김성윤 문화부 기자 gourme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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