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커플링 법칙

본성의 실마리, 사단칠정론

浮萍草 2015. 1. 9. 11:52
    <몸속의 생태학을 모르고서는 스스로의 몸의 정체성을 알 수 없다. 여기 당신의 몸과 마음,그리고 뇌가 연동되어 빚어내는 다채로운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인간 행동학의 세세한 빛과 그림자를 따라가 보라. 그러면 인간 이해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 본성은 어디서 오는가? - 마음의 기원 국인들이 일찍부터 인간성이 어디로부터 유래하느냐 하는 문제에 특히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또 불행이라면 불행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인 점은 성리학은 인간의 성정에 대한 추상적인 상상력을 부단히 훈련해준다는 사실에 있고 불행인 점은 실사구시를 떠나 공리공론적인 탁상론에 그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조선조 500년간 성리학의 학문으로서의 화두를 제공한 것은 단연 사단칠정론이라고 할 수 있다. 사단칠정(四端七情)은 우주로부터 유래하는 인간 본성과 인간으로부터 유래하는 기질지성이 어떻게 서로 섞여서 인간성으로 발현되느냐의 문제다. 물론 본성과 기질이 애초부터 우주의 섭리에 의해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단이 우주 본래의 섭리를 나타내는 어떤 징표라면 칠정은 우주로부터 물려받은 기질에 더하여 인간적인 의지와 인간적인 욕망과 또 인간적인 고집이 섞인 인간 고유의 감정적 영역이다. 사단에 대해서는 맹자의 성선설부터 순자의 성악설에 이르기까지 그에 대한 해석이 구구하게 있어왔다. 사단은 인(仁)의 발현물인 측은지심과 의(義)의 발현물인 수오지심과 예(禮)의 발현물인 사양지심과 지(智)의 발현물인 시비지심의 네 가지를 말한다. 측은지심은 남을 긍휼히 여기는 태도요 수오지심은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태도요. 사양지심은 겸양과 양보의 태도요. 시비지심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태도이다. 이 네 가지의 태도를 잘 갈고 닦으면 우주의 섭리인 인의예지의 네 가지 본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단이란 그 명칭부터가 해석상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사단을 ‘끄트머리’로 풀이한다. 그러나 이 풀이는 한마디로 틀린 것이다. 영어로도 ‘tipping’으로 영역하고 있지만 그 역시 틀린 번역이기는 마찬가지다. 풍우란의 중국철학사를 영역한 Derk Bodde는 사단의 ‘단’을 beginnings로 역하고 있다. 또 일본의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가 쓴 일본정치 사상사의 영역인 Studies in the Intellectual History of Tokugawa Japan에 나오는 사단칠정의 ‘단(端)’도 ‘beginnings’로 영역되고 있다. 이것이 사단칠정의 단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가까이 다가간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이 번역이 중요하냐 하면 그 번역으로서 사단칠정을 무엇으로 이해하고 있느냐 하는 그 단서가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번역인 끄트머리니 tipping이니 하는 번역은 전혀 얼토당토않은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단칠정의 단이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모른다고밖에는 생각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번역은 하단, 상단할 때의 모서리나 끝,또는 견단(肩端)이라고 할 때에 어깨 가장자리와 같은 뜻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것은 전혀 사단의 단을 이해 못 하고 있다는 증좌다. 여기서 ‘단’이란 끄트머리라는 뜻이 아니고 ‘실마리’란 뜻이다. 따라서 ‘cue’란 단어가 더 적합하다. 무엇에 대한 실마리일까? 우주의 섭리는 그 자체가 우주를 움직이는 진리의 덩어리요, 선의 덩어리요, 옳음의 덩어리이다. 우주의 섭리에는 일호의 하자나 반치의 오차도 섞이지 않은 무궁무진한 진실의 덩어리이다. 이 진실의 덩어리에서 인간이 조금씩이라도 어떤 부분을 품수 받게 된다면 그것은 우주의 섭리를 이해하는 일단(一端)을 얻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인간이 우주로부터 보편적으로 얻어 갖게 되는 우주의 진실은 하나 즉 일단(一端)이 아니고 인의예지의 사단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무시무종한 진리의 바다로 항해하게 되는 인의예지란 네 척의 범선은 무변 광대한 가이없는 저 바다를 항해해가는 시작에 불과할 뿐이란 뜻이다. 그러나 그 네 척의 범선은 갖가지 난관을 뚫고 그리고 몰아치는 폭풍을 헤치고 저 바다로 더 나아가게 되면 그곳으로부터 예기치 않은 무진장의 황금의 보고를 발견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의예지는 오직 우주가 인간에게 내리는 시작의 시작에 불과할 뿐이란 뜻이다. 중국 북경의 자금성에 들어가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첫 번째 만나는 대문이 천안문이다.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문이란 뜻일까? 어떻든 천안문 다음에 만나게 되는 문의 이름이 단문(端門)이다. 왜 하필 단문일까? 아마 자금성을 시작하는 문이라는 뜻일게다. 단문 다음에는 오문(午門), 태화(太和)문, 그다음은 중화문, 건청문, 그리고 마지막에는 신무문으로 끝난다. 자금성은 깊고도 깊고, 넓고도 넓은 구중궁궐이다. 그 구중궁궐의 구중심처(九重深處)를 찾아가는 첫 번째 문이 단문이라는 것은 자금성이 어떠할 것이라는 하나의 맛보기로서 또는 실마리로서 보여주는 뜻으로서 단문이란 이름을 붙였을 것으로 본다. 오리무중에 빠진 사건의 어떤 실마리를 얻었을 때 사람들은 흔히 ‘단서’를 잡았다고 하지 않던가? 알 수 없는 신비한 대상에 대한 혹은 복잡한 대상에 대한 어떤 이해의 실마리를 얻게 되는 그 시발을 얘기할 때 바로 ‘단’을 쓰게 된다는 말이다. 오리무중에 빠진 사건의 단서를 얻게 될 때 그게 바로 영어로도 ‘cue’다. 마찬가지다. 무궁무진한 진실과 진리의 덩어리인 우주로부터 떨어져 나와 인간에게 품수되는 우주의 섭리도 네 가지의 단(端)으로 표시되는 것은 우주에 그 네 가지를 초월하는 훨씬 더 많은 진리의 덩어리가 있다는 것을 예시해주는 하나의 암시다. 인간이 우주로부터 얻어 갖게 되는 가장 기초적인 본성은 바로 그 네 가지, 즉 인의예지지만 인간의 노력에 따라 그 네 가지 외에도 인간은 얼마든지 더 많은 덕과 선을 우주로부터 수품 받게 될 수도 있다는 그 뜻이 사단에는 새겨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스스로 몸과 마음을 끊임없이 닦는다면 사단이 아니라 아마 십단(十端)의 우주로부터의 성총(性聰)을 입게 될지 모른다. 사단은 우주가 인간에게 맛보기로 내리는 본성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뜻이 아닐까?
    Premium Chosun        허경구 국제정치문제연구소 이사장 aronge76@naver.com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