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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보광사

浮萍草 2014. 6. 29. 09:35
    허공에서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 목어
    ▲ 목어는 중국 선원에서 공양간이나 행랑에 걸어두고 대중을 모으기 위해 두들겨 소리를 낸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원래 바깥쪽에서 두들겨 소리를 내던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내부를 파내 울림 공간을 만들어 소리를 보완하는 형태로 변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만세루는 왕실원찰의 기본구조를 따랐다.법당에 들어갈
    수 없는 상궁이나 부녀자들이 이곳에서 예를 올리게끔 만든 것이다.본래 누각이었다고 하니 과거에는 이 건물 밑으로 들어와 대웅보전을 처음 만나는 구조였을
    것이다.이 원통전 뒤에 최근에 새로 단장한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영정과 신위가 모셔진 어실각이 있다.그 옆에 영조가 심었다는 향나무가 오롯이 남아 풍경의
    깊이를 더해 주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은 못에 한가로이 헤엄치는 물고기를 바라보는 나긋한 시간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부드러운 유영의 몸짓에는 평안함이 있다. 그런 감미로운 시간은 연못을 찾아야만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산 속에 자리한 절집 또한 물고기들의 향연 못지않다. 법당 내부의 천장이나 벽에서부터 기둥을 비롯해 지붕을 받치는 공포에까지 유심히 들여다보면 꽤나 다양한 곳에서 물고기를 만나게 된다. 그야말로 물 없는 물속이 따로 없다. 그 가운데에서도 단연코 잘 알려진 물고기는 역시 풍경(風磬) 아래 매달린 녀석이다. 잡을 수도 가둘 수도 없는 마치 인생의 한 자락 같은 바람을 품으며 만들어 내는 맑고 청아한 풍경소리는 물고기가 아니면 안 될 것처럼 익숙해졌다. 절집의 물고기는 풍경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람의 노고가 직접 들어가야 울리는 물고기 소리도 있다. 법고,운판,범종과 함께 사물(四物)로 일컬어지는 목어(木魚)다. 아마도 목어는 절집에 있는 물고기들 중에서도 가장 크고 두드러진 모습의 사찰 물고기의 진수가 아닐까. 그런 목어 중에서도 빼어난 수작이 파주 보광사 만세루에 걸려 있다. 작은 바람이 불자 대웅보전 추녀 아래 물고기가 풍경 소리를 낸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사유의 수중에 먼지처럼 보잘 것 없는 내 상념의 조각들이 그 사이를 조용히 떠다니고…
    신라 진성여왕 8년(894년)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보광사는 당시에 한강 이북 6대 사찰에 꼽혔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고려시대에는 원진국사,조선시대에는 무학대사에 의해 중창을 거듭했다 하니 과거의 전성기를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임진왜란의 화를 피하지 못하고 모두 소실되었고 광해군 때 다시금 복원이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과거의 영화에는 미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것이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묘인 소령원의 원찰이 되면서 왕실의 발길이 이어졌는데 그마저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대웅보전과 만세루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사라져 아쉬움만 더한다. 지금은 지속적인 불사를 통해 많은 건물들이 다시금 자리를 잡았다. 목어가 걸려 있는 만세루 처마 밑에 앉아 대웅보전을 바라본다. 목어는 범종각을 비롯해 몇 번 자리를 옮겨 왔는데 지금 걸려 있는 이곳이 왠지 가장 잘 어울리는 것만 같다. 늘 그렇듯 과거는 현재의 익숙함에 밀려나 희미해지게 마련인 것이다. 이 오래된 목어는 어변성룡(魚變成龍)의 의미를 잘 담고 있다. 물고기의 몸에 뚜렷한 용의 얼굴을 한 균형 잡힌 풍채로 안정감이 돋보인다. 이토록 절집에 물고기가 많다는 것은 물고기가 갖는 상징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흔히 물고기는 잘 때도 심지어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는다고 하여 항상 부지런하게 수행하라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의 모습이 일체의 제약에서 벗어난 어떤 경지를 보여준다고도 한다. 나는 고요한 절집 마루에 앉아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들의 보이지 않는 길에 대해 생각했다. 미동 없는 그들의 몸짓은 물속보다 오히려 허공에 매달려 더욱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은 아닐까. 작은 바람이 불자 대웅보전 추녀 아래 물고기가 풍경 소리를 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사유의 수중(水中)에 먼지처럼 보잘 것 없는 내 상념의 조각들이 그 사이를 조용히 떠다녔다.
    ☞ 불교신문 Vol 3021 ☜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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