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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학’- 공무원 승진 시험과목으로 들어가다

浮萍草 2015. 8. 11. 08:00
    ▲  평판측량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조선일보DB
    종이 그 어려운 수학책 ‘산학계몽’의 문제를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풀어서 공부한지 13년이 흘렀다. 훈민정음이 완성된 1443년,그해 세종은 그동안 공부해온 수학에 대한 자신의 속마음을 자신 있게 드러낸다. 실록에서 마흔여섯 살의 원숙한 임금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산학(算學)이 비록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술이나 방법일 뿐이라 하겠지만 국가의 중요한 일을 처리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역대 왕조들도 수학에 관한 것들을 모두 없애지 않았다. 정자(程子)·주자(朱子)같은 유학자들도 수학만을 온 마음을 바쳐 공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당연히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요즈음에 논밭의 등급을 매기기 위해서 측량할 때에 만약 이순지(李純之)·김담(金淡)같이 수학을 잘 아는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쉽게 측량할 수 있었겠는가?" “이제 이런 국가의 사무에 필요한 중요한 수학을 관리들에게 미리 공부하여 익히게 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는지 의논하여 나에게 말하여라.”하시니, 도승지 이승손 (李承孫)이 아뢰었다. “과거에 합격한 후,승진시험을 볼 때 그 승진시험 과목 중의 하나인 ‘가례(家禮)’과목을 빼고 ‘산술(算術)’과목으로 대체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임금이 말씀 하셨다. “집현전(集賢殿)의 학자들로 하여금 이런 방법이 어떤 문제가 없는지 살펴서 나에게 말하여라.”하셨다. 세종은 우선 수학이 필요한 이유를 간단하게 승정원(비서실)에 이야기 한다. 그런 다음 관료들도 수학을 공부하게 할 방법을 묻는다. 그러자 세종의 마음을 잘 아는 도승지 이승손(李承孫,1394~1463)은 그 방안으로 공무원 승진시험 과목에서 ‘가례’를 빼고 ‘수학’을 시험보자고 제안한다. 세종은 이런 예가 옛날에 있었는지 집현전에게 물어보라고 다시 말한다. 집현전은 부지런히 그 예를 찾아 아뢰고 공무원 승진시험에 수학과목이 들어가게 된다. 33살의 왕(세종 12년, 1430년)이 수학을 공부한지 13년이 지난 후 이제는 거꾸로 신하들이 수학을 제대로 공부하게 되는 순간이다. 예나 지금이나 어떤 과목을 공부시키기 위한 강력한 수단은 그 과목을 시험에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지껏 시험과목이었던 ‘가례’를 빼고 대신 ‘수학’을 집어넣은 것이다. ‘가례’란 관·혼·상·제에 필요한 행위규범인데 이것을 빼고 대신 ‘수학’을 시험과목에 넣는다는 것은 유교국가인 조선에서는 충격적인 일대 사건이다. 조선이 완성한 동•서양 천문 역산의 결정판인 ‘칠정산내외편’,농업을 위한 ‘측우기’,각종 ‘도량형 기준’,조선군의 독자적인 개량형 무기제조법을 그림으로 표시한 ‘총통등록’,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물시계 ‘옥루’,현재까지 연주되는 ‘아악’,세법의 기본이 된 ‘전분육등법’‘연분구등법’‘결부법’.그리고 ‘훈민정음’....
    ▲  자격루(왼쪽위, 시계방향순), 측우기, 아악 연주 장면./조선일보DB

    철저한 CEO세종은 이것들의 바탕인 수학을 알고 있었고 수학을 알고 있었기에 이같은 명품들이 만들어졌다. 기초학문의 뿌리부터 몸소 파고드는 철저한 CEO 밑에 어찌 엉성한 정책이 만들어 질 수 있었겠는가? 어찌 찬란하고 독창적인 문화가 아니 생기겠는가? 572년 전에 이 나라는 기초학문을 강조하여 현실을 풍요롭게 하고 정신을 고양시켰다. 만약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인간이 깊이 생각해야 할 기초학문이 부정되는 시대라면 분명 암울한 시대이리라 그리고 신하들에게 수학을 공부하게 하고 싶었던 세종의 마음은 백성을 어찌하면 잘 살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고뇌의 산물이다. ‘가례’를 ‘수학’으로 대체시키고 7년 후 우리의 위대한 임금 세종은 그토록 믿고 사랑했던 소헌왕후(1395~1446, 세종과의 사이에 8남 2녀)곁으로 떠나가신다.
    Premium Chosun ☜       이장주 성균관대 수학교육과 겸임교수 ljj16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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