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He 스토리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의 '역사'

浮萍草 2015. 1. 21. 13:34
    채용때 한국史 자격증 체크… 歷史 알면 직장생활도 잘해
    경영하며 겪는 고뇌의 순간에 영웅들 傳記 읽으며 한 수 배워 회사 선배들이 해왔던 일에서 후배는 업무 노하우 배우는 법
    윤동한 회장이 서울 서초동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책장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책장에는 역사책을
    비롯해 인문학·경영 서적과 시집 등 다양한 책들로
    채워져 있다. /한국콜마 제공
    릴 적 꿈은 역사 선생님이었다. 역사책을 읽으면 옛날 사람들과 대화하는 느낌이 들고 역사를 통해 세상을 배우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또 그런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었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나의 꿈을 허락하지 않았다. 1960년대, 나라는 빈곤했고 우리 집안 역시 가난했다. 내 나이 열아홉,초등학교 교감 선생님이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40대 젊은 나이에 오남매를 남겨둔 채…. 오남매의 맏이라는 무게감은 고등학교 3학년인 나에게서 역사학도라는 꿈을 밀어내기에 충분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나는 취업이 잘되고 빨리 돈 벌 수 있는 전공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1970년 영남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농협중앙회에 입사했다. 농협 간부 후보생 시험에 합격한 유일한 지방대 학생이었다. 구두 한 켤레가 1800원이던 시절, 9만원이라는 월급으로 어느 정도 윤택한 생활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창업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5년 만에 대웅제약으로 자리를 옮겼다. 창업을 하려면 관리·생산·영업 등 경영에 관한 다양한 경험을 먼저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꿈을 품고 노력한 끝에 1990년 우리나라 최초로 화장품 ODM(제조자 개발 생산) 기업인 한국콜마를 창업했다. 제약 회사에서 배운 엄격한 품질관리 노하우를 화장품에 적용하면 우수한 품질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 감이 들었다. 창업 후 나는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남들이 쉬는 주말은커녕 잠시 갖는 휴식 시간조차 사치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내 마음 한편에 역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항상 남아 있었다. 더 나아가 역사는 내게 일상생활뿐 아니라 회사 경영에서도 지혜를 전해주는 지침서 역할을 했다. 역사는 학문 영역이라기보다 가정이나 회사 생활 그 자체라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 삐삐'라고 하던 무선호출기가 개발된 다음에 휴대전화가 나왔고 양력(揚力)을 발견한 다음에 비행기를 만들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옛 선인의 지혜와 경험을 발판 삼아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모든 건물이 1층부터 2층, 3층으로 차근차근 지어졌듯이 회사 선배가 해온 일에서 후배는 업무 노하우를 배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역사책은 또 과거의 어떤 상황 속에서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이 내린 의사 결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런 만큼 역사 속 인물들이'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를 고민하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하며 현재의 결정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윤동한 회장이 경남 하동에서 신입 사원들과
    함께 역사 유적을 탐방하고 있다.
    /한국콜마 제공
    특히 기업을 경영하는 나에게는 리더십과 경영 전략을 가르쳐 주었다. 충남 연기군에 17㎡(약 5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직원 3명을 두고 시작한 회사를 화장품 OEM(주문자 상표 부착)· ODM 분야 1위의 글로벌 기업으로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역사 속 리더들의 가르침 덕분이다. 25년 동안 회사를 이끌면서 숱한 고뇌의 순간이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어김없이 다산(茶山) 정약용,연암(燕巖) 박지원,충무공(忠武公) 이순신과 같은 역사 속 인물들이쓴 책이나 전기(傳記)를 펼쳐 들었다. 직접 경험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통해 정확한 판단과 해답을 끌어내는 정약용의 실사구시(實事求是)는 연구 개발 중심의 한국콜마를 만드는 밑바탕이 됐다. 박지원의 혁신정신(革新精神)은 제품을 선도적으로 개발하고 품질을 한 단계 높이는 필수적인 가치로 작용했다. 7~8년 전부터는 역사를 더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도 가졌다. 2007년 서울대학교 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AFP)에 입학해 우리 역사와 문화를 더 깊이 있게 접하고 인생의 행간도 심도 있게 읽을 수 있는 식견(識見)을 조금이나마 얻었다. 지금도 그때 만난 기업인들과'계영회(戒盈會)'라는 독서 연구 모임을 만들어 한 달에 두 번씩 동양사·사상사 등의 이론을 토론하고 역사 현장을 탐방하고 있다. 나는 2009년부터 신입 사원을 뽑을 때 '한국사 2급 자격증'을 따냈는지를 살펴본다. 역사는 경영·경제를 넘어 삶의 지혜까지 얻을 수 있는 공부이기에 직장 생활을 더 지혜롭고 현명하게 할 수 있을 것 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뽑은 신입 사원은 2주간의 연수 마지막 날 나와 함께 경남 통영에 가서 이순신 장군이 일본 수군에게 맞섰던 한산도와 제승당(制勝堂·임진왜란 당시 삼도 수군 사령부)을 둘러본다. 나는 2015년 한국콜마의 경영 방침을 '시이리(是而利)'로 정했다. '옳은 것을 지켜 이로움을 얻는다'는 이 글귀는 정약용 선생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담긴 내용이다. 어떻게 보면 이처럼 단순하면서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야말로 우리 회사가 정도(正道) 경영의 길을 묵묵히 걸어나가겠다는 각오를 다질 수 있는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데 세 가지 거울이 있다고 한다. 구리로 만들어 얼굴을 보는'동경(銅鏡)' 마음을 보는'심경(心鏡)'그리고 역사를 비추어 오늘을 바라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경(史鏡)'이다. 결국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혹자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시대에 과거를 돌아보는 게 바보스럽지 않으냐고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역사를 알아야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를 통해 미래를 설계하고 그 미래가 현실이 되도록 나는 오늘도 역사 속에서 길을 찾으려 한다.
    윤동한 회장은 누구인가?
    
    윤동한(68) 한국콜마 회장은 농협중앙회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창업을 꿈꾸며 1974년 대웅제약으로 옮겼다. 
    경영 전반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대웅제약 공장장 시절에는 돈이 없어 점심을 거르던 직원들에게 식사를 제공했다. 
    그러자 2~3%에 달하던 불량률이 0.5% 미만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직원이 행복한 회사가 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43세이던 1990년,화장품 제조 전문 기업 한국콜마를 세웠다. 
    윤 회장은 화장품 기업으로부터 주문받은 제품만 생산하는 차원을 넘어 스스로 새로운 유형의 화장품을 개발·마케팅하는 ODM(제조자 개발 생산) 기업
    으로 키우는 데 주력했다.
    이를 위해 자체 R&D(연구·개발) 센터를 만들고 생산 공정도 현대화했다. 
    현재 한국콜마는 총 1만5000여 회사에 제품을 판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 한국 대기업은 물론 유니레버,화이자 같은 글로벌 기업도 있다. 
    지난해에는 화장품·의약품 업계에 ODM 시스템을 도입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한국금융센터 이사장, 월드클래스300협의회 회장, 협성대학교 석좌교수를 맡는 등 사회활동에도 열성(熱誠)을 쏟고 있다.

    Premium Chosun ☜      홍원상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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