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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선의 고려총통 특징

浮萍草 2015. 6. 7. 17:31
    려 말 우왕 3년(1377년) 최무선은 화통도감에서 화약과 화약무기를 국내에서 처음 개발하여 사용한다. 
    화통도감에서 개발한 화약무기는 대장군포(大將軍砲),이장군포(二將軍砲),삼장군포(三將軍砲),육화석포(六花石砲),화포(火砲),신포(信砲),화통(火㷁),화전(火箭), 
    철령전(鐵翎箭),피령전(皮翎箭),질려포(蒺藜砲),철탄자(鐵彈子),주화(走火) (태조7권,4년(1395 을해·명 홍무(洪武) 28년) 4월 19일(임오) 검교 참찬문하부사 
    최무선의 졸기) 등이 있었으며 이 중 총통은 대장군포,이장군포,삼장군포,육화석포,화포,신포,화통 등이다.
    총통에서 발사된 발사물은 철령전,피령전,철탄자 등이다.\고려의 총통으로 볼 수 있는 현존하는 유물은 경희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경희고소총통
    (慶熙古小銃筒)’ 2점과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홍무10년총통(洪武10年銃筒)’과 ‘부산고려총통’이다.
    1.고려총통의 특징
    세종 25년(1445년) 3월 30일,총통의 개량이 끝난 후 세종은 ‘전의 천자화포(天字火砲)는 400~500보를 넘지 못했는데,이번에 만든 것은 화약이 극히 적게 들고도 화살은 1100여 보를 가고, 한번에 화살 4개를 쏘매 다 1000 보까지 가며…전의 여러 화포들은 화살이 빗나가서 수십 보 안에서 떨어지는 것이 태반이었는데 이번 것들은 화살 하나도 빗나가는 것이 없다’고 했다. 이를 토대로 유추하자면 고려의 총통은 한번에 1발밖에 쏘지 못했으며 빗나거나 멀리 날아가지 못하는 것이 많았던 것 같다. 고려에서 총통을 제작했던 14세기의 총통의 특징은 내부구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350년쯤 제작했다고 추정하는 스웨던의 로쉘트(Loshult)에서 1861년 발굴된 총(그림 1·William Rieel, ARMS through the Ages(New York: Harper & Row)과 원(元) 지정(至正)11년(1352년) 제작된 총통(그림 2·王荣,元明火銃的裝置復元,,文物, 제3기,1962,p.42)의 내부구조처럼 총구에서 속으로 들어 갈수록 좁아지다가 화약을 폭발시키는 곳에서 다시 넓어지는‘무격목형총통’(無激木形銃筒)(채연석,한국초기화기연구,일지사,서울(1981)의 내부구조를 갖고 있는 점이 가장 큰 특징 이다.
    그림 1 로쉘트 총과 단면도.

    그림 2 중국의 지정11년 총과단면도

    경희고소총통(慶熙古小銃筒)(그림3·채연석,한국초기화기연구,일지사,서울(1981)’ 2점과 개인이 소장하는 ‘홍무10년총통(洪武10年銃筒)’(그림4)도 같은 구조를 갖추고 있다. 무격목형총통의 내부구조를 갖춘 총통들은 고려 말 1377년부터 우리의 독자적인 고성능 총통의 내부구조인 격목형총통이 개발 되는 세종 25년(1445년) 사이에 제작되어 사용 된 것이다. 그러므로 무격목형총통의 내부구조를 갖추고 있는 총통이라고 해서 모두 고려시대에 제작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림 3 경희고소총통과 단면도

    그림 4 홍무10년 총통과 단면도

    Premium Chosun ☜     채연석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 교수 gogospa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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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원과 유적으로 본 최무선의 총통은?
    2. 고려총통과 조선총통의 관계 려 말에 첫 개발된 총통은 조선 말까지 수차례에 걸쳐 개량된다. 그러나 개량될 때 전에 사용되던 총통은 전면 개량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즉, 고려 때 개발한 총통을 세종 때 개량할 때에도 고려총통의 일부분이었던 부리직경은 원래대로 사용했다. 경희고소총통과 홍무10년총통의 부리직경과 길이를 세종 때 개발된 총통 중 한번에 1발의 발사물을 발사하는 총통인 일총통(一銃筒) 이총통(二銃筒),삼총통(三銃筒) 과 비교하여 보았다. 각 총통의 길이는 서로 달랐지만 경희고소총통의 부리직경과 세종의 삼총통 부리직경이 거의 같았다. 홍무10년총통의 부리 직경과 세종의 이총통 부리직경도 (표1)과 같이 거의 같았다.

    위 표를 보면 고려의 ‘홍무10년총통’은 세종 때 격목형총으로 내부구조가 바뀌면서 부리직경은 바꾸지 않고 길이만 142㎜에서 257.1㎜로 길게 하여 이름을 ‘이장군포 ’에서 ‘이총통’으로 바꾸었다. 고려의 ‘경희고소총통’ 역시 부리직경은 바꾸지 않고 내부 구조를 격목형으로 바꾸면서 부리길이를 141.5㎜에서 148.4㎜로 늘리고 이름을 ‘삼장군포’에서 ‘삼총통’ 으로 바꾸었다.
    그림5 세종의 이총통(병기도설·채연석, 한국초기화기연구, 일지사, 서울(1981) p. 198)

    이러한 관계를 보면 고려의‘대장군포(大將軍砲)’부리 직경은 세종 ‘일총통’의 부리 직경인 67.2㎜일 것으로 추정된다. 병기도설에 의하면 세종 때 제일 큰 포인‘장군화통’의 부리 직경과 ‘철신포’의 부리 직경은 같았다. 따라서 고려의 ‘신포’도 당시의 제일 큰 총포인 ‘대장군포’와 부리의 직경이 같다면 67.2㎜일 것이다.
    그림6 부산에서 발견된 총통.

    홍무10년총통은 고려의 ‘이장군포(二將軍砲)’, 경희고소총통은 고려의 ‘삼장군포(三將軍砲)’로 추정된다. 최근 부산지역에서 ‘홍무10년총통’과 같은 형태의 총통(그림7) 1점이 발견돼 ‘홍무10년총통’이 국내에서 제작됐다는 추정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부산총통’의 길이는 30㎝, 부리직경은 25㎜로 ‘홍무10년총통’과 같은 형태와 크기이다(그림6).
    3. 복원 및 발사시험 # 홍무10년총통 복원발사시험
    2006년 3월 31일,필자는 ‘홍무10년총통’과 발사물인 ‘피령전’을 복원하여 영천의 3사관학교에서 발사시험을 한 결과 피령전이 150m를 성공적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따라서 홍무10년총통은 총으로써 내부구조와 기능이 정상적임을 확인하였다.
    그림7 홍무10년총통의 복원발사시험 광경

    ‘홍무10년총통’은 (1) 내부구조가 14세기 총의 구조와 같고, (2) 세종때 개량된 총통인 ‘이총통’과 부리의 직경이 같고, (3) 발사시험에서 총통으로서 기능을 잘 발휘하였고, (4) 부산지역에서도 같은 형태의 총통이 발견된 점, (5) 총통의 표면에 홍무10년(1385년) 제작했다는 기록이 있는 점 을 종합해볼 때 1385년 고려에서 제작된 ‘이장군포‘로 추정되며 경희고소총통은 세종 때의 삼총통과 부리의 직경이 같으므로 고려의 ’삼장군포‘로 추정된다.
    4. 현존하는 고려형식의 총포
    그림 8 경희고소총통(왼쪽)과 홍무10년 총통.

    현재 국내에 최무선이 개발한 고려형식의 총통은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에 남아있는 경희고소총통 2점과 홍무10년총통(그림8)그리고 최근 부산에서 발견된 그림6의 부산고려총통 등 모두 4점이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형식의 총포는 화통도감이 설치되는 1377년부터 격목형총포가 등장하는 세종25년(1445)까지 제작 된 것이므로 고려형식의 총포라고 모두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 으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홍무10년총통은 제작년대가 확실하게 1385년이므로 최무선에 의해 고려 때 제작된 유일한 고려총으로 볼 수 있다.
    Premium Chosun ☜     채연석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 교수 gogospa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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