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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끝] 태릉선수촌

浮萍草 2015. 8. 7. 07:00
    태릉선수촌장 지낸 '탁구 여왕' 이에리사 議員
    "내가 선수 땐 욕실도 하나뿐… 바가지로 물 퍼서 씻어"
    ▲  여성 최초로 태릉선수촌장을 지낸
    ‘탁구 여왕’이에리사 의원.이덕훈 기자
    '탁구 여왕' 이에리사(현 새누리당 의원·61)가 태릉선수촌에 처음 들어간 건 1969년이었다. 중3 때인 1966년 전국남녀종합탁구선수권대회에서 자신보다 7~8세 나이가 많은 성인 선수들을 모두 꺾고 우승을 거둔 뒤 였다. 이때부터 이에리사는 '종합선수권대회 7연패(連覇)'의 기록을 달성했다. 1973년 당시 공산권이었던 유고 사라예보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단체전 우승을 이끌며 그는 국민들의 뇌리에'사라예보의 전설'로 남았다. 지금도 이 의원의 이메일 아이디는 '사라예보1973'이다. 1960년대 태릉선수촌의 여건은 열악하기만 했다. 목욕탕은 하나밖에 없었다. 저녁 6시에 운동이 끝나면 여자 선수들은 탕에 미리 받아 놓은 온수(溫水)를 바가지로 퍼가며 샤워를 마쳐야 했다. 한겨울에 물이 동나거나 식으면 제대로 씻기도 어려웠다. 지급받은 유니폼도 긴 운동복 1벌,짧은 옷 2벌이 전부였다. 국제대회가 열흘 넘게 계속되면 제대로 빨래를 못해 땀에 절어서 종잇장처럼 빳빳해진 운동복을 입기 일쑤였다. 그는"당시엔 그 옷을 다시 입고 뛰었지만 지금은 선수마다 5~10벌씩은 지급한다"면서 웃었다. 그는 2005년 여성 최초의 태릉선수촌장이 됐다. 부임하자마자 오랫동안 맘속으로 벼르던 선수촌 시설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남녀 공용 화장실도 그제야 사라졌다. 2007년 말에는 여자 숙소 확충을 위해 후배 선수들을 이끌고 문화재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당시 선수촌 식당 건물을 여자 선수 숙소로 리모델링하려고 했지만 문화재청이'태릉은 문화재'라는 이유로 불허하자 시위 끝에 허락을 얻어냈다.
    내년으로 50년을 맞는 태릉선수촌은 철거 논란에 휩싸여 있다. 태릉이 조선의 다른 왕릉 39기와 함께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이후,문화재청은 조선 왕릉의 원형 복원을 위해 선수촌을 철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태릉이 세계에 내놓을 만한 한국 고유의 문화 유산이듯,태릉선수촌 역시 선수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는 자랑스러운 근현대 문화 유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태릉선수촌을 확장이나 증축 없이 지금 그대로 사용하고 충북 진천에 건립 중인 선수촌을 '제2 선수촌'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Premium Chosun ☜       김성현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danp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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