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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조카를 죽인 잔인한 수양대군이 수학에 능통했다는데

浮萍草 2015. 8. 11. 12:30
    ▲  영화 관상 속 수양대군(이정재). /영화 관상 스틸컷
    우 이정재가 세조의 역할을 했던 영화 ‘관상’에서 세조(世祖·1417~1468)는 무인이고 잔인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과연 세조는 잔인했고 학문과 거리가 먼 인물이었을까? 기록을 살펴보면 실록에 ‘문학(文學)과 활쏘기와 말타기가 뛰어났으며 역학(曆學)·산학(算學)·음률(音律) ·의술(醫術)·점[卜]·기예(技藝)의 일에 이르기까지 말할 수 없이 빼어나고 훌륭하였다’라고 기록됐다. 세조는 전형적인 무인이라기보다는 인문과 자연,두 방면에 두루 적합한 통합형 인물로 생각된다. 어릴 때부터 민간(民間)에서 자라 민초들의 삶을 겪어 알고 있었고 활과 화살을 몸에 지니고 다니며 매사냥을 즐긴 것으로 보아 무인의 기질이 보인다. 그렇다면 수학에 대해서는 어땠을까? 실록에 세종이 장자인 문종과 더불어 역법(曆法)에 대해 말할 때“역법은 깊은 미도(味道·철저하게 사고 하면서 목적하는 바에 이름)가 있어야 하니 수양대군(首陽大君)에게 맡기면 능히 이를 알 것이다. 수양대군은 학문에 매우 정통한 사람이다” 라고 했다. 이로 미뤄보아 보아 수양대군 즉 세조는 수학을 잘 알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역법은 천문학인데 그것은 ‘하늘을 계량하는 수학’이다. 이뿐 아니라 비파와 피리를 보통 이상으로 연주했다는 기록도 실록에 등장한다. “수양 대군이 만약 비파(琵琶)를 탄다면 능히 쇠약한 기운도 다시 일게 할 것이다”라는 기록도 나온다. 세종의 부인이자 수양대군의 어머니인 소헌황후는 수양대군이 검소하고 여색 때문에 덕을 잃은 적이 없다고 칭찬했고‘정대(正大)한 사람’이라고 수양대군을 일컫는다. 그러나 세조는 많은 사람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는 점이 먼저 부각되고 있으니,그의 정치역정 때문에 박학한 면모가 가려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선시대 이조(吏曹)는 6조 중 으뜸이다. 지금의 행정자치부로서, 공무원들의 인사, 관리 평가, 성적 관리 등을 총괄 집행하는 부서이다. 그런 이조에서 세조의 나이 만 43세 되는 해인 1460년 6월 16일에 계(啓)를 올린다. 계(啓)는 임금에게 올리는 글을 말하는데 그 글을 보고 임금이 결재 후에 해당부서는 시행을 한다. 세조는 즉위 직후에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의정부의 서사제(署事制)를 폐지하고 육조 직계제(直啓制)를 시행 하였다. 이 계(啓)는 아주 긴 장문의 보고서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수학과 관련되어 있다. 내용을 살펴보자.
    ㆍ이조(吏曹)에서 아뢰기를,
    ▲  조선 태조에서 철종까지 472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편년체(編年體) 사서 조선왕조실록. /한국고전번역원

    “지금 수학과 천문을 담당하는 총 책임자인 역산 제조(曆算提調)에게 임금님이‘역산생도(曆算生徒)에게 권려(勸勵)하고 징계(懲戒)하는 법(法)을 말씀하셨으나, 자못 모자라는 점이 있다.’ 하셨으므로, 지금 다시 마련하여서 아룁니다. (중략) 우리나라는 멀리 바닷가에 있어서 수학책을 구할 수 없었으며 수학을 알지 못하는데 또 어찌 천문학을 알겠습니까? 우리 세종(世宗)께서는 역법(曆法)을 잘 알지 못함을 탄식하고 생각하시어 수학과 천문학책을 널리 구하였는데 다행히 (중략) 여러 수학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호조의 서운관(書雲觀)의 습산국(習算局)·호조(戶曹)에서 전곡(錢穀)과 회계(會計)의 출납(出納)을 감시·감독하던 산학 중감(算學重監) 등에서 한 사람도 책의 내용을 아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수학을 공부하는 관청을 두고 문신(文臣) 3~4인과 전문 수학관료 등에게 명하여 먼저 산법(算法)을 익히고 역법(曆法)을 공부하게 했더니 몇 년 안에 산서(算書)와 역경(曆經)을 모두 통달했습니다. 그리고 후세(後世)에 전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역산소(曆算所)를 설치하고 훈도(訓導) 3인과 학관(學官) 10인이 산서(算書)와 역경(曆經)을 항상 익히게 하고, 매일 장부(帳簿)에 적어서 열흘마다 수학에 관한 취재(取才)시험을 보아서 부지런한 자를 권장하고 게으른 자를 징계하여 학업(學業)을 연마하게 하였기 때문에 수학을 아는 자가 잇달아 나왔습니다. (중략) 원컨대 지금 다시 장려하고 권장하는 은혜를 베푸시어, 사람마다 열심히 학업(學業)에 힘쓰도록 하여서 업적을 이루도록 하소서. 그러나 현재 호조의 수학을 담당하는 관료들은 승제법(乘除法)을 조잡하게 익힐 뿐이요 입방개법(立方開法)을 오히려 알지 못하는데, 어찌 승방(三乘方)·4승방 (四乘方)을 능숙하게 알아서 9승방(九乘方)의 풀이와 방정(方程) ·정부 ·개방(開方) ·석쇄(釋鎖)·도고(度高)·측심(測深)·중표(重表)·누구(累矩)·3망(三望)·4망(四望)· 구고(句股) ·중차(重差)를 알겠습니까? (중략) 일찍이 임기가 끝난 사람과 금후로 임기가 끝나는 사람 가운데 만약 학업에 부지런하고, 일하는 바가 뛰어나 동반(東班)에 쓸 만한 자는 의서(醫書)를 습독(習讀)한 것처럼 높은 벼슬로 추천(推薦)해서 임명하소서. (중략) 전문 수학관료인 역산 훈도(曆算訓導)는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여 가르치기에 부지런히 힘쓰지만 30개월이 지난 뒤에야 서반직(西班職)을 제수하기 때문에 싫어하고 꺼립니다. 지금부터 (중략) 동반(東班)에 등용하소서. (중략) 역산 훈도(曆算訓導)·학관(學官) 중에서 등급에 따라 높고 낮음을 생각치 말고 현직을 떠난 문무관에게 계속하여서 벼슬을 내리소서. (중략) 학업에 부지런하고 일하는 바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 동반(東班)으로 임용할 만한 자는 서울과 지방에서 재주에 따라서 쓰고, 현직을 떠난 문무관에게 계속하여서 벼슬을 내릴 때에 성적을 매기는 일과 훈도(訓導)·학관(學官)을 등급에 따라 보충하여 임명하는 일을 명령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②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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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3대 수학王은
     계(啓)는 조선 전기의 수학에 대한 자료로 대단히 중요하다. 
    세조가 읽은 이 글은 우선 수학을 익히기 위한 세종의 노력을 이야기하고 현재의 상황을 진단한다. 
    마지막으로 호조의 전문적인 수학자 집단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구체적으로 보면 이 계(啓)는 세종이 공부했던 수학책 ‘산학계몽’의 서문의 일부를 인용하고는 우리나라에서 수학책을 구하는 일이 매우 어려웠던 상황을 보여준다. 
    그런 역경을 딛고 세종 대에 수학의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음을 잘 나타낸다.
    이어서 세종 때는 고차 방정식(方程式負)을 풀고, 세제곱근을 구하는 방법도 알았는데,요즘 수학자들은 곱하고 나누는 법(乘除法)만 조잡하게 익힐 뿐이고, 겨우 
    기초적인 계산법과 이차방정식의 제곱근만 구할 줄 알아서 연립일차방정식(方程正負)과 방정식의 구성,다항방정식의 근을 구하는 방법(開方)을 제대로 이해 못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세종대에 수학을 제대로 연구해서 수학과 천문학에 능통하게 되었으나,세조대에 이미 간단한 승제법만 사용하고 세제곱근도 제대로 구할 수 없게 되어 1
    0제곱근, 일차연립방정식 양수와 음수를 이용한 방정식 계산,다항방정식의 근을 구하는 방법,직각삼각형과 그것을 이용한 측량 등을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수학교육이 시급함을 표현하였다.
    나라의 수학실력의 쇠퇴를 근심하는 진정이 담겨있는 이 보고서를 이조에서 세조에게 올린 점이 흥미롭다. 
    일반적인 경서와 다른 전문적인 ‘고등 수학’의 용어가 등장하고 세조는 이 글을 이해하고 명령을 내린다. 
    즉, 이런 글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세조는 수학에 조예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임금이 이해하지 못하는 글을 올린다면 그 글은 임금을 욕보이는 결과가 될 것이다. 
    세조 6년이면 사육신 이후 4년 뒤이다. 
    세조의 말 한마디에 조선의 산천초목이 벌벌 떨었던 시기이다. 
    이런 시기에 이 보고서는 그 당시의 수학자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였으리라. 
    이 계(啓)는 왕이 수학을 잘 이해함을 보여주고 수학공부를 안하는 것을 질타했던 역사의 기록이다.
    .조선의 수학은 네 개의 축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임금들과 양반수학자들, 호조의 전문 수학자 집단 그리고 벼슬과 신분에 관계없는 재야의 고수들이 그것이다. 
    임금들의 수학은 세종과 세조 그리고 정조로 대표된다. 
    국력은 정확히 최고위층의 수학의 이해도와 비례하고 다른 여러 문화의 황금기를 불러온다. 
    그리고 백성들의 삶은 나아진다.
    세조는 결코 야만적이고 무식하지 않았다. 10제곱근과 직각삼각형을 이용한 측량까지 이해한 정도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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