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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광덕사

浮萍草 2014. 4. 19. 22:56
    이 계단 끝에 진정 불국토가 있는가 …
    단 끝 누각, 보화루(普化樓) 1층에 통로가 보인다. 대웅전을 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이다. 어둡고 폐쇄된 듯 보이는 공간이지만 계단을 하나씩 오르며 통로에 가까워질 때마다 사각형의 어둠 안에는 밝은 빛이 스며들며 대웅전의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 누하진입(樓下進入). 누각 밑을 통해 대웅전을 만나는 이 방법은 산지가람에 많이 쓰였던 건축기법이다. 보통 종교건축은 높고 큰 건물을 지음으로써 신성함을 추구하게 된다. 위압감은 경외감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이 많은 우리나라 산지가람에서는 풍수사상과 더불어 높은 건축물을 많이 쓰지는 않았다. 결국 건축물의 크기나 높이에 의한 경외감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누각 밑으로 진입하게 만든 것이라고 한다. 어둠속을 지나며 만나는 빛은 대웅전과 더불어 그 내부의 불상에서 구원과도 같은 광명의 빛을 내 비추는 것이다. 또한 누각 아래 통로를 지나며 바라보는 액자 안에 놓인 대웅전이 다가오는 느낌도 경쾌하다. 이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경내에 올라서며 절정을 이룬다. 탁 트인 마당을 보면 모든 것들이 해소되는 듯 감미롭다. 이 즐거움은 광덕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광덕사에서는 누각을 오르는 계단에서부터 여느 절과 다른 풍경이 더해진다. 오래된 호두나무 노거수 때문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나무는 다름 아닌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 많은 호두나무로 약 400살이 넘는 걸로 추측하고 있다. 천안의 명물인 호두과자를 만든 장본인인 셈이다. 보화루 누각 아래 어두운 통로에 서서 나무를 바라본다. 세월의 풍파를 안고 오래된 풍경을 이루며 수백 년 동안 견고한 호두열매를 맺어왔을 나무의 노고가 경이롭다. 다시 뒤를 돌아 대웅전을 향한다. 광덕사는 법당 앞마당에 잔디가 깔려 있는 드문 절집이다. 아직 파릇함은 없지만 곧 봄이 오고 녹음이 우거지는 계절에는 짙푸른 잔디와 주변의 꽃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된다. 그야말로 계단의 끝에 도달한 이곳이 바로 불국의 천상은 아닐까 싶어진다.
    ■ 천안 광덕사는…
    신라 진덕여왕6년(652년) 자장(慈藏)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지만 명확하지는 않고 여러 이견이 있다. 1457년(세조3년)에 세조가 온양온천에 요양 왔다가 이 절에서 부처님 치아 사리를 친견한 뒤 광덕사의 부역을 면제시켜주고 토지를 내린다는 내용의 교지를 내렸는데, 이는 지금까지 남아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 후 광덕사는 번성을 누리며 임진왜란 전까지만 해도 충청도와 경기도는 물론 전국에서 손꼽을만한 큰 절 중 하나가 되었다. 사찰소유의 토지만도 광덕면 전체에 이르렀고 부속암자만 89개에 달해 골짜기 마다 독경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고 하니 그 규모가 짐작조차 가질 않는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과거의 영화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모두 파괴되었고 400살 호두나무만 우직하게 자라 절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호두나무(아래 그림, 천연기념물 제398호)는 고려 말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화루로 향하는 계단 옆 호두나무는 고려후기 문신 유청신(柳淸臣)이 중국에서 처음 들여와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 호두의 기원이 되는 이 나무는 전설대로라면 700살이 넘어야 하지만 약400살로 추측되고 있으니 아마도 임진왜란 당시 절이 피해를 입었을 때 호두나무도 같이 사라진 걸 후에 다시 심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 불교신문 Vol 3001 ☜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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