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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94세의 정태수 전 한보그룹 총회장은 어디에 있을까?

浮萍草 2015. 4. 17. 11:01
    정태수 전 한보그룹 총회장이 1997년 한보 특혜비리
    사건 4차공판에 참석하는 모습./조선일보DB
    때 국내 재계 랭킹 14위 그룹 총수로 정 관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정태수 전 한보그룹 총회장. 2007년 해외로 도피한지 근 10년이 되었지만 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의 씁쓸한 사망과 경남기업 성완종 회장의 자살 등으로 정 총회장의 근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최근 현대차 그룹에서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의 합병 사실을 발표하면서 더욱 정 총회장의 행적을 궁금해하고 있다. 충남 당진의 현대제철 공장은 사실상 정 총회장이 만든 한보철강이 전신이기 때문이다. 정 총회장은 2007년 카자흐스탄으로 도피한뒤 전혀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있다. 몇 년전 키르기르스탄에서 재기를 위해 광산업에 손을 댔다는 언론보도가 있었지만 그를 직접 만난 것은 아니었다. 1923년생인 그는 올해 우리 나이로 94세에 이른다. 10여년전 국내에서 재판을 받을 때도 휠체어를 탈 정도로 건강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사망했다는 얘기도 없다. 진로그룹 장진호 전 회장이 이국땅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 것처럼 정 총회장 역시 어쩌면 타국에서 ‘한많은’ 생을 마칠지 모른다. 정 총회장의 한보철강(현 현대제철)에 대한 집념은 최근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그룹에 인수되기전인 2004년 5월 정 총회장은 보도자료를 내고 채권의 출자전환을 통해 대주주가 된 뒤 4억5천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해 한보철강을 인수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정부와 채권단은 이를 거부했다. 부도를 낸 1차 책임자에게 다시 경영권을 돌려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서류심사에서 탈락 시키고 말았다. 몇 년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한보비리’의 주인공인 정 총회장에게 다시 경영권을 넘기는 것은 국민정서에도 맞지 않았을 것이다. 정 총회장은 1997년 1월 자신이 경영하던 한보그룹이 부도 났을 때 온갖 권력형 비리의 전형을 보여준 장본인 이다. 이른바‘한보사태’로 총칭되는 이 부정 비리는 당시 건국 후 최대의 금융부정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한보가 부도를 내면서 불거졌는데 부실 대출의 규모가 5조 7천억여 원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 여서 온 나라가 술렁거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사건이 전 국민적인 관심을 모은 것은 정태수 총회장이라는 한 기업인과 정계와 관계,금융계의 핵심부가 서로 유착하면서 엄청난 부정과 비리가 행해졌기 때문이다. 최근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경남기업 성완종 회장의 ‘권력 커넥션’을 연상케 하는 사건이었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왼쪽)이 예브게니 야신 러시아연방 경제장관을 만나 악수를 나누는 모습./조선일보

    정 총회장은 1990년부터 5조 원 규모의 당진제철소 프로젝트를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정부 차원의 견제를 받은 일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건설부가 부지매립 허가를 9개월 만에 내주었음은 물론,통상산업부(지금의 지식경제부)는 검증도 되지 않은 코렉스 공법의 채택을 적극 권유하기까지 했다. 철강업계에서는 한보의 경영능력으로는 이 프로젝트의 실행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음에도 1조 원 규모의 코렉스 설비를 도입하는 무리수를 두었다. 처음에는 제철소의 투자비를 2조 2800억 원으로 책정하였으나 2년 만에 5조 7000억 원으로 불어났다. 이러한 액수는 한보철강이 1994년 말 산업은행 주도로 11억 2900만 달러의 외화를 대출받은 이듬해부터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 것으로 1995년에 1조 4300억 원, 1996년에 2조 원이 늘어났다. 이렇듯 대출금 규모가 증가한 것은 정부와 채권은행단이 한보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투자비를 계속 지원했기 때문이다. 한보는 이 와중에도 18개의 회사를 인수하거나 설립하는 등 계속해서 사업을 확대하고 있었다. 결국 은행들은 한보철강에 거액을 물릴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1997년 5월, 이 사건으로 인해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이 공금횡령 및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한보로부터 돈을 받은 정치인과 전직 은행장 등 10명이 징역 20~5년을 선고받는 등 엄청난 파문을 몰고 왔다. 이 사태가 발생하면서 제철소가 있는 충청남도 당진 지역은 부도 여파로 인해 171개의 영세업소와 외상 거래자들이 빈 손이 되었고 국가 대외신용도가 급격히 하락해 국가 경제가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었다. 결국 그 해 IMF 금융위기를 몰고온 한 원인이기도 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과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운영차장 김기섭 역시 이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정 총회장은 이 사건과 관련해 징역 15년을 선고 받았다가 지난 2002년 형집행정지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이 후 그는 별건의 사건으로 2006년 2월 서울중앙지법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횡령) 등으로 징역 3년을 선고 받고 항소 서울고법에서 재판을 받던 중 2007년 5월 2일 치료목적으로 일본으로 출국한 뒤 현재까지 해외 도피 중이다. 그의 행적이 나타난 것은 일본으로 출국한 뒤 카자흐스탄에 머물고 있는 것이 밝혀진 일이다. 그의 소재를 파악한 정부는 2008년 1월 카자흐스탄에 범죄인 인도 청구를 했다. 그러자 같은 해 범죄인 인도 협정을 맺지 않은 인근의 키르기르스탄의 비쉬켁으로 거주지를 옮긴 것까지 확인됐다. 정 총회장은 해외도피 중인 2008년 4째 며느리인 강릉의 모 대학(정 총회장이 인수해 가족들이 운영하고 있었음) 학장인 김모 씨를 통해 대학을 원격 경영했던 사실이 검찰에 의해 밝혀진 적이 있다. 자신이 머물고 있는 카자흐스탄에 해외 유학생 유치를 위한 지사를 설립토록 하는 등의 행위가 적발된 것이다. 특히 이 대학 출신의 간호사 4명을 카자흐스탄까지 불러 개인적으로 고용해 간병을 받았던 것이 밝혀졌다. 그 뒤 키르기르스탄에서 재기를 도모한다는 얘기만 들려올 뿐 직접 모습을 보인 적은 한번도 없다. 한때 그룹 회장직을 맡아 경영 전면에 섰던 셋째 아들 정보근씨도 최근에는 전혀 언론접촉이 없는 상태다. 정 총회장은 증여세 등 6개 세목에 걸쳐 2225억원의 세금을 미납해 2004년 이후 10년째 ‘고액·상습 체납자 1위’라는 불명예도 안고 있다. 한보철강의 영예를 되찾겠다는 집념을 불태우고 있는 정 총회장. 그가 현대제철과 하이스코의 합병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또한 진로그룹 장진호 전 회장의 이국에서의 죽음과 경남기업 성완종 회장의 자살을 어떻게 생각할까. 한때 정 관계를 주무르며 재벌 총수로 군림하던 그의 근황이 궁금해진다.
    Premium Chosun        홍성추 조선일보 객원기자 sch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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