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Her Story

“제가 영어로 논문을 쓰면 ‘국악의 세계화’에 한몫하겠죠”

浮萍草 2014. 10. 23. 11:26
    힐러리 핀첨 성 서울대 국악과 교수가 지난 7일 연구실에서 외국인으로서 국악을 연구하는 것이 국악계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이유를 설명하며 웃고 있다.
    김연수 선임기자 nyskim@munhwa.com

    ㆍ힐러리 핀첨 성 서울대 국악과 교수 러리 핀첨 성(42) 서울대 국악과 교수와 인터뷰하기로 한 지난 7일 오후. 서울대 음대 53동 216호를 찾았다.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서는데 사람이 아닌 해금 연주 소리가 먼저 맞아줬다. 해금을 연주하는 핀첨 성 교수의 표정이 매우 진지했다. 빨랐다 느려졌다, 활대가 길게 움직였다 짧게 왔다 갔다를 반복하며 뿜어내는 음색은 명인의 연주에 견줘도 손색이 없었다. 노란 머리와 파란 눈의 외국인이 연주하는 해금. 해금 연주가 이렇게 매력적이란 사실을 외국인의 연주를 통해 느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우리 악기를 외국인이 ‘정말 잘’ 연주하는 장면 자체가 상당히 독특하고 이색적이었기 때문인 듯했다. 그런데 서양악기를 연주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익숙한데 왜 우리 악기를 연주하는 외국인은 낯설게 보이는 걸까. 편견일까. 아직 국악기가 세계화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묻고 싶은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한동안 묵묵히 연주를 지켜봤다. 활대가 멈췄다. ―연주가 정말 좋은데, 무슨 곡을 연주한 겁니까. “해금 산조예요. 지영희류.” ‘해금산조 지영희류’는 1930년대 지영희 선생이 해금명인 지용구 선생과 김덕진 선생으로부터 해금시나위를 사사한 뒤 국악예술학교 출신 김영재,최태현 등에게 전수한 해금산조의 한 갈래다. ― 해금을 배운 지는 얼마나 됐나요. “6년쯤 됐는데, 전공은 아니에요. 전공은 이론이죠.” 그의 말대로 그는 연주 전문가는 아니다. 미국 인디애나대학에서 석사 때까지 음악치료학을 전공했다. 대학원에서 우연한 기회에 국악을 접한 뒤 국악 연구자가 됐다. 본인은 이론가일 뿐이라고 하지만, 국악기 6개 정도는 다룬다고 했다. “거문고는 기본이에요. 잘 연주하진 못하지만, 국악 악보가 거문고 악보로 많이 돼 있어요. 그래서 이론을 할 때 거문고는 필수예요. 장구 같은 경우도 기본적인 정도는 연주해요.” 핀첨 성 교수 연구실 한켠에는 장구 2개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풍물장구고 하나는 반주장구예요. 풍물장구는 채 없이 손으로 쳐요.” 몇 마디 질문을 던질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답하는 그의 모습은 국악에 얼마나 열정적인지 알 수 있게 했다. 자연스럽게 국악을 전공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석사 때는 음악치료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인디애나대학에 1970년대부터 한국을 연구한 분이 계신데, 굿음악이나 무속음악에 대해 관심 있으면 책을 한 번 보라고 권해줬어요. 그때만 해도 (한국)무속음악에 대한 책이 별로 없었어요. 샤머니즘 관련 기본적인 것만 있었죠. 인디애나가 작은 도시라 CD 파는 곳도 한 군데밖에 없었는데 거기서 파는 한국음악 CD도 세 개밖에 없었어요. 판소리와 궁중음악하고 시나위 음악이 있었는데 굿음악에 관심이 있다 보니 시나위를 먼저 들었어요. 듣자마자 그 소리에 놀랐죠. 지도교수님께 한국 음악이 좋더라, 더 알고 싶다고 했더니 곧바로 다음 학기부터 한국말을 배우라고 하셨죠.” ― 그럼 계속 무속음악 쪽만 연구했습니까. “석사 때 무속음악 쪽으로 공부하다가 박사과정 때는 창작국악, 현대국악의 정체성 같은 주제에 관심이 갔어요. 그래서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한 2년간 작곡가들, 연주가들 만나면서 그런 부분을 공부했어요.” ― 국악을 처음 접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굉장히 놀랐어요. 상상한 것, 기대한 것과 너무 달랐어요. 흙소리랄까, 자연에 가까운 소리라는 느낌이 들었죠. 어, 이거 재밌다, 좋다 하면서 계속 들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그 소리 때문에 무속음악, 문화에 관심을 가졌죠. 사실은 어렸을 때는 한국에 대해 잘 몰랐어요. 1970년대, 1980년대 미국 학교에서는 동아시아 문화, 역사, 사회에 대해 잘 안 알려주고 그냥 미국 역사만 배웠어요. 동아시아에 대해서는 중국하고 일본 얘기 조금 배웠을 뿐이에요. 한국 음악은 그냥 기본적으로 중국이나 일본 음악과 비슷하겠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나위 듣고 깜짝 놀란 거죠.” ― 외국인 입장에서 국악을 연구한다는 것이 다른 점이 있을까요. “좋은 점이 많습니다. 문화적으로 입장이 다르잖아요. 미국 사람이니까. 내가 그동안 배운 게 달라서 국악을 달리 보고 원래 했던 사람과는 좀 달라요. 사실은 학문적으로 공헌할 수 있는 게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연구하고 논문을 쓰면 다른 인류음악 연구와 연결할 수 있거든요. 그게 굉장히 중요해요. 국악이 세계적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외국에도 한국 음악을 알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작 영어로 된 한국 음악 출판물은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내가 영어로 쓰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 같은 사람이 논문도 많이 쓰고 책도 많이 쓰면 점점 더 한국 음악에 대해 영어로 쓴 책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싶더군요.” ― 국악 발전에도 좋겠군요. “물론이죠. 연구하는 방식이나 스타일이 다양해질 수 있으니까요.” ―외국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우리 국악이나 국악계의 문제점도 있나요. “많은 사람이 국악하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옛날 음악이고 재미없고 어렵고 학교에서 잘 안 가르쳐주고…. 이런 식으로 알고 있어요. 1960년대 1970년대는 굿하면서 하는 게 국악이다, 그런 사회적인 인식이 있었던 탓에 부정적인 생각이 강하죠. 조심스럽긴 하지만, 국악 이론 하는 분들 보면 고등학교,대학교 때부터 공부를 시작해서 벌써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물론 다 그렇지는 않지만요.” 국악계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핀첨 성 교수는 상당히 조심스러워했다. 아무래도 한국인이 대다수인 국악계에서 외국인 교수가 쓴소리를 하긴 어려운 입장일 듯했다. 그래서 주제를 좀 바꿔 다시 음악 얘기로 돌아갔다. ― 시나위, 뭐가 그렇게 매력적입니까. “같은 연주자들이 연주하는데도 항상 다르게 연주하니까요. 사실 옛날에는 시나위의 즉흥성이 굉장히 높았어요.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도 그 포맷 안에서 이런 선율,이런 장단 안에서 다 다르게 연주했어요. 그런데 요즘엔 사실 교과과정 안에서 배워야 하니까 다 외워서 연주하는 거라서 젊은 연주자들이 즉흥적으로 연주할 줄은 알지만 옛날 방식처럼 연주하기는 좀 어려워 해요. 안 배웠으니까.” ― 시나위의 매력은 즉흥성이라고 생각하는 거군요. “내 생각엔 즉흥성이에요. 무대에서 연주하는 시나위와 굿할 동안 하는 시나위는 완전히 달라요. 전남 진도에서 씻김굿 하는 사람들 가운데 어렸을 때부터 연주한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중 한 가족을 본 적이 있는데 (연주가) 정말 좋았어요.” ― 굿 현장에서 하는 게 즉흥성이 더 높다는 얘기군요. “당연하죠. 몇 시간도 아니고 며칠 동안 하는 거잖아요. 그런 걸 잘 해야 해요.” 핀첨 성 교수는 어린 시절 바이올린을 배우기도 했다. 음악이 좋아 자발적으로 바이올린을 배운 줄 알았는데 사촌오빠가 쓰던 어린이용 바이올린이 생겨 배우기 시작했단다. “원래 하고 싶었던 악기는 첼로였어요. 사촌오빠가 큰 악기로 바꾸면서 작은 바이올린을 물려받아 시작했죠. 저음을 워낙 좋아하는데, 바이올린의 가장 낮은 음역대 음인 ‘G(솔)’ 소리를 너무 좋아했어요. 계속 그렇게만 연주하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도 G 소리를 낼 때 그 떨림이 너무 좋았거든요.” ― 그런데 해금은 그런 저음 음역대가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약간 듣기 힘들어요. 그런데 연주할 때 바이브레이션, 떨림이 너무 좋아요. 바이올린은 저음에서만 느낄 수 있는데, 해금은 달라요. 연주하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죠. 비슷한 점이라면 활을 사용한다는 것뿐이에요. 연주법은 아주 달라요. 그래서 사실 바이올린 연주하다가 해금 연주하면 문제가 많이 생길 수 있어요. 손의 자세나 손목 꺾임이 아주 다르거든요. 그래서 선생님한테 많이 혼났죠. 손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하.” ― 연주법 외에도 해금과 바이올린이 다른 게 있습니까. “생각하는 것도 많이 달라요. 바이올린은 악보가 아주 중요해요. 바이올린은 악보를 보면 연주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딱 나와요. 그런데 해금은 그렇지 않아요. 정악에서 쓰는 악보를 봐도 그냥 음만 나오지 다른 게 안 나와요. 표현하는 걸 알아서 배우고, 스스로 적어서 해야 해요. 신경을 많이 써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많이 들어야 그 느낌을 알 수 있어요. 산조 같은 경우 악보로 배우는 음악이 아니었어요. 시나위도 마찬가지이고. 선생님 하는 거 듣고 그 스타일로 배우는 거였죠. 더 깊게 이해해야 연주를 잘 할 수 있어요. 악보만 본다고 되는 게 아닌 거죠.” ― 국악 연주가 더 어렵겠군요. “예를 들면 산조하면 여러 조 선율 타입이 있는데 그걸 이해해야 연주할 수 있어요. 물론 연습도 해야 해요. 어떤 콘텍스트(맥락), 상황을 이해해야 연주를 잘 하는 거죠. 서양음악도 물론 그런 걸 다 알면 도움이 되지만 특히 국악은 문화와 연결이 굉장히 많이 돼 있어요. 산조 같은 경우 원래 판소리에서 쓰는 선율과 연주법이 온 건데 말하자면 악기로 스토리텔링을 하는 거예요. 그 느낌을 잘 전해야 해요. 제가 덕수궁에서 외국인들하고 연주한 적이 있는데 너무 실수를 많이 하다 보니 연주 끝나고 사회자가 ‘해금은 음을 찾기 힘든 악기입니다’ 라고 격려해줬어요. 많이 창피했죠.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이 ‘스토리를 듣는 거 같았다’고 말해줘서 희망을 얻었어요. 느낌을 전달했다는 얘기니까요.” 핀첨 성 교수의 남편은 한국 사람이다. 부부는 슬하에 13살짜리 딸 성다인 양, 9살짜리 성현모, 성준모 군 등 쌍둥이 아들이 있다. 핀첨 성 교수의 국악에 대한 열정을 자녀들도 이어받았을까. “딸은 중2인데, 케이팝(K-POP)에 완전히 빠져 있어요. 어렸을 땐 국악 공연을 같이 잘 보러 다녀 잘 본다고 생각했는데 중학교 때부터는 안 간다고 하더라구요. 싫어한다기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쌍둥이들은 적어도 싫어하진 않아요. 연주회에 같이 가도 문제 없이 보곤 하죠. 집에서 제가 연습하는 선율을 외워서 목소리로 따라 하기도 하구요. 옛날 해금을 아이들 손에 맞게 고쳐서 줬는데 ‘반짝반짝 작은 별’ 같은 것을 연주해요. 그러면서 저한테 들어보라고 그래요.” 핀첨 성 교수는 뜻밖의 고민(?)도 들려줬다. 미국인인 그녀 역시 한국에서 영어 스트레스를 겪는다는 것. 그는“주변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항상 영어 1등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영어학원에 안 다니다보니 1등 못하는데 사람들이 물어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털어놨다. 핀첨 성 교수는 점점 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국악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정부가 정규 교과과정에서 국악이 제대로 교육되도록 교실에서 실제적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신경 써주면 좋겠어요. 우리 아이들도 학교에서 서양음악도 배우고 국악도 배우지만 국악은 정규 수업이 아니라 방과후 과외 활동이라는 인식이 있어요. 정규 교육 안에서 교사들을 잘 수급해 주면 좋지 않을까 싶군요. 또 부모님들은 주변에 좋은 국악 공연이 많으니까 아이들하고 재밌게 보러 가세요. 무료 공연도 많아요.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놀러 가는 기분으로, 가볍게 가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Munhwa ☜       장석범 문화일보 사회부 기자 bum@munhwa.com

      草浮
    印萍

    외국 음악과 다른 점 알리기 위해 수업 땐 영어·한국어 함께
    핀첨 성 교수의 서울대 생활
    힐러리 핀첨 성 서울대 국악과 교수가 7일 연구실에서
    해금을 연주하고 있다. 김연수 선임기자
    러리 핀첨 성(42) 교수는 서울대에서 인류음악학 개론을 국악 전공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학부생들을 위해 교양수업으로 세계음악, 한국음악개론을 영어로 수업하고 있다. 전공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한국 음악과 다른 나라 음악이 어떻게 다른지 등을 제대로 알았으면 하는 바람에 수업시간에 영어뿐 아니라 한국어도 많이 섞어서 수업한다. 핀첨 성 교수가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것은 2009년이다. 당시 서울대에서 외국인 교수를 채용해 더 국제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하길 원했고 국악과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음악 이론을 하는 외국인 교수를 찾았다. 외국에서 국악 이론을 연구하는 지인을 통해“서울대 교수 자리가 났으니 관심 있으면 지원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당시 시간강사를 하던 핀첨 성 교수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국 교수가 되려면 이번 기회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서울대 교수로 지원하게 됐다고 한다. 국내 국악계에는 핀첨 성 교수와 같은 외국인들이 드물지만 더러 있다고 했다. 핀첨 성 교수의 소개에 따르면 조세린 클락 배재대 교수가 20년 가까이 가야금을 연주하며 실력을 쌓아 현재는 국내 국악계에서도 상당한 명성을 얻고 있다고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스위스 국적으로 사물놀이를 공부하고 있는 핸드리케 랑게 씨와도 함께 연주한 적이 있단다.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 출생 인디애나대 음악치료학 학사·석사 1999년 연세대 교환학생 2000년 재미교포 남편과 결혼 미들테네시주립대대학원 민속종족음악학 박사 샌프란시스코대 강의 2009년 서울대 음대 국악과 교수
    Munhwa ☜       장석범 기자 bum@munhwa.com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