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종교

스스로 걸어잠그고 고독의 길 걷는 이들

浮萍草 2015. 1. 9. 12:32
    봉쇄수도원·무문관
    녀들의 성가(聖歌) 합창은 소름 돋을 듯 청아한데 정작 소리 주인이 안 보였다. 
    '녹음을 트나?' 싶었지만, 그들은 분명 같은 공간 안에'숨어' 있었다. 
    'ㄱ' 자 모양 성당의 신자석에선 꼭짓점에 있는 제대(祭臺)만 보이고 90도 꺾은 쪽 수도자석이 보이지 않은 것. 
    함께 미사를 올리면서도 수도자들은 속세 사람들과 눈빛도 섞지 못하는 곳, 봉쇄(封鎖)수도원이다. 
    지난 2005년 찾았던 경기 양평의 성(聖)클라라수도원 풍경은 그랬다.
    봉쇄선을 한 번 넘어가면 죽어서도 안 나오는 곳, 피붙이라도 창살을 사이에 두고서야 '면회'할 수 있는 곳. 
    이들이 스스로 봉쇄하는 까닭은 하느님과 1대1로 독대(獨對)하기 위해서다. 
    생활은 기도와 침묵에 초점이 맞춰 있다. 하루 2~3시간 '공동 휴식' 외에는 독방(獨房)과 식사·작업 때도 침묵 또 침묵한다. 
    가르멜여자수도원 8곳, 성클라라수도회 6곳 등 전국 20곳 280여(2013년 말 현재) 남녀 수도자가 오늘도 정적(靜寂) 속에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

    가톨릭에 봉쇄수도원이 있다면 불교엔 '무문관(無門關)'이 있다. 봉쇄수도원은 안에서 무문관은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근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0년까지 작정하고 들어가는 무문관에서 세상과의 통로는 하루 한 번 열리는 가로세로 30㎝ 남짓 '밥 구멍' 하나뿐. 설악산 백담사 무금선원 무문관과 계룡산 대자암 무문관 등은 작은 방에 소형 냉장고 전자레인지 커피포트, 이불 한 채 그리고 좌복(방석) 한 개가 있다. "'生死必打破(생사 문제를 타파하겠노라)"며 자청(自請)한 독방 수감(?) 생활 자신과'화두(話頭)'뿐이다. 가끔 심신 탈진한 스님이 실려나간다. 그럼 바로 다음 대기자가 들어가고 또 밖에서 자물쇠를 채운다. 교황들이 봉쇄수도원에 기도를 부탁하고,불교에서 무문관 선승(禪僧)들을 '에너지원(源)'이라 부르는 것은 절대 고독 속 수행과 기도의 힘을 알고 믿기 때문이다. "노망이 들어 무문관에 있습니다. 금족(禁足) 생활을 하기 때문에 전화 못 받습니다." 한 달 전 동안거(冬安居) 직전,설악산 신흥사 조실(祖室) 오현 스님은 지인들에게 이런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늘"떨어진 중,낙승(落僧)"을 자처하던 그는 자신이 만든 무금선원 무문관에 스스로 들어간 것이다. 유난히 추운 엄동설한, 문 없는 방에선 수행과 기도가 더 뜨겁게 익어간다.
    Premium Chosun        김한수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hans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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