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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탈영실정 (3)

浮萍草 2015. 5. 13. 11:25
    온실 속 연산군과 태풍 속 광해군
    산과 광해는 둘 다 반정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난 점 외에도 어린 나이에 생모와 이별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연산은 태어난 지 2년 7개월 만에 생모이자 성종의 왕비였던 폐비 윤씨가 왕비에서 쫓겨나는 바람에,광해는 2년 1개월 만에 생모이자 선조의 후궁이었던 공빈 김씨가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그리 되었던 것이죠. 
    그러나 이후의 삶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특히 왕위에서 쫓겨난 뒤 연산은 불과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난 반면 광해는 무려 18년이나 삶을 이어갔습니다. 
    왜 그렇게 큰 차이가 났는지는 이전의 삶에서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ㆍ연산군과 광해군의 어린 시절
    연산은 비록 생모가 궁중에서 쫓겨났지만 원자(元子)로서 부러울 것 없이 자라다가 8세에 세자로 책봉되고 장차 왕위를 물려받을 세자 수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광해는 많이 달랐습니다. 생모인 공빈이 죽고 나자 선조임금이 자신의 첫째,둘째 아들인 임해군과 광해군을 멀리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선조의 사랑은 인빈 김씨에게로 넘어갔던 것이죠. 왕의 관심에서 멀어진 왕자에게 어느 관원이나 궁녀들이 살갑게 대해 주겠습니까? 그래서 무척이나 외로운 시절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 바람에 임해군은 아주 포악한 성질을 갖게 되었지만 동생인 광해군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의젓했다고 합니다. 태교 탓인지는 몰라도 타고난 품성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영화 '왕의 남자'의 연산군 역을 맡은 배우 정진영(위), 영화 '광해'의광해군 역을 맡은 배우 이병헌./조선일보DB

    ㆍ세자가 되는 것도 쉽지 않았던 광해군
    광해군은 18세에 세자 책봉을 받긴 했으나 그 때가 임진왜란이 발발한 직후였습니다. 선조는 인빈이 낳은 신성군을 세자로 삼고 싶었지만 15세의 어린 나이에 몸이 허약했던 데다 전쟁 중이라 매우 막중하고도 위험한 일을 해야 하기에 그리 했던 것 이죠. 광해군은 2년 가까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분조(分朝) 활동을 눈부시게 수행하여 많은 백성들의 신뢰와 지지를 받았습니다. 분조란 조정의 기능을 대신한 임시정부와 같은 성격인데,조정의 일부 신하들을 이끌고 전선을 돌아다니며 의병을 모집하고 군사들을 격려하는 것이 주된 역할 이었습니다. 그러나 왜적이 날뛰는 전쟁터에서 항상 생명의 위협을 무릅써야 했고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면서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죠. 실제로 함경도로 갔던 임해군과 순화군은 왜군에 잡혀서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나왔었죠.
    ㆍ연산군과 광해군은 왕위에 오르는 과정도 달랐다
    연산군은 성종이 승하하자 19세의 나이로 왕위를 물려받았습니다.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죠. 그러나 광해군은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우며 백성들의 신망을 받았지만 선조의 냉대가 심했습니다. 심지어 영의정 유영경을 비롯한 소북파(小北派)에서 세자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을 뿐만 아니라 불과 3살이었던 영창대군을 보위에 올리려는 공작도 있었죠. 마침 중풍 후유증 상태에 있던 선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선조의 죽음에는 독살 의혹이 있는데,죽기 전에 많이 먹었던 음식이 김상궁(개시)이 올린 약밥이었기 때문입니다. 약밥은 은수저로 독이 든 것을 쉽게 찾아낼 수 없죠. 물론 고의로 약밥을 올려 찹쌀에 의해 가래가 끓어 기도를 막은 탓일 수도 있습니다. 당시 선조의 기력이 워낙 쇠약해져 있었다고 하지만 어의가 허준 선생이었죠.
    Premium Chosun        정지천 동국대 분당한방병원 내과 과장 kyjjc193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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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병에 제일 좋은 약
    ㆍ연산군과 광해군은 왕 노릇을 잘 했나 산군은 처음 3년간은 어느 정도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4년째부터 많은 선비들을 죽인 사화(士禍)를 일으킨 것을 비롯하여 온갖 사치와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연회로 나날을 보내기를 8년간이나 했습니다. 그러다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된 지 두 달 만에 사망하고 말았는데, 만약 쫓겨나지 않았더라도 오래 살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정력제에다 최음제까지 먹으며 수많은 여인들과 성생활을 과도하게 하는 바람에 이미 정(精)이 많이 손실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그 바람에 온갖 질병이 유발되기 쉬운 상태였던 것입니다. 성생활은 너무 부족하지도 과도하지도 않게 해야 합니다. 광해군은 왕이 되어서도 순탄치 못했습니다. 친형인 임해군과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폐위시키는 등 왕권 위협세력을 제거하느라 힘들었고 밖으로는 점점 세력이 커지는 후금과 명나라의 틈바구니에서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세자의 자리에서나 34세에 임금이 되어서나 늘 불안에 시달렸고 긴장과 의심 속에서 강박관념에 시달렸습니다. 말기에는 측근이었던 이이첨도 믿지 않았을 정도로 믿을만한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5년 만에 폐위되면서 오히려 마음과 몸의 평안을 얻은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도 있기는 합니다. 그 때가 당시로서는 노년에 접어든 49세였지만 비교적 건강이 좋았다고 합니다.
    ㆍ온실의 화초 vs 불굴의 용사
    양지에서만 자란 연산군과 달리 광해군은 음지를 오래 겪었기에 정신력과 의지력이 크고 면역기능과 항병력도 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일을 당할 수 있는데 온실의 화초처럼 편안하게만 살았다면 그것을 극복하기 쉽지 않죠. 광해군은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기에 자생력이 엄청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귀한 아이라고 과잉보호해서 하나하나 보살핌을 받은 아이들이 허약하고 잔병에 잘 걸리는 편이죠. ‘ 젊을 때 고생은 돈 주고 사서라도 한다’는 말이 그냥 생긴 게 아닙니다. 다산 정약용, 미수 허목, 동계 정온 선생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정신력은 건강, 장수에도 필수적이죠.
    ㆍ탈영실정’의 치료약은?
    동의보감에 처방이 나오기는 합니다. 그러나 탈영과 실정은 권력이나 큰 재물을 가졌다가 그것을 잃어버리면서 생긴 마음의 병이므로 약의 효과가 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마음을 잘 다스리고 도전의식으로 살아가거나 종교에 귀의하는 것도 도움이 되겠죠. 물론 평소에 권력에 너무 집착하지 않거나 자신의 재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적선의 자세를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Premium Chosun        정지천 동국대 분당한방병원 내과 과장 kyjjc193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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