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이봐 해봤어?'

34 정주영과 구자경(中)

浮萍草 2014. 10. 20. 12:47
    LG 구자경 회장, 정주영 회장의 전기를 책상에 내던지며...
    2001년 3월 21일 정 회장이 86세를 일기로 타계했을 때 구 회장의 애틋한 애도의 감정과 상실감이 누구보다도 더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구 회장은 추모사에서“저와는 10년 연배이신 아산이셨지만 청운동과 원서동에 이웃해서 살면서 격의없이 마음을 주고받았던 선배요,재계의 동지였다”고 했다. 
    그러나 구 회장의 심중에는 IMF 여파로 몰아쳤던 1998년과 2000년 사이에 진행되었던 현대 반도체와 LG와의 빅딜 결과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앙금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이 타계한지도 약 5년쯤이 지난 2006년 경 어느 봄날 필자는 연암 문화재단이 있는 성환 농장으로 은퇴해서 지내고 있는 구자경 회장을 찾았다. 
    구 회장이 전경련 회장단의 한사람으로 있을 때,그리고 그가 전경련 회장이 된 후에도 사무국 임원으로 한동안 그를 보좌할 때 그의 총애도 받았던 인연으로 문안을 겸한 
    방문이었다. 
    구 회장은 걸음이 약간 불편했지만 골프 카트를 타고 다니며 버섯 재배 전통 청국장 발효 그리고 자신이 개발한 별미의 국수도 만들며 취미와 여가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전경련 시절 얘기를 나누며 농장에서 만든 별미의 점심 대접을 잘 받은 다음“이것은 제가 과거 정 회장님과 구 회장님 두 분을 모시며 제 체험담을 엮은 정 회장님과 
    전경련 얘기를 쓴 책입니다”라며 필자가 쓴 책 ‘이봐, 해봤어?’ 한 권을 앞에 내놓았다. 
    구 회장은 아무 말 없이 책을 받아서 탁자 옆에 놓았다. 
    구 회장이 대충이라도 책장을 넘기며 몇 마디라도 옛날 얘기를 건넬 것으로 기대했던 필자는 좀 머쓱할 수 밖에 없었다. 
    좀 어색한 시간이 지난 후 구 회장이 개발했다는 별미인 마른 국수 한 상자를 선물로 받아 가지고 찜찜한 마음을 뒤로하고 돌아왔다.
    사돈을 맺은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과 LG그룹 구자경 명예회장이 결혼식장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정 명예회장의 손자 일선씨는 구 명예회장 조카뻘인 은희
    씨와 지난 1996년 8월 24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결혼식을 올렸다./조선일보DB

    거기서 구 회장을 보필하고 있던 사람이 마침 전부터 면식이 있는 사람이라 궁금한 끝에 내가 그 자리를 나온 후 구 회장의 심기에 대해서 전화를 걸어서 물어 보았다. “회장님은 박 사장이 자리를 뜨자마자 앞에 놓였던 책을 들었다 탁자 위에 내 던지시며 ‘에잇 이 영감!’ 하며 한동안 분을 삭이지 못하셨다”라고 전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충격과 착잡한 마음을 거둘 수가 없었다. 그것은 정 회장 생전에 두 사람 사이의 아름답고 풋풋한 우정을 오랜 동안 보아와서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배경은 앞서 말한 대로 김대중 정부가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탈출을 위한 몸부림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던 빅딜에 있었다. 당시 빅딜 조정의 정부측 비상대책위원회 기획 단장으로 이 일의 중심 역할을 맡았던 이헌재씨가 근래에 한 중앙 일간지에 빅딜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소상히 밝힌 바가 있다. 그는 이 민감하고 어려운 역할을 수행하면서 그 특유의 기치와 대쪽 같은 기질,그리고 예리한 판단력으로 세인의 주목을 끌었었다. 세상의 관심은 대그룹들에게 수조원의 이해와 주력 기업의 존폐가 엇갈리는 그 살벌하고 엄청난 빅딜 과정에 있어서 대상 기업들 사이에 누가 유리한 입장을 얻어내기 위해 당시 권력의 실세를 대상으로 어떤 로비활동이 있었나 하는 것과 그 과정과 결과가 공평했었나 하는 데에 모아졌다. 그는 특히 현대 반도체와 LG사이의 빅딜에 관한 이야기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그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연재한 이 글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나 권력의 어느 실세로부터의 영향도 받지 않고 공정하게 진행되었음을 밝히는데 역점을 두었다.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일을 아주 잘한다고. 수고 많았어요” 당시 비대위 김용환 위원장의 소개로 처음 만난 김대중 대통령이 그에게 한 말의 전부였다. 그 뒤 금감위원장과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재직하는 2년여 기간 동안에도 대통령과 단 한번, 5분간의 독대가 전부였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그 살벌했던 구조조정 소용돌이 속에서 DJ는 한번도 개인적인 청탁을 하거나 정책에 대해 간섭한 일이 없었다. 재벌 개혁과 기업 워크아웃, 빅딜, 은행 퇴출……사람들이 길거리로 내몰렸다. 기업은 쪼개지고 합쳐지고 팔렸다. 그에게 들어온 청탁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런데도 DJ는 한번도 ‘누구를 봐줘라, 어느 회사는 손봐줘라’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가 내게 물어본 것은 단 두 가지였다. ‘원칙에 맞는 것이오?’ 그리고 ‘절차는 공정했나요?’였다. 그리고 그것은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정권 초기 나는 온 신경을 정책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청와대의 의중을 읽으려고 고개를 기웃거릴 필요도 지레짐작으로 누굴 봐주고 안 봐줄 필요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오해와 불만도 샀다. 음해도 받았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Premium Chosun        박정웅 메이텍 인터내셔널 대표 ltjwpar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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