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달팽이 박사의 생명 이야기

여름감자에 새끼감자가 조랑조랑… 놀라운 종족보존의 힘

浮萍草 2015. 8. 15. 11:28
    봄에 파종해 장마 전에 수확하는 감자를 하지감자라 한다. 그런데 올해 내 감자 농사는 하도 가뭄을 타 실농(失農)이었다. 그래도 포기마다 죽기 살기로 후사(後嗣)를 잇겠다고 새알만 한 것을 한두 개씩 매달고 있었다. '감자밭에서 바늘 찾는다'는 건 아무리 애써도 성과 없는 헛수고를 이르는 말이다. 또 막 굽거나 찐 감자를 먹고 싶으나 그야말로 너무 뜨거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일러'뜨거운 감자(hot potato)'라 한다지. 서둘러 씨감자를 사왔다. 농사는 과학이요 예술이다. 맨 먼저 잘 드는 칼을 가스불에 달궈 혹시 모를 바이러스나 세균을 죽인다. 감자 한쪽 끝자락에 촘촘히 붙은 자잘한 눈들은 몽땅 가로로 잘라버리고 몸통에 띄엄띄엄 나 있는 싹눈이 한두 개씩 들게 두세 조각을 낸다. 그래야 몇 안 되는 줄기가 한결 튼실하고 굵은 감자알이 열린다.
    하루 이틀 그늘에 두어 잘린 자리의 끈끈한 속진이 꺼덕꺼덕 마르면 잘 일군 밭에 심는다. 어느새 통통한 연두색 감자 순이 흙 더께를 밀고 올라왔다. 궁금증이 동하여 흙살을 걷어내 본다. 그럼 그렇지! 벌써 하얀 실뿌리를 어미감자 잔등에 사방팔방으로 내렸고 놀랍게도 좁쌀만 한 감자새끼들이 이미 매달렸다! 감자는 남미 안데스 산맥 지대가 원산지다. 같은 가짓과(科)에는 고추·토마토·담배·꽈리 따위가 있다. 무엇보다 이것들의 꽃이 서로 빼닮았으니 유연관계(類緣關係)가 가까운 생물일수록 생식기도 흡사하다. 그런데 감자는 줄기가 변한 덩이줄기(괴경·塊莖)이고 고구마는 뿌리가 변한 덩이뿌리(괴근·塊根)며 감자덩이는 매끈하면서 뿌리가 따로 나는데 고구마덩이는 자체에 잔뿌리가 더덕더덕 붙어 있지 않던가. 6월이 되면 긴 꽃대가 너푼너푼 올라와 별꼴의 감자꽃이 온 밭에 흐드러지게 핀다. 샛노란 5개의 수술이 암술 하나를 둘러싸고 다섯 갈래로 갈라진 꽃잎은 품종에 따라 흰색·자주색·붉은색으로 달린다. 감자꽃도 애써 따줘야 감자덩이에 양분이 쏠려 알이 굵다랗다. 스치기만 해도 감자잎 줄기에선 고약한 냄새가 난다. 그리고 감자움싹이나 빛에 새파래진 감자에는 알칼로이드 물질인 솔라닌(solanine) 차코닌(chaconine) 같은 자기 방어 물질(독성)이 있어서 두통·설사·경련을 일으키므로 먹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딴것들은 범접도 못 하는데 유별나게 28개의 등짝점이 난'큰이십팔점박이무당벌레'만 달려들어 잎을 마구 갉아먹는다. 무당벌레면 다 진딧물을 잡아먹는 줄 알았던 내가 바보지. 감자는 세계적으로 쌀·밀·옥수수 다음으로 많이 재배, 생산된다. 감자는 밥거리는 물론이고 소주나 당면을 만들며 감자떡·부침개·조림·튀김·전·국·샐러드 등 쓰임새가 무지 많다. 절미(節米)하느라 그랬었지. 곱삶이 보리밥 밥사발에서 애 주먹만 한 감자 한 톨을 젓가락으로 쿡 찍어 들어내면 정말이지 땅 꺼짐처럼 뻥 뚫린다. 그리고 날이면 날마다 싹, 싹, 싹, 감자껍질 벗기느라 멀쩡한 숟가락이 닳아빠져 한복판이 움푹 파인 모지랑숟가락이 되고 만다. 물렁한 감자가 야문 쇠를 먹다니!? 누군가가 여름감자 몇 알을 신문지에 싼 채 부엌 한구석에 처박아 두었단다. 깜박하고 있다가 이듬해 늦봄에야 알아차리고 퍼뜩 열어보았더니만 뽀얀 실오라기 뿌리들이 타래로 뒤엉켰고 놀랍게도 군데군데 콩알만 한 새하얀 새끼감자가 조랑 조랑 매달렸더란다. 얼마나 햇빛, 물이 그리웠을꼬. 이렇듯 생물들은 하늘이 무너져도 새끼치기를 하려 든다. 이렇게 종족 보존의 비원이란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을!
    Chosun ☜       권오길·강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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