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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 소광섭 교수가 제기한 오행의 의문

浮萍草 2015. 4. 3. 10:55
    소광섭 서울대 명예교수./조선일보DB
    행에는 주먹구구식의 관행적인 계산과 해석방법 외에 별도의 과학적,분석적,그리고 수리적 계산과 해석 방법이 존재한다. 이 문제에 대해 물리학자 소광섭 교수가 던진 질문을 먼저 선보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소 교수가 던진 질문의 요체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것이 곧 오행과 인체의 생리적 조건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행은 인간의 잡다한 생리적 조건을 하나의 규칙 속에서 파악하게 해주고 또 인간의 질병을 예방하고 통제 할 수 있는 하나의 규칙적 준거를 제시해줄 수 있다. 그것은 곧 오행이 인간의 생리적 조건의 항상성의 기준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조건을 세세하게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 심리의 기저가 되는 생리적 조건도 아울러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생리적 항상성의 기준,그리고 심리적 기준의 조건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소광섭 교수가 제기한 의문을 들어보면 위의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 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오행에 대한 분석을 여기까지 해오게 된 것은 우선 인간이 어떤 경우에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근원적으로 탐색해보는 과정에서 오행이 나침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오행은 성리학의 근원적 진리였고 성리학은 결국 인간의 심성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학문이고 따라서 성리학에 대한 궁구(窮究)는 결국 인간행동학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 어떻게 그리고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 이것이 인간행동학의 주제다. 그리고 그 주제에 대한 물음은 성리학에 있고, 성리학에 대한 답은 바로 오행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다소 까다로울 수도 있는 학문적 영역에 발을 들여놓고 분석을 시도하는 것은 따라서 어쩔 수 없는 주제선택에서 연유되고 있음을 독자들은 이해해주실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이 근본적 물음에 대해 이해를 높여가면서 꾸준히 접근의 끈을 놓치지 않고 계속 가독력을 높여간다면 거기서 공짜로 얻게 되는 결과는 결코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본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당신이 얻게 될 그 결과는 인간에 대한 감식능력이다. 그리고 그 감식능력은 인간에 대한 막연한 인상학적 분별력이 아니라 인간의 생리적 조건에 대한 작동원리를 파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보다 근원적인 조감성이다. 조선조 때 당파싸움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의 서인과 동인의 두 영수는 송시열과 허미수였다. 두 사람은 서로 정치적으로 구적(仇敵)지간이었지만 서인인 송시열이 아팠을 때 동인인 허미수는 한약을 지어서 처방전과 함께 보냈다는 일화가 있고 또 송시열 역시 신약(身弱)한 허미수에게 보약을 정기적으로 보내주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성리학자들은 곧 심리학과 생리학에 대한 이해를 동시에 구유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오행에 대한 이해와 곧 그 두 분야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성리학자들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곧 생리적인 오장육부의 조합과 그 위계성으로 체질의 강약과 허실을 판별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리적 조건이라는 것은 하늘로부터 받은 우주의 조건이고 그 우주의 조건은 다름 아닌 오행의 조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행에 대한 나름대로의 선험적 또는 후천적 지식이 우리 선조들로 하여금 성리학 지식뿐만 아니라 인간의 건강에 대한 처방까지도 가능하게 해줄 수 있었다 고 본다. 우리 선조들이 선비의 조건으로 그리고 위정자의 조건으로 가장 중요시 여겼던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일까? 바로 지인지감이다. 사람을 알고 사람을 판별하고 사람을 간별하고 사람 됨됨이를 미시적 거시적으로 판단할 줄 아는 그 능력을 말함이다. 여러분이 얻게 될 것은 바로 이 지인지감의 능력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지인지감의 능력에는 자기와 남의 생리적 조건까지를 인상으로써 간취할 수 있게 만드는 하나의 체계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을 터득하는 일은 그렇게 단순할 수가 없고,여러분의 지적,시간적 노력에 대해서도 보상은 충분히 담보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것으로 각설하고-. 오행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적지 않은 연구물들이 있어왔다. 그러나 그런 것은 다 관습적 지혜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오십 보 백 보 차이의 오행에 대한 해석이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오행에 대한 해석은 흔히 믿어도 좋고 안 믿어도 좋은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저런 경우에는 저렇게 둘러대는 귀걸이코걸이식의 해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행 해석에 용하다는 사람들의 해석과 처방과 적용력은 거기서 거기에 머물러온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던 차에 물리학자인 소광섭 교수는 1993년 <과학과 철학(과학사상 연구회편)> 제 4집에서 다음과 같이 아주 중요한 발언을 쏟아낸 바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5행 체계에 대한 글이었다. 그는 ‘5행의 수리물리학적 모형’이란 논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5개의 기관 또는 요소와 이에 대응하는 5개의 모드가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5개의 기관은 예를 들면 간,심,비,폐,신과 같은 체계의 구성적 요소인 반면 5개의 모드는 이들 기관이 전체적으로 작동하는 체계전일적 기능을 나타낸다고 보겠다. 전자가 환원분석적인 요소라면 후자는 종합전일적인 기능이라고 하겠는데 오행이란 것이 이 둘 중 어느 것을 지칭하는 것인지 명확치 않다. 보통 주장하기를 환원주의를 벗어나서 전일적인 체계이론으로 옮김으로써 새로운 과학의 패러다임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이들 상호배타적인 관념들은 사실을 기술하는 데 함께 필요한 상보적 관계를 갖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단순히 환원주의에 반대되는 전일주의적 입장 역시 바람직스럽지 못한 대안에 그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의학의 이해나 새로운 과학의 설정은 환원주의와 전일성을 상보적으로 종합 통일하는 데서 비로소 가능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소광섭. 과학과 철학(과학사상 연구회편) pp.44~45) 소광섭 교수의 위 질문은 2000년 동안 구름에 싸여 있던 오행 체계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의문을 파헤쳐낸 것이다. 오행 체계는 지금까지 하나의 환원적 구성요소로써만 존재해왔다. 그래서 목하면 간이 어떠니 화하면 심장이 어떠니 하는 단편적인 적용에만 골몰해왔다고 할 수 있다. 5행이 아닌 2행, 3행, 4행 분석도 단편적이고 편의적이고 그리고 환원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소 교수도 어떻게 “환원주의를 벗어나서 전일적 체계이론으로 옮김으로써 새로운 패러다임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소 교수의 이 질문 역시도 오행 자체를 부분적으로 이해하는 데서 생긴 본의 아닌 오해라고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오행은 이미 환원성과 전일성이라는 상호보완적인 체계를 내재적 진리로써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내재적 진리에 대한 몇 회에 걸친 수리적 분석은 오행이 갖고 있는 모든 현실적 적용가능성을 열어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 현실적 가능성이라는 것은 오행의 인체에 대한 적용력의 정확성과 실천적 확대를 의미한다. 다른 말로 오행을 인간사에 적용할 때 자의적이고 인위적이고 편의적인 오행 사용을 억제할 수 있는 근거를 얻게 되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는 소 교수의 말대로“오행의 상생-상극을 장부의 기능에 적용시킬 때 막연히 … 어느 상황에서든 적절한 말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만 하면 다 적용될 수 있을 때문에 … 일종의 범용성내지는 ‘만병통치’식 이론”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적용능력은 각자의 재능과 경험에 따라 다르게 되고 사실로 맞았는지 아니면 ‘꿈보다 해몽이 더 좋았다’는 식으로 적절히 잘 둘러댔는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소광섭. 위의 책. pp.45~46) 오행 해석은 그 원산지인 중국에서도 우리나라에서의 관행적 해석 능력과 별반 다를 게 없는 형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철학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고 김충열 교수조차 오행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평가하고 있다. 김 교수는 오행에 대해서 “다섯 가지 물질 재료를 말한다. 이것은 모두 인간이 생활을 영위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재료 또는 공구이다. 이렇게 본다면 오행은 물질생활에서 필요한 구체적이고 절실한 수요품이라는 점 외에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다.”(김충열. 중국철학사1. p.159) 이것은 김충열 교수가 얼마나 오행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중국철학사를 쓴 풍우란은 그의 저작에서 오행에 대해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고 또 오행에 대해 상당히 심층적인 분석을 해보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역시 오행이 갖고 있는 내재적 진실에 대해서는 턱없이 모자라는 분석을 하고 있다. 이것은 한중일 동양3국에 걸쳐서 거의 똑같다고 할 수 있다.
    마루야마 마사오(丸山 眞男)./조선일보DB
    퇴계와 율곡조차 성리학의 근원이 되는 그리고 그들이 그처럼 천착해서 논쟁에 몰입했던 리와 기의 근원이 되는 오행 체계에 대해서는 정작 이렇다할만한 해석이 전혀 없는 것이 이상하다면 이상하다고 할 수 있다. 아마 성리학에 근거한 철학적, 정치적,사회사상적 측면에서 가장 심오한 저작을 낸 사람은 일본의 정치학자인 마루야마 마사오(丸山 眞男)정도 일 것으로 본다. 그의 저작물에서 보여준 일종의 분석력이랄까 상상력은 심오하지만 마루야마 마사오조차 실제로 성리학의 근원이 되는 음양오행에 대해서는 “탁상공론”이라는 말로 치부하고 있다. 그는 음양오행에 대해서 그 정치적, 사회적 적용 범위와 전치과정을 상당한 심도로 분석해낸 것은 나름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 있지만 그조차도 하나의 형이상학적 담론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웠다는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상상이 상상을 낳고 추측이 추측을 낳고 추론과 비유가 어지럽게 난비(亂飛)함으로서 때로는 이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심오한 분석력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과연 이것이 현실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의문과 그 철학적 효용성에 대해서조차 의구심을 갖게끔 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음양오행은 탁상공론이 아니다. 그것은 실체가 있는 진실이고 실체에 적용될 수 있는 진실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학적 근거가 있는 우주적 진실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여기서 분석해온 과학적 측면의 음양오행에 대해서는 그 역시 전혀 상도(想到)하지도 못했고 착상조차 하지 못하고 끝났다. 음양오행은 성리학의 뿌리로써만 남아있었고, 음양오행의 나무에서 자란 줄기와 가지와 잎과 꽃들은 그야말로 사시사철 만발해서 세상을 비추고 있었지만 그 뿌리인 음양오행 대해서만은 사람들이 그 본체의 진면목에 대해서 지금까지 모르고 지나왔다고 할 수 있다. 아니 모르고 지나온 것이 아니라 너무 잘 알고 지나왔지만 실제로는 잘못 알고 있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위에서 제시한 분석은 지금까지는 있어온 일이 없는 과학적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오행을 어떤 경우에,왜 그리고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일종의 과학적 근거를 제공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야말로 오행 체계를 이제는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생각해도 좋은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미 오행이 내포하고 있던 우주의 질서의 현실화이지만 이 현실화는 형이상학적 상상이 아니라 과학적 분석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금까지 앞에서 그리고 앞으로 몇 회에 걸쳐 행한 그리고 행할 오행분석은 어떤 면에서 소광섭 교수가 위에 제기한 여러 의문들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앞으로 오행 하나하나의 환원적 요소가 어떻게 전일적 체계로 통일되어 하나의 모드를 형성하는가를 분명히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소 교수는 구성적 요소와 5개의 모드는 “전자가 환원분석적인 요소라면 후자는 종합적일적인 기능이라고 하겠는데 오행이라는 것이 이 둘 중 어느 것을 지칭하는 것 인지 명확치 않다”고 했지만 오행은 결국 그 양자를 다 지칭한다는 것 또한 분명히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또 둘 사이의 관계도 배타성이 아니라 상보적 통일성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아울러 보여주겠다. 그리고 소 교수는 같은 논문에서 생-극 대칭성이“오행적 한의학 체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하고 또 혹시“상생-상극 대칭성도 오행적 체계에 의해서 숨은 역할을 할런지도 모른다”라고 했다. 그러나 상생-상극의 그 숨은 역할이란 것이 오행 체계 내에서는 숨어있는 잠재적 역할이 아니라 가장 활발하게 겉으로 나타나있는 현재(顯在)적 역할이라는 사실 역시 분명히 보여주겠다. 또 그것은 오행의 가장 핵심적인 작동체계로서 오행 상호간의 연결성을 장악하고 있는 운영엔진이라는 것을 역시 앞으로의 분석에서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사실 상생-상극의 그 기능과 대칭성은 마치 서로 맞깍지 껴있는 두 개의 손가락처럼 길항적 상보성이 담보되지 않는 체계라면 오행은 껍데기 존재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오행에서 상생-상극의 대칭성이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고 서로 대척적 위치에서 서로 조이고 부대끼고 적대적 공조를 하면서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인간 에게 가장 중요한 건강의 조건인 항상성이다. 이 항상성의 조건을 10가지 체질모드에서 어떻게 얻어낼 수 있는가에 대해 오장오부의 기여도를 일목요연하게 오행 체계가 스스로의 내재적 논리에 따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신체적 항상성의 조건을 오행의 내재적 조건 말고 어디서 얻고 찾아볼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오행 체계가 갖는 현묘한 진리의 지도(地圖)라고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Premium Chosun        허경구 국제정치문제연구소 이사장 aronge7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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