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나오면 촬영부터 하는 손님 행위 금지한 佛 셰프들
맛 안 즐기고 SNS 과시에만 열중하는 '푸드 포르노' 배격
음식을 자극의 대상 삼으면 포르노 중독과 뭐가 다른가
▲ 김성윤 문화부 기자
잘나가는 음식점에서 식사할 때 지켜야 할 새로운 에티켓이 최근 등장했다.
'테이블에 나온 음식에 바로 손대면 안 된다'이다.
음식 사진을 찍어서 자신의 SNS에 올리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먹음직스러운 음식의 촬영을 위해 크고 무거운 전문가급 DSLR 카메라는 물론 삼각대와 플래시까지 핸드백에 챙겨 다니는 젊은 여성
들도 있다.
그러니 자신이 주문한 음식일지라도 함께 식사하는 일행에게"찍겠느냐"라고 묻고 먹음직스러운 사진을 촬영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배려해주는 게 기본 매너다.
더 잘 찍도록 "(접시를 카메라 방향으로) 돌려 드릴까요?"라고 덧붙인다면 최고의'배려남(녀)'으로 등극할 수 있다.
비록 음식이 식어서 제대로 맛보진 못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손님들이 식당에서 음식 맛보기보다 사진 찍기에 몰두하는 건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프랑스에선 이를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며 음식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레스토랑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하는 요리사들은"사진 찍느라 음식이 식는 줄도 모르는 것은 우리에 대한 모욕"이라며'푸드 포르노(food porno)'
라는 과격한 표현까지 써가며 분노한다.
프랑스 요리사들은 왜 이토록 음식 사진 찍는 데 반감을 갖는 걸까.
요즘 국내에서도 심심찮게 듣게 된'푸드 포르노'는 음식을 뜻하는'푸드'와'포르노그래피'가 합쳐진 신조어다.
1984년 미국 여성학자 로잘린 카워드(Coward)가 자신의 책에서 처음 사용한 푸드 포르노라는 말은 2005년 미국 잡지 하퍼스바자(Harper's Bazaar)에 실린 '데비,
샐러드를 하다:
포르노그래피의 선봉에 선 푸드네트워크(음식 전문 케이블채널)'라는 기사를 통해 대중적으로 확산됐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음식 사진 또는 영상은 푸드 포르노라고 부르는 게 과장이 아닐 정도로 포르노그래피와 비슷한 점이 많다.
동그랗게 부풀어 오른 바삭한 페이스트리 위로 흘러내리는 뜨겁고 찐득한 초콜릿 시럽이랄지 스테이크를 나이프로 잘랐을 때 발갛게 드러나는 속살 등 특정 부위
에만 초점을 맞추거나 극단적으로 확대하는 등 시각적 자극을 극대화하는 다양한 테크닉을 포르노그래피로부터 음식 산업이 배워왔다고 말한다.
포르노그래피는 그 자체로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성(性)을 대상화한다는 게 문제다. 보는 사람을 성적으로 흥분시키기 위해 실제 행위보다 훨씬 시각적으로 자극적이다.
강력한 중독성이 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쓴 존 그레이 박사는"공짜 포르노 사이트를 보는 건 헤로인을 흡인하는 것과 같다"
고 말했다.
포르노에 중독된 남성은 정상적인 성관계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되고 그 결과 실제 성생활을 그르치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음식 사진도 그 자체로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음식을 대상화한다면 문제다.
음식을 실제로 맛보고 즐기기보다 SNS에서 과시하기 위한 음식 이미지와 그 이미지를 촬영하는 행위가 우선시된다면 음식 사진은 푸드 포르노가 된다.
음식 담당 기자로 일하며 음식 사진을 수없이 촬영해봤다.
'섹시하게' 찍히는 음식은 실제 맛과는 별 상관이 없다.
촬영용 음식은 먹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 동안 음식은 쉽게 마르고 윤기를 잃는다.
이를 가리기 위해 촬영할 음식에는 식용유를 잔뜩 바른다.
채소를 제대로 익히면 금세 숨이 죽기 때문에 거의 익히지 않은 채로 찍는다.
사진 촬영이 끝나면 음식은 더는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쓰레기통에 버려진다.
이런 음식은 피사체 혹은 촬영 소품일 뿐 진정한 의미의 음식은 아니다.
프랑스 요리사들이 깍듯이 모셔야 할 손님의 자유를 제한해가며 자신의 식당에서 음식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건 자신이 만든 요리가 인간을 이롭고 즐겁게 하는
맛과 영양으로서 정당하게 대접받지 못하고 자극과 흥분을 위한 이미지로서만 소비되는 것이 요리사로서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에 본사를 둔 시장조사기관 GfK가 최근 세계 22개국의 15세 이상 2만7000여 명을 대상으로 음식과 요리에 대해 얼마나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을 요리에 소비하는지 알아봤다.
전 세계적으로 일주일에 평균 6시간 30분을 요리에 소비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은 평균 3.7시간으로 세계 최저였다.
'요리에 대해 훌륭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와'요리에 대해 열정이 있다'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도 각각 13%로 가장 낮았다.
한국에서 그렇게 음식이 유행이지만 우리의 식생활이 더 건강해지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TV를 켜건 휴대전화로 SNS에 접속하건 언제 어디서나 음식 정보와 이미지를 접하게 됐다.
인터넷 TV에선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른바'먹방 BJ'를 수십만 명이 돈까지 내가며 지켜본다.
하지만 음식에 대한 열광이 더 나은 식생활로 연결되지 못하면 포르노 중독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 Premium Chosun ☜ ■ 김성윤 문화부 기자 gourmet@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