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달팽이 박사의 생명 이야기

비가 반가워서? 비오면 지렁이가 땅위로 나오는 슬픈 사연

浮萍草 2015. 6. 20. 08:40
    밤에 비가 억수로 왔다. 마당에 지렁이들이 너저분하게 널브러져 있다. 지렁이〈사진〉는 축축한 살갗 아래에 있는 모세혈관의 헤모글로빈이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교환시키는 피부 호흡을 한다. 지렁이들은 밤새 땅굴(집)에 흘러든 빗물에 숨이 가빠 참다 못해 가까스로 도망 나왔다. 따라서 그들은 물난리를 만난 수재민인 셈이다. 지렁이는 시골에선 거생이·거시라고 하고, 한자어로 구인(蚯蚓)·지룡(地龍)으로, 지룡에 접미사 '이'가 붙어 지렁이로 불리게 되었을 것이라 한다. 그리고 지렁이는 여러 개 고리 모양의 둥근 몸마디(환절·環節)로 되어 있어 갯지렁이·거머리와 함께 환형동물 (環形動物)이라 한다. 흔히 보는 대표 지렁이인'붉은지렁이(Lumbricus terrestris)'는 보통 100~175개의 몸마디에 몸길이는 12~ 30㎝이다.
    지렁이의 피부가 적갈색인 데 비해 좀 맑은 색을 한 부푼 고리 띠(환대·環帶) 하나가 몸통의 앞쪽(1/3지점)에 나 있다. 환대가 치우쳐 있는 쪽이 앞(입)이고 그 반대 뒤편에 항문이 있다. 꼬마 지렁이는 생식기관인 환대가 생기지 않아 앞뒤 구별이 쉽지 않다. 살갗은 질깃한 큐티클(cuticle)이고 여느 무척추동물과 마찬가지로 뼈가 없는데도 일정한 모양을 갖춘다. 이는 체액으로 이뤄진 유체골격(물뼈) 때문인데 물이 든 풍선이 단단하고 팽팽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몸을 둥그렇게 둘러싼 환상근(環狀筋)과 길게 뻗은 종주근(縱走筋)의 수축·이완으로 연동(�動)운동을 한다. 사람의 소화관도 꿈틀거림으로 음식을 소화액과 섞어 내려 보낸다. 또 각 체절 양편에 제각기 2쌍의 까끌까끌한 센털(강모·剛毛)이 뒤로 살짝 젖힌 채로 나 있어 땅바닥이나 굴에 그것을 틀어박아 받쳐주기에 뒷걸음질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문지 위에다 지렁이를 놓고 뒤에서 잡아당기면 스르륵 소리를 내면서 잘 쓸리지 않지만 앞을 끌면 미끄러지듯 당겨진다. 지렁이는 암수 생식기관이 모두 있는 암수한몸이지만 반드시 다른 개체와 짝짓기하여 정자를 맞교환한다. 두 마리의 지렁이가 몸 앞부분의 배 바닥을 맞붙여 서로 정자를 주고받은 후 각자 환대보자기로 자기 난자와 받은 정자를 싸서 수정시킨 후 땅에 파묻는다. 그런데 식물도 자가수분을 기피한다. 암수한그루인 양성화에서 제 꽃에서나 같은 그루의 다른 꽃끼리도 수분·수정하지 않으니 이를 자가불화합성(自家不和合性)이라 한다. 하여튼 생물들이 근친교배(교잡)를 꺼리고 피한다는 우생학을 동식물에서 배웠으니 정녕 그들은 우리 선생님이다. 지렁이가 먹은 토양 미생물, 식물 부스러기, 동물 배설물들이 거무튀튀한 똥거름이 되어 흙을 걸게 하고, 또 땅을 들쑤셔 공기 흐름을 좋게 만들어 식물 뿌리 호흡을 돕는다. 하여 다윈은 지렁이 굴을 '흙의 창자(intestine of soil)'라 불렀다. 지렁이가 우글거려야 건강한 땅이다. 게다가 지렁이에서 룸브로키나제(Lumbrokinase) 같은 혈전용 약을 얻고 토룡탕(土龍湯)으로 식용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지렁이는 두더지·새 등 수많은 동물의 먹잇감으로 엄청나게 중요한 자연생태계의 먹이사슬 고리요 먹이그물코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다.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이고, 힘이 약해 보여도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누구나 저마다의 가치를 가진 법이니 말이다.
    Chosun ☜       권오길·강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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