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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와인 소믈리에 엄경자씨

浮萍草 2014. 6. 17. 09:33
    매운맛 끊었죠, 혀끝의 떫은맛 지켜내기 위해
    ▲ 김성윤 기자
    난달 29일 서울 삼성동에 있는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직원 식당 저녁 메뉴는 매콤한 닭갈비와 잡곡밥·사골우거짓국·무채·시금치나물· 봄나물전·냉유자차였다. 그런데 이 호텔 소믈리에(sommelier)인 엄경자(38)씨가 받아 들고 오는 음식은 다른 직원들과 달랐다. 그의 식판에는 햄치즈 샌드위치와 유부초밥·샐러드·브로콜리·당근·오이·수박·바나나·딸기·아몬드·건포도·삶은 달걀 하나가 담겨 있었다. 엄씨는"별도 식사를 주문했다"고 말했다. "일주일 전에 식단이 미리 나오는데,오늘 저녁 반찬이 닭갈비더라고요. 구내식당 운영 업체에'담백하게 먹을 수 있는 걸 만들어 달라'고 요청을 드렸죠. 우리 호텔에는 외국인 셰프도 있고 해서 미리 주문하면 맞춰서 도시락을 만들어 주세요." 엄씨가 닭갈비를 피하는 이유는"와인 테이스팅(시음)을 방해하는 가장 나쁜 맛이 매운맛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믈리에는 와인을 맛보고 평가해 이를 바탕으로 호텔·레스토랑에서 어떤 와인을 구매할지 결정하고 손님에게 추천하는 직업.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은 가능한 한 피하는 편이죠. 젓갈,장아찌처럼 짠 건 나아요.
    하지만 매운맛은 통증이잖아요. 혀를 얼얼하게 마비시키죠. 와인을 제대로 맛보지 못해요. 특히 타닌(와인의 떫은맛을 내는 성분)을 예민하게 느끼지 못해요." 매운 음식을 먹고 난 뒤 양치질을 하면 되지 않을까? 엄씨는 고개를 저었다. "양치질을 해도 잘 사라지지 않는 데다가 치약 냄새가 입안에 남는데 이 역시 와인 시음에 영향을 미쳐요." 강원도 영월이 고향인 그가 원래 매운맛을 꺼린 건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많이 먹었어요. 유학을 가면서 식성이 100% 바뀌었어요." 그는 프랑스에서 와인을 4년 동안 공부했다. "유학 시절 김치도 거의 먹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버릇이 됐나 봐요." 엄씨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매운 게 당길 때가 있다"고 했다. "떡볶이처럼 어렸을 때 먹었던 추억이 있는 음식요. 그렇지만 이제는 매운 걸 먹으면 속이 불편하기 때문에 찾아 먹지는 않아요." 엄경자씨는 오전 10시 30분 출근한다. 호텔 외식업장에서 근무하는 소믈리에 직업 특성상 퇴근이 밤 9시~9시 30분으로 늦기 때문이다. 이메일 답신 등 잡무를 처리한 뒤 점심 영업 시작 전인 오전 11시쯤 점심을 먹는다 과일과 채소 위주로 도시락을 싸 오거나 구내식당에서 먹는다. 반찬이 특별히 자극적이지 않으면 다른 직원들과 같은 음식을 먹는다. 그는"도시락을 미리 예약하지 못한 날은 일반 직원 식사에서 김치 등 맵고 짠 반찬은 빼고 먹는다"고 말했다. 저녁식사는 저녁 영업 전인 오후 4시 30분~5시 30분 사이 한다.
    지난달 29일 오후 4시 30분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지하 직원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려는 엄경자 소믈리에.그는 매운 닭갈비가 반찬으로 나온 일반
    직원 식사 대신 담백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구성한 도시락을 미리 주문해 먹었다.아래 엄경자 소믈리에가 먹은 도시락.햄치즈 샌드위치와 유부초밥,샐러드,
    생야채,과일,아몬드,건포도,삶은 달걀로 구성됐다. /이덕훈 기자

    와인을 시음하는 날은 대개 점심을 거른다. "와인 테이스팅을 오전 11시쯤 많이 하는데 가벼운 공복일 때가 가장 좋아요. 물 한 잔 정도 마신 상태? 공복이라야 침샘 활동이 왕성해서 똑같은 와인을 마시더라도 더 많은 풍미를 감지할 수 있어요." 담배는 와인을 공부하기 전부터 피우지 않았다. 커피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피워보진 않았지만 담배는 냄새가 강하니까 와인의 과일향이 가려지지 않을까요. 와인학교에서는 담배는 물론 커피도 마시지 말라고 하죠. 하지만 유럽의 경력 오래된 소믈리에들도 많이들 담배 피우고 커피도 마셔요." 소믈리에라는 직업에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하는 것 말고 다른 힘든 점은 없는지 물었다. 엄씨는 "소믈리에들이 대개 이가 안 좋다"고 말했다. "와인이 산성(약 pH3) 식품이라 치아를 부식시켜요. 치아 조직이 손상돼 금이 가거나 검붉게 변색되기도 하죠. 외국에선 와인 시음을 하고 난 뒤 맥주를 한 잔씩 마시며 끝내요. 맥주가 알칼리성이라 와인의 산성을 중성화시켜 준대요. 하지만 이건 와인을 마시지 않고 시음만 했을 때이고, 와인을 1차로 마신 다음에 2차로 맥주를 마시면 섞어 마시게 되니까 머리가 아프겠죠." 맥주도 술인데 알칼리성이라니, 주류전문가 소믈리에가 한 말이지만 의심스러웠다. 확인해 보니 역시 맥주도 산성 식품이다. 단 산도가 대략 pH4로 와인보다는 약하다. 맥주가 와인보다 치아 건강에 조금 덜 나쁘지만 이롭지는 않을 듯하다. 다음에 만나면 "와인 시음한 뒤에는 맹물로 입가심하라"고 알려줘야겠다.
    Premium Chosun ☜       김성윤 조선일보 문화무 기자 gourme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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