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100세 시대 은퇴대사전'

19 손자, 봐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浮萍草 2014. 9. 13. 11:05
    국과 달리, 우리나라 부모들은 유독 자녀들에게 학비와 결혼자금을 많이 대주려고 노력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물론 옛날에는 부모가 자녀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고 나면 자녀들이 부모를 극진하게 모셨기 때문에 이런 노후빈곤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대주고 나면 노후빈곤이 기다리고 있다. 
    자녀들은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를 지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몰빵’ 투자를 하면 할수록 부모들의 노후생활이 크게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노년의 삶은 부부 중심으로 살아가는 게 현명하다. 자녀들을 열심히 키우고 교육시킬 때 가졌던 자녀 중심의 사고방식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은퇴 가정 가운데선 여전히 자녀 위주의 삶을 사는 곳이 아주 많다. 
    자녀와 손주들이 부부관계의 중심에 놓여 있는 사람들은 하루빨리 사고방식을 바꿔야 피곤한 인생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은퇴할 때까지 자녀들에게 돈을 퍼주고 나서, 나이 들어 부부가 따로 독립해서 살겠다는 이런 삶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필자의 계산으로는 이것은 절대 가능하지 않은 셈법이다.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위선(僞善)일 뿐이다. 
    우리나라 부모들이 쓰는 교육비는 세계 최고수준이다. 
    월급의 20∼30%를 사교육비로 지출하는 학부모 고등학교 졸업자의 80%가 대학에 진학하는 현실을 보면 우리나라 중·장년층이 얼마나 교육비 부담을 크게 지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더 문제를 악화시키는 것은 자녀들이 결혼비용을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녀들이 결혼할 때 전세집을 마련하고 가전제품을 구매하는 돈들이 모두 부모 지갑에서 나온다. 
    자녀를 출가시킬 때 결혼비용으로 1인당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까지 지출한다. 
    그래서 결혼행사가 끝나면 집안 기둥이 무너진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서는 대한민국에서 노후를 해결할 수 있는 부모들이 많지 않다. 
    자녀의 인생과 나의 인생은 다르다는 인식을 하지 않으면 노후자금이 곧 바닥날 수밖에 없고 죽을 때까지 하루 종일 집에서 TV 연속극을 보면서 빈둥거리게 될 것
    이다. 
    이런 노후를 우리가 꿈꾸는 것이 아니다. 
    한국인들의 이 같은 모순된 사고방식은 조만간 사라져야 한다.
    자녀들에게 무조건 항복하는 한국 부모들의 생활습관은 자녀를 결혼시킨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삼성경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맞벌이 부부의 64.5%가 아이 양육을 조부모에게 맡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어 어린이집(43.5), 베이비시터 아주머니(13.9%)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사실 맞벌이를 해야 하는 자녀 입장에서는 부모만큼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양육자를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자녀 때문에 노후 인생까지 저당 잡히는 것은 곤란하다.
    워킹 맘(working mom)을 대상으로 한 보건복지부의 보육실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우리나라 워킹 맘들은 영아의 경우 어린이집 이용(47.9%) 조부모 양육도움(35.1%)을 받고 있으며 유아는 어린이집
    (42.3%) 유치원(48.2%)을 주로 이용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맞벌이 부부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을 고려할 때, 출산 후 육아를 부모에게 부탁하는 경향은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요즘 황혼육아는 은퇴를 앞둔 중·장년층이 가장 관심 있어 하고 고민하는 화두 중 하나이다. 찬반양론도 팽팽하다. 먼저 찬성하는 입장을 살펴보면, 손주 양육은 무엇보다 은퇴 후 희미해지던 나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고 한다. 숨겨져 있던 손주의 재능을 발견하고, 키워주는 재미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한다. 물론 손주를 돌보는 노력봉사에 대한 경제적인 보상도 빼놓을 수 없다. 2012년 경기도 가족여성연구원에서 맞벌이 가정 중 손자녀를 양육하는 조부모들을 직접 찾아가 조사한 결과 78.3%의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는 대가로 양육비를 받고 있으며 그 금액은 평균 39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황혼육아는 긍정적인 측면도 많지만 부정적인 측면 또한 적지 않다. 무엇보다 황혼육아는 자칫 노후생활의 방해꾼이 될 수 있다. 손주 양육은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힘든 노동이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손주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건강도 나빠지고 친구나 이웃은 물론 배우자와 함께할 시간까지 줄어들며 새로운 갈등이 생겨나기도 한다. 또 손주를 안전하게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은 큰 심적 스트레스로 작용하기도 한다. “잘 크면 손주 탓 못 크면 할머니 탓”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고가 터지면 모든 수고가 허사로 돌아가는 것이 육아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만성피로감과 수면장애를 겪는가 하면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한다. 실제로 어느 대형병원의 조사에 의하면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의 여성 우울증 환자 4명 중에 1명은 ‘황혼육아’가 원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은퇴설계 입장에서 손주를 맡아서 키우는 황혼양육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가족 전체의 행복한 삶을 위해 자녀들에게 희생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판단하기 어려운 가치관의 문제로 볼 수 있다. 황혼육아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동시에 존재하는 복잡한 문제이다. 육아부담을 안게 되면 가족의 행복감은 증가되는 반면 은퇴한 부부의 삶의 질에는 큰 타격이 오게 된다. 우리사회가 함께 풀어갈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다만 선진국처럼 황혼육아를 조부모가 아닌 국가가 맡도록 노력해야 정답인 것 같다.
    Premium Chosun        송양민 가천대 보건대학원장 ymsong@gach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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