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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탈영실정 (4)

浮萍草 2015. 5. 18. 11:22
    100명의 어린 처녀와 100일밤 자면 회춘한다고 믿었던 충혜왕, 그 결과는?
    '한중록'의 작자인 사도세자빈 혜경궁홍씨가 쓴
    한글 서한./조선일보DB
    산군과 닮은꼴이었던 고려의 왕이 있습니다. 바로 고려의 제28대 왕인 충혜왕인데,몽골에 제압되어 부마국으로 있을 당시의 왕이기에‘충(忠)’자가 붙어 있죠. 세자 시절인 14세에 원나라에 볼모로 갔는데,불량배들과 어울려 여인을 겁탈하는 등의 몹쓸 짓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불과 16세에 아버지인 충숙왕으로부터 전위를 받고 귀국해서 왕위에 올랐습니다. 본성이 호협방탕(豪俠放蕩)한지라 주색(酒色)과 사냥을 일삼고 정사를 돌보지 않으며 후궁만도 100여 명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2년 만에 원나라에 국새(國璽)를 빼앗기고 부왕 충숙왕에게 양위한 뒤 다시 원나라에 갔습니다.
    ㆍ왕으로 복귀했다 다시 쫓겨나
    그로부터 7년 뒤에 충숙왕이 죽게 되자 다시 왕으로 복위하였는데 사실 원나라에 다시 가서도 황음광포 (荒淫狂暴)한 짓을 계속하였기에 복위가 쉽지 않았었죠. 두 번째로 왕이 되어서는 옛 일을 반성하고 정사를 잘 살폈어야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방탕함은 여전하여 부왕의 왕비였던 경화공주와 후궁이었던 수빈 권씨를 욕보이는 등 미녀가 있으면 귀천을 가리지 않고 농락했습니다. 그리고 사무역(私貿易)으로 재물을 모으고 무리한 세금을 강제로 징수해 유흥에 탕진하였고 백성들의 토지와 노비를 약탈하는 등 실정이 많았죠. 그러다가 반란이 일어나 평정하기도 했고 이듬해 원나라에 가서 형부에 투옥되어 경화공주의 사건을 심사 받다가 가까스로 석방되어 귀국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백성들을 괴롭히고 재화를 탕진함으로써 나라가 혼란에 빠졌는데 결국 그의 횡포가 원나라에 알려져 또다시 왕위에서 쫓겨나 원나라로 끌려가 귀양을 가는 도중에 죽고 말았습니다. 불과 30세였죠.
    ㆍ충혜왕이 요절한 것도 ‘탈영’ 때문일까?
    음식을 먹고 체하여 죽었다는 설도 있고,독살을 당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토록 성생활이 과도하여 정을 허비하였으니 이미 정혈이 쇠약해진 상태로 왕위에서 쫓겨나‘탈영(脫營)’의 병까지 얻게 되었으니 요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충혜왕이 죽자 모든 백성들은 기쁨에 겨워 만세를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왕위에서 쫓겨나지 않아 ‘탈영’의 병이 오지 않았어도 요절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여색(女色)을 밝히기로는 연산군 둘째가라면 서러운 왕이었던 충혜왕에게 유씨 성을 가진 어의(御醫)가 ‘일백 처녀 회춘론’을 진언했다고 합니다. 백일 동안 매일 밤 어린 숫처녀와 잠자리를 하면 만수무강하게 된다는 것이죠. 충혜왕으로서는 듣던 중 반가운 이야기였으니 그로부터 백일 동안 환락의 밤으로 빠져들었고 말았습니다. 유씨는 전국을 돌며 어린 처녀를 물색해 매일 왕의 방으로 들여보냈고 거기에다 각종 최음제와 원기회복을 위한 처방도 함께 올렸습니다. 백일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빛나는 얼굴과 피부의 ‘동안(童顔)’으로 ‘회춘(回春)’할 것으로 기대했던 충혜왕이었지만 얼굴은 핏기가 간 데 없고 골육은 쇠잔해졌으며 그때부터 코피를 쏟으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ㆍ귀한 신분에서 쫓겨났지만 탈영에 걸리지 않고 천수를 누렸던 분들
    조선 태조 임금 다음의 정종 임금은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실세였던 동생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말았지만 그 뒤에도 19년이나 더 살아서 63세에 사망 했습니다. 아마 동생 덕에 얼마간이나마 왕 노릇을 하고 상왕에 오른 것으로 만족했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권좌에서 쫓겨난 궁중의 여인들 중에도 오래 산 경우가 꽤 있습니다. 단종의 왕비인 정순왕후는 14세에 왕비가 되었으나 불과 1년 만에 단종이 상왕으로 내몰리더니 17세에는 단종이 죽는 바람에 청상과부가 되고 말았죠. 그래도 82세 까지 살았는데 아마 남편을 죽인 세조 임금의 일가가 몰락하는 모습을 볼 때까지 악착같이 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중종의 첫 부인이었던 단경왕후 신씨도 20세에 반정으로 중종이 왕위에 오른 지 7일 만에 폐출되고 말았습니다. 부친이 연산군의 처남이었던 신수근이었기에 반정공신들이 강요한 탓이었죠. 그래도 51년을 더 살아 71세에 사망했는데, 언젠가 중종이 자기를 복위시켜줄 것이라 기대한 것도 있었겠지만 중종이 죽고도 13년을 더 살았습니다. 혜경궁 홍씨도 마찬가지입니다. 10세에 사도세자의 세자빈이 되었는데 28세에 사도세자가 아버지인 영조의 명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는 바람에 청상과부가 되고 말았죠. 혜경궁은 그 뒤로 무려 53년을 더 살아 81세까지 살았습니다. 아들인 정조가 왕위에 오르기를 기다렸을 뿐만 아니라 정조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손자인 순조를 졸라 몰락한 친정 집안을 복원시키기도 했었죠. 그러면서 자신의 한 많은 일생을 글로 써 ‘한중록(閑中錄)’을 남겼습니다. 역시 여인의 한(恨)이 정신적 충격을 이기고 장수하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아셨죠.
    Premium Chosun        정지천 동국대 분당한방병원 내과 과장 kyjjc193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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