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성격채집]

에밀리 브론테 '워더링 하이츠'의 히스클리프

浮萍草 2014. 7. 17. 06:00
    귀신을 사랑한 남자
    에밀리 브론테(1818~1848).격정적인 사랑을 쓴 작가는
    이렇다 할 연애 없이 서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역시 연애를 다루는 데 일가견이 있는 제인 오스틴은
    에밀리 브론테가 태어나기 바로 전 해 죽었다.그녀 또한
    미혼이었다.
    ‘워더링 하이츠’,그러니까‘폭풍의 언덕’이다. 2010년 을유문화사에 낸 이 책을 번역한 유명숙 선생이 몇 십 년만에 바로 잡았다. 원제도 ‘Wuthering Heights’. 영국 북부 요크셔의 시골 마을이 배경이다. 작가는 이곳을 폭풍이 매섭게 치고 천둥이 ‘지랄’같이 이는 곳으로 묘사한다. 이 소설이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유난히 인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뻔한 수준에서 그 이유를 짐작해보자면 폭발하는 격정 – 우리들에게도 있지만 힘겹게 자제해왔던 -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 일본 작가가 이 책에 영감을 받아서 소설을 냈는데 나는 그 책을 먼저 읽었다. 미즈무라 미나에의 ‘본격소설’. 표지가 주는 안정감에 이끌려 그 두 권짜리 책을 읽기 시작한 나는 압도되었다. 우리나라에서 2008년에 출간된 그 책에는 사람들이 말하곤 하는‘고전의 품격’이 있었다. 격정과 애교를 오가는 요코의 성질머리에 그만 반해버렸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아, 대체‘워더링 하이츠’는 얼마나 더 미친 소설이란 말인가. 과연 그랬다. 이 소설에는 제대로 된 사람은 별로 없다. 누가 더 격정적이인지 죽을 만큼 힘겹게 다투는 두 연인인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괴상한 일꾼 조지프, 히스클리프를 학대한 언쇼, 삐뚤어진 데가 있지만 스스로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하녀장 넬리……. 그중에서도 가장 미친 사람은 역시 히스클리프가 아닐까. 그는 사랑이 좌절되자 자신의 모든 것을 복수하는 데 쓴다. 이런 식이다. 캐서린의 남편의 여동생을 홀려서 결혼한다. → 그 여자를 학대한다. → 여자는 도망쳐 허약한 남자아이를 낳는다. → 여자가 죽자 남자아이를 데려온다. → 죽은 캐서린이 낳은 딸과 자신의 아들을 억지로 결혼 시킨다. → 아들이 죽는다. → 며느리(사랑했던 여자의 딸이기도 한)와 같이 살며 괴롭힌다. 히스클리프의 복수의 목적은 돈이었다.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 이들의 땅과 집을 차지하는 것. 거리를 떠돌던 그는 그토록 원하던 것을 가졌지만 쓰지도 누리지도 못한다. 그에게는 죽은 캐서린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녀와 함께 썩어 문드러져 더 큰 행복을 누리는 꿈을 꾸지!”라며 죽기를 소원하다. 불쌍하지만 동정하기는 힘들고, 기괴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남자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며 생각했다.
    사람이 인생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감정의 총량’이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이들은 모조리 태워버렸기 때문에 남은 생을 지탱할 만한 기운이 사라진 게 아닌가라고. 이 연인들은 누가 더 사랑하는지,누가 더 격렬한 말을 할 수 있는지,누가 더 상대를 가슴 아프게 할 수 있는지 경쟁이라도 하듯이 말들을 쏟아낸다. ‘피를 토한다’는 게 어울리는 대목들이 이어진다. 먼저 캐서린. “나는 내 히스클리프를 사랑할 거고 저승까지라도 데리고 갈 거야. 그는 내 영혼 안에 있으니까.” 대단하다. 다음은 히스클리프다. “다시 키스해 줘. 하지만 네 눈을 보지 않게 해 줘. 난 나의 살인자를 사랑하는 거야. 하지만 네 살인자는! 어떻게 그자를 용서할 수 있겠어?” 나를 죽인 것도 너, 너를 죽인 것도 너. 나를 죽인 너를 용서하지만 너를 죽인 너는 용서 못한다는 말이다. 이때의 캐서린은 제 성질을 못 이기고 병이 나서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죽어가고 있다. 자신의 열기로 자신을 죽였고, 그러므로 히스클리프도 ‘죽인다’. 나는 이 연인들의 대화를 읽다가 병이 나는 줄 알았다. 뜨거워도 너무 뜨겁다. 이 천둥벌거숭이들이 제정신인가 싶다가도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참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이였을 때 그랬던 것처럼. 그런 아이 시절을 갖지 못한 히스클리프는 죽을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 아마도 캐서린이 자신에게 돌아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난 캐서린이 죽은 뒤로 미치광이처럼 밤낮으로 그녀가 내게 돌아오길 빌었지. 유령으로라도. 난 귀신이 반드시 있다고 믿거든! 귀신이 우리와 함께할 수 있고, 또 함께한다고.” 이 남자의 비석에는 이름과 죽은 날짜만이 새겨진다. 언제 태어났는지 어디서 태어났는지 부모는 누구인지 성(姓)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게 없으므로 나는 깨닫는다. 캐서린 – 비석에는 새기지 않은 그 이름 – 이 그의 생일과 출생지와 성을 대신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이었음을“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든 걔의 영혼과 내 영혼은 같아.”이라는 캐서린의 말을 히스클리프의 비석 옆에 놓아두고 싶다.
    Premium Chosun ☜       한은형 소설가 Candider8@gmail.com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