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浮萍草音樂/아시아 불교민속

<22〉 일본 ⑥

浮萍草 2014. 6. 23. 09:04
    백중과 초파일
    
    "날이 어두워지자 1천 집 1천 나무에 일시에 등이 달려 은은한 화성(火城)과 같다.” 
    조선시대에 일본을 다녀온 이들의 기록인 <해행총재(海行總載)>에 실린 대마도의 어느 날 풍경이다.
    석가탄신일의 연등을 연상케 하지만 음력 7월 15일 오봉(お盆)을 묘사한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오봉이 가까워지자 집집마다 조상무덤에 가서 한 사람이 등을 하나씩 달아 자손이 많은 묘에는 수십 개 등이 달렸다고 한다.
    백중 또는 우란분절을 일본에서는 오봉이라 부른다.
     메이지유신 이래 양력 7월 보름으로 바뀌었지만 이날 조상신을 맞아 등을 다는 풍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백중날 선망조상의 천도재를 지내려고 일제히 절을 찾는 우리와 달리, 집집마다 불단과 신단이 있는 일본에서는 가정에서도 스스로 조상신을 모시는 것이다. 
    따라서 13일 저녁 무렵 문 앞에 불을 밝히고 위패를 모신 다음 하루 세 번씩 공양을 올린다.
    15일이 되면 절을 찾아 불공을 올리거나 스님을 모시고 독경하며 염불춤ㆍ윤무춤을 추는 가운데 조상신의 내방을 맞는 축제행렬을 벌인다. 
    16일에는 다시 불을 피워 조상신이 돌아가는 길을 밝히고 등이나 공양물을 강과 바다에 띄우게 된다.
    그들의 오봉에 불교 우란분절 의미가 깊이 개입되어 있으나 조상신을 섬기는 민간축제 속에 녹아들어있고 또 한편으로는 마치 초파일에 등을 밝히는 우리의 연등과 
    연등행렬을 보는 듯하다.
    그렇다면 그들의 초파일은 어떤 모습일까. 
    우선 일본에서는‘하나마츠리(花祭り)’가 석가탄신일을 뜻하는 말로 정착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연등회(燃燈會)’가 석가탄신일을 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연등축제라 부르는 우리에겐 등(燈)이, 꽃축제라 부르는 그들에겐 꽃(花)이 부처님을 맞는 상징인 셈이다.
    일본의 초파일문화는 단출하다. 
    꽃과 상록수로 화어당(花御堂)을 꾸미고 탄생불을 모셔놓아 아기부처님께 물을 끼얹어 관욕에 참여할 뿐 사찰 내에서도 밖에서도 부처님 탄신을 기리는 특별한 
    행사를 찾기 힘들다.
    다만 그들은 물 대신 단맛이 나는 갈색의 감다(甘茶)를 쓰는데 이는 석가모니가 태어났을 때 하늘에서 감로(甘露)의 비가 내렸다는 탄생설화를 담은 것이다. 
    참고로 일본불교의 중요한 행사는 자파의 개산조(開山祖)와 관련되어 있어 조사당이 불당보다 크거나 불상과 조사상을 나란히 모신 곳도 있다.
    대표적 불교명절인 석가탄신일과 우란분절의 일본풍습을 보면 비교민속의 관점에서 흥미로운 과제들이 산적하다. 
    조선시대 일본을 다녀온 이들 또한 오봉의 연등에 대해“중국의 상원(上元) 우리나라의 초파일과 같았다”고 적지 않았던가. 
    뿐만 아니라 오봉 날 이른 아침에 아이들이 야외에 솥을 걸고 밥을 해먹는 봉가마(盆竈)의 풍습은, 아이들이 호기(呼旗) 놀이로써 제장(祭場)을 정화했던 우리의 
    초파일풍습을 연상케 한다.
    무엇보다 불교의 핵심공양물로 등장하는 한국의 ‘등’과 일본의 ‘꽃’은 두 나라 고유민속의 중요한 상징물이기도 하다. 
    우리의 보름민속에서 불과 등을 밝히는 풍습 일본에서 산신ㆍ조상신 등을 모실 때 장대에 꽃을 다는 풍습은 모두 고래민속의 기반을 이루는 요소들이다.
    두 나라 간에, 그리고 불교와 민속 간에 상호 교섭하는 역동성과 다면성을 제쳐두고 어찌 일방적 ‘고유’와 ‘전파’만 외칠 수 있겠는가.
    
    ☞ 불교신문 Vol 3019 ☜       구미래 건국대학교 외래교수,불교민속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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