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재벌가 인사이드

43 두산그룹 ① 박용성 회장

浮萍草 2015. 4. 23. 10:26
    "나는 눈이 작고 입이 커서 말이 많은 편"
    
    두산 중공업 박용성 회장이 중앙대 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뒤 대학교수들과 간담회에서 한말이다.
    ”나는 눈이 작은 대신에 입은 커서 남의 얘기를 잘 듣지 않고 내 말은 많이 하는 편이다.”
    느슨해진 중앙대의 분위기를 잡고 교수들에게도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는 경고의 뜻으로 해석되는 내용이다. 
    두산그룹에서 중앙대를 인수한 뒤 중앙대는 많은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건물들이 리모델링 되면서 캠퍼스 분위기가 산뜻해지고 있고 교수들 사이에서도 경쟁심리가 살아나는 등 예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반면 일시에 변혁을 가져오면서 학생과 교수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내년이면 창립 120년이 되는 국내 최고(最古)기업이 두산 그룹이다. 
    두산은 1896년 8월 창업주 박승직 씨가 ‘박승직 상점’을 열면서 역사가 시작된다. 
    박 창업주는 포목점으로 시작해 1933년 일본 기린맥주의 한국 진출기업인 소화기린맥주(동양맥주의 전신)에 주주로 참가하면서 맥주회사 경영인으로 거듭났다.
     이어 2세인 박두병 초대회장이 1952년 동양맥주를 정부에서 인수해 국내 최대 맥주회사로 키웠다. 
    3세 경영은 1981년 박용곤 명예회장이 시작해 이후 박 명예회장의 동생들인 고 박용오 회장,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박용현 연강재단 이사장과 현 박용만 회장이 
    나이 순으로 맡아왔다. 
    그리고 이제 '용'자 돌림에서 '원'자 돌림으로 경영의 바통을 넘기는 역할을 박용만 회장이 하고 있다.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씨가 두산건설의 회장을 맡으면서 사실상 4세 경영시대가 열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박승직 두산 창업자(왼쪽부터)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박용오 전 두산그룹 명예회장,박용성 전 대한체육회 회장,박용만 대한상공
    회의소 회장,박정원 두산건설 회장./조선일보DB

    실제로 박정원 회장은 두산 오너일가 가운데 지주회사 격인 (주)두산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박정원 회장은 (주)두산 지분 4.35%를 보유해,지분율만 보면 박용만 회장(2.85%)과 박용현 전 회장(1.99%)보다 앞선다. 최근 박용곤 명예회장이 자신의 지분을 자녀들에게 증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정원 회장이 차기 회장이 되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가 만만치 않다. 우선 그룹 자금흐름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두산건설 경영난 해결이 급선무다. 본인이 회장으로 이끌어온 두산건설의 지난해 적자가 3000억원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두산건설의 문제는 건설공사 PF(프로젝트 파이낸싱)다. 1조원에 달하는 PF는 건설경기 회복 없이는 단기적으로 해결이 힘들다. 이 부분의 적자를 그룹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두산의 한 임원은 "두산건설이 침체된 주택건설 비중을 줄이는 전략을 통해 적자구조 탈출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며"이는 박정원 회장의 안정적인 그룹회장직을 위해서도 필수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 문제 외에 최근 중앙대 관련 구설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성완종 파문’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으나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휴화산이나 마찬가지다. 검찰이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비리와 관련해 수사범위를 중앙대에서 두산그룹으로 확대할 가능성을 열어뒀기 때문이다.
    Premium Chosun        홍성추 조선일보 객원기자(재벌평론가) sch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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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두산그룹 ② 
    형제간 우애경영의 신화는 '형제간 검찰고발'로 파탄나고
    두산의 낙동강 수계 상류 페놀 방류사건으로 전국>
    에서 OB맥주 등 두산제품의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조선일보DB
    산은 오래된 세월만큼이나 기업의 역사는 다사다난했다. 그 중에서도 낙동강 페놀 사태는 두산그룹의 이미지를 최악으로 떨어트린 대표적인 사건이다. 페놀사건이란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전자가 1990년 10월부터 4개월간 페놀이 함유된 폐수 325톤을 낙동강에 무단방류한 사건을 일컫는 말이다. 당시 페놀 폐수가 방류된 낙동강은 영남권의 식수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일대 가정집마다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는 신고가 빗발쳤고 환경부가 정밀조사에 들어가면서 두산전자의‘악행’이 드러났다. 결국 이 사건으로 당시 두산그룹을 이끌고 있던 박용곤 명예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전문 경영인인 정수창씨가 회장직을 맡게 된다. 식수로 사용하는 물에 거리낌 없이 폐수를 방류한 두산은 부도덕한 대기업의 대명사로 낙인 찍혔다. 페놀 사건으로 당시 두산의 주력 사업체 가운데 하나였던 OB맥주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어났고 두산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맡게된다. 악몽 같은 시기를 보내던 두산그룹은 OB맥주를 매각하는 극약처방을 내렸고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인수하면서 사업구조를 환골탈태했다. 소비재 중심에서 중장비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개편하면서 두산그룹은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어쩌면 이 사건으로 두산그룹이 거듭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두산그룹의 재도약은 전문 경영인 체제를 밀어내고 다시 가족 경영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박용곤 회장의 바로 아랫동생인 박용오 전 회장과 박용성 회장, 박용만 회장 등 3형제가 똘똘 뭉쳐 그룹을 이끌었을 때다. 박용오 회장이 그룹의 총수를 맡았고 박용성 회장은 대한상의 회장을 맡으며 측면지원했다. 박용만 회장은 한국중공업 인수작업을 진두지휘하는 등 실무를 책임졌다. 하지만 재계의 칭송을 받던 형제경영 신화는‘검찰 투서’ ‘가문 퇴출’이라는 험악한 말이 등장하는 ‘형제의 난’ 으로 인해 깨지고 말았다. 두산그룹은2005년 7월 박용오 회장을 명예회장으로 경영일선에 퇴진 시키고 3남인 박용성 회장이 새로운 총수로 취임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박용오 전 회장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자신의 동생들인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회장이 20년 동안 비자금 1700억원을 조성했다고 검찰에 고발하고 기자회견까지 자처했다. 두산그룹 형제의 난이 시작된 것이다. 결국 박용오 회장이 그룹에서 축출된뒤 독자 운영하던 건설회사가 어려워지자 투신자살을 함으로써 형제의 난은 막을 내렸다. 최근 두산을 둘러싼 구설수는 이러한 요인이 아니라 주력 계열사가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 얼마전에는 두산중공업과 두산 인프라코어 등 주력 계열사의 인력 감축을 잇따라 진행하고 부진한 사업부문에 대해서는 외부 컨설팅을 실시하는 등 그룹 재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수익성이 낮은 일부 해외생산법인은 매물(賣物)로도 내놨다. 재계 관계자는 "두산이 지주사 전환 이후 전(全) 계열사에 대해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건 처음"이라고 어쨌든 국내 최고(最古)의 기업이 어떤 변신으로 일련의 구설수들을 잠재울지 재계가 주시하고 있다. 오랜 역사 만큼이나 변신을 자주 해온 두산의 다음 수순이 무엇일까 하는 관심이다.
    Premium Chosun        홍성추 조선일보 객원기자(재벌평론가) sch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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