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스케치여행

공주 갑사

浮萍草 2014. 3. 9. 12:47
    그곳에서 걸음 멈추고 길을 잃고 싶네…
    상을 살다보면 우리는 누군가와 갑과 을의 관계로 만나 어렵게 인연을 이어 나가는 일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흔히 계약관계에서 우위에 서는 ‘갑(甲)’과 그 반대편의 ‘을(乙)’은 어느덧 지위의 높낮음까지 의미하게 되었다. 근래에는 한술 더 떠 ‘슈퍼갑’이라는 계약자의 횡포까지 횡행하니 참으로 을에게는 서러운 세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갑’이란 글자를 사찰의 이름에 사용하고 있는 절집이 있으니 다름 아닌 갑사(甲寺)다. 절집 중에 절집이라는 의미일까. 과연 갑사는 어떤 곳일까. 갑사를 품은 산은 계룡산이다. 전체 능선의 모양이 마치 닭의 벼슬을 쓴 용의 형상 같다 하여 이름 붙은 계룡산은 이를 주산으로 조선의 새로운 도읍지를 건설하려 했을 정도로 풍수지리에서도 손꼽히는 명산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이곳에 들러 밤을 묵다가 꿈에 노파가 나타나 계룡산의 흙 한 줌 돌 하나 건드리지 말라고 호통을 치는 바람에 신발에 묻은 흙까지 털고 떠났다는 전설까지 전해 온다. 그 산에 천년을 넘게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는 갑사는 진정 ‘갑’ 중에 갑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갑사는 고구려의 승려 아도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통일신라 때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로 위세를 떨칠 정도로 번창했지만 아쉽게도 정유재란 때 모두 소실된 후 부분 중창되어 오늘날의 아담한 절집에 이르고 있다. 갑사는 특히 진입로의 아름다움이 시와 수필 등에 등장하며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일주문 옆 작은 연못에는 떠나갈 듯한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경칩이 지나가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그 곳을 지나 갑사로 향하는 잘 뚫린 2km 블럭길을 오리(5리)숲길이라 하는데 길가에는 느티나무, 갈참나무, 팽나무 등이 가득한 아름다운 숲길로 갑사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갑사로 가는 참맛은 철당간과 대적전을 만날 수 있는 산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 갑사로 가는 옛길이었다는 이 오솔길을 따라 얼마를 거닐면 숲 한가운데 높은 철당간이 우뚝 솟은 너른 공터가 나온다. 그 곳에서 대적전으로 이어지는 대나무숲 사이의 투박스런 돌계단은 갑사로 가는 길의 마지막을 알리는 풍경이다. 공터 구석의 의자에 앉아 쉰다. 갑사가 좀 더 멀리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부터 떠오른다. 그래서 길도 잃어 보고, 오랫동안 즐거이 숲을 헤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개울 소리가 들리는 숲의 샛길에는 짝짓기에 열중인 개구리도 사람이 지나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얼굴 매무새를 다듬는 다람쥐도 겨울눈을 털고 새 봄을 준비하는 사람주나무도 모두 갑이 된다. 문득 갑사가 왜 갑인지 알 것도 같다. 어쩌면 을이라는 것은 인간이 만든 족쇄일 뿐,애초부터 이 세상에 없던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내가 있음으로 세상은 의미가 시작되는 것일 테니까. 나는 갑사로 가는 길 한켠에 앉아 현실의 길을 잃어버린 듯 세상 속에 갑이 되어 맘껏 봄 햇살을 즐겼다.

    ㆍ철당간(보물 제256호) 우리나라에 당간지주에 철당간까지 함께 남아 있는 것은 오직 3곳뿐이다. 다른 2곳은 청주 용두사지와 안성 칠장사인데 아직 가보지 못해서인지 갑사의 철당간은 늘 깊은 인상으로 내게 남아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원래는 원통모양의 철통이 28마디를 이루었다고 하는데 고종30년(1893)에 벼락을 맞아 4개가 부러져 지금은 24개만 남아 있다. 그림에서는 28개를 마저 그려 넣었는데 주위에 피뢰침이 보이지 않아 여전히 벼락에 노출되어 있는 건 아닐까도 싶지만 천 년도 넘게 잘 버텨 온 것을 보면 큰 걱정은 안해도 될까보다.

    ㆍ승탑 (보물 제257호) 개인적으로 손에 꼽을 만큼 아름다운 조각의 승탑이다. 기단부에는 뭉게구름이 몽실몽실 꿈틀거리며 피어오르고 있고 그 위로는 천인(天人)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으며 아래로는 입체감 뚜렷하게 새겨놓은 사자가 매우 역동적으로 하부 기단을 형성하고 있다.
    ☞ 불교신문 Vol 2991 ☜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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