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과학 이야기

14 3대 영양소를 '독소'라고 선전하는 음식전문가들

浮萍草 2014. 6. 11. 10:12
    품격을 갖춘 먹방을 보고 싶다
    젠가부터 텔레비전이 음식에 대한 저질 ‘먹방’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음식을 단골 소재로 다루고 있다. 
    연예인들의 자질구레한 일상을 시끌벅적하게 떠벌리는 연예오락 프로그램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먹방의 내용이 몹시 실망스럽다. 오로지 우리의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고 허술한 상식의 틈새를 파고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의 삶과 문화에서 음식이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도 찾아볼 수 없다. 
    자극적인 저질 먹방이 우리의 소중한 문화를 파괴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 
    귀중한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일간지를 포함한 신문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음식의 사회·문화적 가치를 외면하고 어설픈 과학 상식으로 무장한 식품과학과 의료계 전문가의 인식 부족도 심각한 문제다.
    ▲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훼손하는 저질 먹방

    ㆍ저질 먹방의 안타까운 현실
    먹방의 내용은 크게 세 종류로 구분된다. 첫째는 음식 재료의 우수성을 일방적으로 과장하는 것이다. 어렵게 생산한 지역 특산의 농수축산물을 소개한다는 명분을 앞세우지만 내용은 실망스러울 정도로 천편일률적이고 허술하다. 먹거리 생산의 어려움을 소개하여 시청자의 감성을 자극하겠다는 의도가 너무 쉽게 드러난다. 조리법도 단순하다. 회,무침,찌개,전이 고작이다. 식품영양학자나 한의사의 입을 통해 특정 화학적 성분이 우리 건강에 미치는 장점을 일방적으로 강조한다. 식품의 효능에 대한 과장 광고를 금지하는 식품위생법 제13조의 경계를 위험스럽게 넘나드는 주장이다. 먹방의 두 번째 유형은 특정 식당의 음식에 대한 맛을 강조하는 것이다. 연예인과 순진한 손님들이 동원된다. 시끌벅적한 식당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음식을 게걸스럽게 퍼먹으면서 괴성을 지르는 모습이 전부다. 음식에서 느끼는 맛이 지극히 주관적·개인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애써 무시된다.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주인의 모습도 천편일률적이다. 모두가 자신만이 알고 있다는 ‘비방’(秘方)을 강조한다. 제작자와 식당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비정상적인 방송이라는 지적은 애써 무시한다. 외주 업체의 입장에서는 공정한 방송의 제작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지키는 일보다는 제작비를 줄이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떠도는 황당한 괴담을 증폭시켜주는 먹방도 있다. 어설픈 과학 상식을 앞세운 전문가들이 동원된다. 그런 먹방에서는 3대 영양소에 속하는 탄수화물,지방,단백질이 모두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폭탄’으로 둔갑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절대 외면할 수 없는 가공 식품은 모두 부당한 이익에만 눈이 먼 식품 기업이 쏟아내는 불량식품으로 전락해버린다. 극단적인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강조된다. 세상에는‘좋은 식품’과 ‘나쁜 식품’이 있다고 한다. ‘수입산’은 모두 나쁘고 ‘국산’은 모두 좋다고 한다. 일제가 우리에게 전해준 대만식 염전에서 생산한 천일염은 우리의 전통 소금으로 변해 버리고 국회가 정한 식품위생법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안전성을 인정한 ‘식품첨가물’이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독약으로 전락해 버린다. 이제 시청자들이 나서서 저질 먹방 퇴치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방송과 언론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막중한 사회적 책무를 외면한 저질 먹방으로 우리의 소중한 음식 문화와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일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특히 혈세와도 같은 시청료로 운영하면서 외주 업체에게 값싼 제작비로 저질 먹방을 제작하도록 만드는 공영방송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 가족들의 싸움터로 이용되는 드라마 속의 기형적인 식사 장면

    ㆍ음식은 문화적 정체성을 결정한다
    음식은 단순히 재료의 어설픈 효능이나 말초적인 맛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음식은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핵심 요소다. ‘당신의 음식이 곧 당신의 정체성’(What you eat is what you are)이라는 서양 속담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좋아하는 김치,간장,된장이 우리의 사회적·문화적 정체성을 결정해준다는 뜻이다. 미소 된장과 회가 일본의 상징이고 파스타와 피자가 이탈리아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프랑스 음식이 유네스코의 무형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도 건강에 좋아서가 아니라 ‘일생의 희로애락을 가족이나 친지와 함께 즐기기 위해 꼭 필요한 음식’으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주의 한정식도 조선시대 양반의 음식 문화가 담겨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 행복과 웃음이 피어나는 품격 있는 식탁 문화가 필요하다.

    ㆍ행복과 웃음이 피어나는 품격 있는 식탁 문화가 필요하다.
    이제 음식의 재료와 맛에 한정되어 있는 우리의 관심을 변화시켜야 한다. 가족이나 친지와 함께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나눠 먹는 예절과 품격을 갖춘 고급 음식 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드라마를 통해 가정의 식탁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단순히 제작의 편의를 위해 가족들이 식탁의 한쪽에만 둘러앉은 기형적인 모습은 사라져야 한다. 더욱이 식탁은 가족들이 다툼을 벌이는 곳이 아니라 정성껏 마련한 소중한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기쁨과 행복을 공유하는 곳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음식에 대한 이분법적 인식도 개선해야 한다. 밥 한 톨에도 여름 내내 농부들이 애써 흘린 땀이 담겨 있다는 오랜 가르침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깨끗하고 좋은 먹거리를 선택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그런 여유를 갖지 못한 이웃이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수입산 식품이 모두 나쁘다는 주장도 우리 스스로의 인식을 왜곡시키는 엉터리 궤변일 수밖에 없다. 하루에 1달러어치의 식품도 구하지 못해서 굶주리는 사람이 20억명에 가깝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식품과학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이해도 필요하다. 식품의 생리적 효능과 부작용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특정한 주장이 담긴 논문이 발표되었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모든 음식이 동일한 재료와 조리법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똑같은 효능이나 부작용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땅콩, 복숭아, 새우를 먹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심한 부작용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음식이나 식품에 대한 과학적 결론은 충분히 많은 논문에 대한 메타 분석이 완성되어야만 확인이 되는 것임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단편적인 학술논문의 내용을 소비자들에게 지나치게 과장해서 전달하는 것이 위험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골고루 먹고 지나친 과식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평범한 진리가 품격 있는 음식 문화의 핵심이다. 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우리의 자식들을 위해 우리의 음식 문화를 미래 지향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책임과 의무도 무겁게 느껴야 한다. 음식을 가벼운 오락거리로 여기는 풍토는 철저하게 거부해야 한다.
    Premium Chosun         이덕환 서강대 교수 duckhwan@sogang.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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