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종교

지리산 중턱 오두막 12채를 놓고 기독교계와 불교계가 싸우는 이유

浮萍草 2015. 3. 5. 22:07
    전남 구례군 지리산 왕시루봉에 있는 기독교 선교사 유적지./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 제공
    남 구례군 지리산 왕시루봉 중턱에는 마치 오두막집으로 보이는 목조건물과 토담집 12채가 있다. 60년도 더 된 이 건물들을 둘러싸고 불교계와 기독교(개신교)계가 수년 전부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 건물과 얽힌 이야기는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라도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서양 선교사들은 지리산 노고단 인근에 수양관 56채를 지었다. 기록에 따르면 선교사들은 1936년 이곳에서 구약성서를 우리말로 번역하고, 선교사들에 대한 한국어 교육을 위해 한글 문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수양관은 일제 강탈, 6·25 전쟁,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대부분 망가졌고 현재는 예배당 유적만 남았다. 1962년 미국의 휴 린튼(한국이름 인휴) 선교사는 노고단에서 남쪽으로 약간 떨어진 왕시루봉 중턱에 12채의 오두막 건물을 지었다. 교회 1채, 집 10채, 창고 1채다. 이 건물들은 린튼 선교사의 아들 인요한(55)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장이 관리해왔고, 현재는 국가 소유다.
    구례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를 둘러보는 인요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장의 모습./조선DB
    바로 이 건물들이 종교계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근대문화재 등록을 둘러싸고 기독교계는 이 건물들이 근대 선교의 역사를 담고 있는 문화재이며,토속건축 자재를 이용해 세계 각국의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지은 세계 유일의 유산이라고 주장한다. 반면,불교계는 환경보호를 이유로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기독교계는 2004년부터 이 건물들을 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을 추진해왔다. 인요한 소장이 공동 이사장을 맡아 2007년 창립한 사단법인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보존연합)은 이 건물들이 있는 일대(541.82㎡)를 ‘구례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로 명명한 뒤 본격적으로 근대 문화재 등록을 추진했다. 같은 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 26개 교단도 이에 동참하기로 서명했다고 한다. 작년 3월 보존연합은“(해당 건물들은) 한국의 토속건축자재를 이용해 세계 각국의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하다”며 문화재청에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를 근대문화재로 등록해달라고 신청했다. 당시 문화재청은 신청서 보완을 요구했고 작년 11월 보존관리 및 활용계획서를 접수받았다. 이같은 기독교계의 행보에 불교계는 반발해왔다. 인근의 화엄사·쌍계사 등 지리산권 사찰들은 작년 5월“개신교계가 등록문화재라는 제도를 활용해 종교 시설의 확장과 선교활동을 도모하는 것”이라며“해당 건물은 민족성지이자 자연보존구역인 지리산의 환경을 훼손할 가능성이 매우 크므로 조속히 철거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불교계는 또“(철거 등) 요구 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지리산 권역 사찰들은 국가시책에 호응해 온 지금 까지의 입장을 전면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대립구도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지난 10일 열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근대문화재분과) 1차 회의에서 해당 건은 보류로 처리됐다. 근대문화재분과는“역사성·장소성 등 추가조사를 시행해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문화재위원인 보광 스님은“왕시루봉 일대는 반달곰 보호구역이고 해당 건물은 무허가 건물”이라며 문화재 지정을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화재청은 해당 건물에 대해 추가조사를 실시할 방침이다. 이에 화엄사 측은“해당 건물에 대해 생태계에 영향이 없는 인근지역으로 이전하자는 중재안을 수차례 제시했지만 기독교계는 이 제안을 거부했다”며“이를 등록문화재로 만들려는 것은 선교사업을 위한 일부 기독교 단체의 욕심을 자인하는 것이므로 문화재청은 이를 앞장서 지원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존연합은“보존연합이 추진하는 것은 근·현대사적 보존가치가 높은 문화재 현장을 보존하는 것이지, 이를 개발하거나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것이 아니다”는 입장을 내놨다. 보존연합 오정희 상임이사는“해당 건물은 종교적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문화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며 “실제로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은 조그마한 선교사 유적지가 아니라, 전국의 국·도립공원 안에 대규모의 사찰을 거느린 불교계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Premium Chosun        이옥진 조선일보 디지털뉴스본부 기자 june1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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