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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IBC ‘2014 최고 과학자 100인’ 선정 안혜숙 국립수산과학원 박사

浮萍草 2014. 11. 5. 19:13
    “‘형님문화’서 살아남으려 논문쓰자 결심… 처음엔 ‘네 돈으로 연구해라’ 말도 들어”
    안혜숙 국립수산과학원 박사가 27일 오후 부산 기장군 기장읍 국립수산과학원 연구실에서 수산생명 자원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
    난 27일 오후 부산 기장군 기장읍 기장해안로에 자리 잡고 있는 국립수산과학원(수과원)은 부산역에서도 차로 40여 분 더 들어가는 한적한 곳에 바다를 마주하고 있었다. 해양수산부 산하기관으로 수산 분야 조사·시험·연구를 담당하는 연구기관이라고 했는데 이름과 퍽 잘 어울리는 장소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날 만나기로 한 안혜숙(여·51) 국립수산과학원 전략양식연구소 생명공학과 박사는 이곳에서 ‘수산생명자원의 유전적 다양성과 계군(系群)구조’를 주로 연구한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 고등어나 꽁치처럼 식탁에 자주 오르내리는 생선을 제외하고는 수산 분야를 쉽고 친근하게 느끼는 일반인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것도 수산생명자원의 ‘유전적 다양성’이라니 어떤 연구를 하는 것인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안 박사의 프로필을 보니 수상 등 이력이 참으로 화려했다. 올해 4월 영국 케임브리지 국제인명센터(IBC)의‘2014년 최고 과학자 100인’에 선정됐고, IBC가 선정한 ‘21세기 위대한 지식인 2000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IBC 외에 마르퀴즈 후즈 후 인더월드 미국 인명정보기관(ABI) 등 세계 3대 인명사전에 모두 등재돼 있다. 수과원 내에서도 두 번에 걸쳐 최우수 연구원에게 주어지는 무한탐구상을 받았고 핵심 수석 연구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진한 부산 사투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안 박사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곧장 실험실로 안내했다. 딱딱한 과학 용어만 사용하는 고지식한 과학자의 모습을 떠올렸는데 예상 밖에 안 박사는 밝고 환한 표정의 미인이었다. 실험실에 있는 안 박사 자리에는 어른 검지손가락 길이쯤 되는 붉바리(바닷물고기의 한 종류) 치어들이 시험관에 담겨 있었다. 안 박사는 붉바리들을 가리키며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양식의 가장 큰 목적은 물고기들이 잘 자라고 많이 생산되는 거겠죠. 그런데 양식기술이 발달해도 F1(잡종1세대)인 치어들이 중간에 죽는 경우가 많아요. 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유전적 획일화예요. 어미들이 소수일 때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은 F1이 나오기 때문에 온도가 높아진다거나 영양이 부족하거나 하는 조그만 변화에도 적응을 못하고 죽는다는 거죠. 다양성이라는 건 곧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 유연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어요. 저는 이런 수산자원의 다양성을 연구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안 박사는 새로운 어종을 개발하는 것보다 수산 자원관리에 관심이 많고 특히 다양성을 가장 중요한 연구 분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전복을 예로 들어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이 자원관리에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전복을 무조건 방류하면 안 됩니다. 전복 자원이 획일화된 상태일 수 있는데 자연상태에 그대로 뿌리면 자연상태에 있는 전복들마저 획일화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방류하기 전 유전적 다양성 상태를 미리 파악해 놔야 한다는 겁니다.” 안 박사는 자원관리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주로 얼마나 잡히느냐로 자원을 관리해요. 예컨대 동해안에서는 많이 잡히는데 서해안에서 적게 잡힌다면 서해안에 방류를 많이 하자는 단순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거죠.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생산량이 아니라 유전적 다양성을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무턱대고 개체수를 늘리는 것보다는 해당 수산 자원이 얼마만큼의 유전적 다양성을 갖고 있고 주변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지 사전에 조사하는 게 자원관리에 효율적 이라는 것이다. “양식을 잘하기 위해서도, 또 자원관리를 잘하기 위해서도 선제적으로 유전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안 박사는 왜 수산 분야 그것도 수산생명 자원관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학부 시절 사범대에서 생물교육을 전공하고 일본에서 유학하는 동안 분자유전학을 공부했어요. 수산 쪽과는 거리가 멀었죠.” 1997년 수과원에서 낸 DNA 분석 분야 채용공고를 보고 우연히 수과원과 인연을 맺으면서 안 박사의 연구가 시작됐다. 유전자 분석을 주로 하던 안 박사에게 수산 분야의 벽은 높았다.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었어요. 수산 생물 이름조차 몰랐으니까요. 정서도 낯설었다. “수산 분야에는 남성분들이 많았고 수과원은 특히 서로 ‘형님’하고 부르는 문화가 강했어요.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들과 차별화를 할 수 있을까 하고요.” 안 박사가 찾아낸 방법은 바로 논문을 쓰는 것이었다. 당시 수과원에는 논문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 시스템조차 없었다고 한다. “처음 논문을 쓰기 시작했는데 욕도 많이 먹었어요. ‘여기는 논문 쓰는 곳이 아니니 당신 돈을 들여 연구하고 논문을 쓰라’는 말까지 들었을 정도였어요. 굴하지 않고 계속 연구하고 쓰다 보니 SCI(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급 논문만 60여 편을 썼습니다. 우리 수과원에서도 2004년부터 논문을 평가하기 시작했는데 덕분에 논문으로 가장 많은 인센티브를 받은 사람도 제가 됐습니다. 논문 인용이 늘어나다 보니 세계 3대 인명사전에 등재되기도 했고요.” 수산생명 자원관리에 집중하게 된 것도 이런 고민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여기에서 제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 자원관리 분야의 중요성이 눈에 띄었어요. 수과원이 어떤 일을 하는지 살펴보다가 이렇게 중요한 일을 아무도 하지 않는구나 싶었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안 박사는 수산생명 자원관리가 전 세계적인 흐름이고 대세가 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안타까워했다. “지금 세계적인 트렌드가 바로 ‘자원주권’이고 ‘자기 자원 관리’예요. 그렇기 때문에 ‘생명자원’이라는 용어도 씁니다. 농업에서 종자를 관리하는 것처럼 수산 분야 역시 우리나라 것이 어떤 것인지 미리 점찍어둘 필요가 있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초기단계입니다.” 안 박사는 이를 전담할 정부 부처들이 쪼개졌다 합쳐졌다를 반복하다 보니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지체되는 측면도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과거 농림수산식품부와 국토해양부가 있던 시절 수산생명자원법과 해양생명자원법이 각각 만들어졌는데 법에 따라 사업을 진행하기도 전에 해양수산부가 생기면서 법이 합쳐지지 않은 상태로 방치됐다고 한다. “법이 취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3년째 일하고 있어요. 수과원 내에서도 유전자 분석을 통해 자원을 관리하는 일은 신생 업무입니다. 하지만 패러다임 자체가 확 바뀌어서 유전적인 백그라운드 없이는 뭐 하나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인력 보강 등 지원이 절실합니다. 다행히 내년에 예산도 배정되고 법도 합쳐질 것으로 보이긴 합니다.” 그는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는 지금 이 순간에도 소중한 바다생명들이 없어지고 있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수산생명 자원이 언제 식량자원으로 부각될지 모르는데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적습니다. 우리나라에 얼마나 다양한 어종이 있는지 서둘러 파악해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한 해에 멸종되는 종(種) 수가 엄청나다고 합니다. 몇 십년 후에는 잔존 종 가운데 3분의 1이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어요. 저는 DNA를 도구로 삼아 관리하겠다는 것이고요. 그런 차원에서 고유종, 멸종위기종, 가치있는 양식 대상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 유전적인 배경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안 박사는 두 달여 전 고급 어종인 붉바리,자바리를 능성어와 구별하는 방법을 발견해 특허 출원했다. “붉바리나 자바리 같은 어종은 횟감으로 애용되는 비싼 어종인데 최근 중국산 능성어와 섞여서 팔리고 있습니다. 이들을 구별할 수 있는 마커를 개발해 사용했더니 진짜 붉바리,자바리와 가짜 붉바리,자바리를 구분할 수 있었어요. 사회적 반향이 크더라고요.” 안 박사는 하지만 어종을 구별하는 도구를 개발하는 일보다 아무래도 자원관리에 관심이 더 간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왜 붉바리나 자바리 같은 어종이 우리나라에 조금밖에 없는지,어떤 조건이 맞지 않아 수가 적은 건지 궁금합니다. 원래 많았었는데 특정한 이유로 줄었는지도 모르고요. 유전적 다양성을 조사하다 보면 거기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안 박사는 앞으로도 우리나라 고유종,멸종위기종 자원을 관리하고 우량한 양식 어종을 만들기 위해 유전자를 분석하는 일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현재까지 사회적인 관심이 적은 게 사실입니다. 양질의 F1을 받기 위해서는 어미 수를 어느 정도 확보해야 하고 유전적 풀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어민들에게 지금은 와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생명자원에 대한 관심이 뜨겁기 때문에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선진국들처럼 체계적으로 자원을 관리하고 이를 위해 유전자 분석을 기본으로 하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저도 계속 일조할 겁니다.”
    Munhwa ☜       부산=박수진 문화일보 경제산업부 기자 sujininva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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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박사의 ‘경단녀’ 탈출기… ‘무보수 강의’ 이웃女 보고 결심… 참고 견디니 ‘장벽’ 사라져
    안혜숙 국립수산과학원 박사가 연구실에서
    붉바리 특성 분석을 위해 유전자 추출 작업을
    하고 있다
    혜숙 박사도 한때 고학력 ‘경단녀(경력단절여성)’였다. 부산대 사범대학(생물교육과)을 졸업하고 한 달간 교편을 잡기도 했던 안 박사는 1988년 일본 문부성 장학금을 받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도쿄(東京)대에서 초파리의 움직임과 유전자의 관련성 등을 연구하던 안 박사는 박사 학위를 마무리할 때쯤 한국 에서 연락을 받았다. 교수 자리가 많으니 서둘러 귀국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돌아오고보니 안 박사가 전공한 분자유전학 쪽 수요는 거의 없었고 일자리가 있어도 무보수 일자리뿐이었다. 실망한 안 박사는 남편의 일터가 있던 경북 포항으로 가서 살림에 전념하기로 했다. 그렇게 평범한 주부로 남을 뻔했던 안 박사기 다시 일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바로 이웃 주민들 때문이었다. 당시 안 박사 남편은 포항에 있던 대형 연구소에서 근무했는데 연구소에서 연구원들에게 아파트를 제공했다. 안 박사처럼 남편을 따라 포항으로 온 고학력 여성들도 많았는데 대부분 일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하버드대를 나온 분이 있었는데 자질을 썩히기 아깝다며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대학까지 시간강사를 나가고 인근 인력개발원에서 무보수로 기꺼이 강의를 하더라고요. 큰 충격을 받아서 이대로 놀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러던 차에 지금 다니고 있는 국립수산과학원에서 DNA 전공 연구원을 모집한다는 채용공고를 보고 응시,재취업에 성공했다. 이후 안 박사의 삶은 여느 워킹맘처럼 고단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남편과 떨어져 두 아이만 데리고 부산에서 지낸다는 게 쉽지 않았다. 안 박사는“그때는 정말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며”밤 9∼10시에 퇴근해서 그때부터 아이들의 뒤떨어진 공부를 봐주곤 했다”고 말했다. 경제적으로도 윤택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집안일을 돕는 아주머니를 고용했는데 급여 100만 원 중 아주머니 월급으로 90만 원을 지불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일을 다시 시작한 데 대해 후회한 적은 없다. 안 박사는“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니 집안일도 줄었고 초반에 답보상태였던 일도 시간이 흐르니 투자한 결과가 그대로 나타났다”며“그 시기만 참고 견디며 극복하니 장벽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Munhwa ☜       부산=박수진 문화일보 경제산업부 기자 sujininva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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