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별별 직업·별난 밥상

3 운전기사로 39년 김용진씨

浮萍草 2014. 6. 3. 09:41
    회장님 모시는 내겐… 가까운 곳이 곧 맛집
    '뒤에 앉는 분'을 모셔야 하다보니 멀리 갈 수 없고 항상 빨리 먹어 배탈날 일 없는 설렁탕 좋아하죠 운전기사 김용진(64)씨와 지난달 29일 오후 7시 서울 청담동 안세병원 앞에서 만났다. 지난 25년 동안 모셔온 모 기업 회장님을 한 레스토랑에 내려 드리고 저녁식사를 하려는 참이었다. 김씨는"이 근방엔 먹을 만한 식당이 없다"며 고민했다. 청담동은 프랑스,이탈리아,일본 등 고급 음식점이 즐비한 동네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먹을 만한 식당"이란"회장님이 식사하는 곳에서 멀지 않으면서 비싸지 않은" 백반집이나 설렁탕집이다. 그는 횡단보도를 건너 수입차 크라이슬러 매장 뒤에 있는 가정식 백반집에 가자고 했다. '청담골'이라 쓴 간판이 소박해보였다. '가정식 백반'은 7000원,'제육볶음' '갈치구이'는 1만원이다. 서울의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비싼 편이나, 이 근처에서는 드물게 그가 "먹을 만하다"고 여기는 가격대다. 그는"한 일 년 만에 왔는데 그새 음식값이 많이 올랐네"라며 놀라는 표정이었다. 제육볶음을 주문한 그가 내게는"제육 말고 다른 걸 시키라"고 해서 갈치구이를 골랐다. 금방 커다란 상에 제육볶음과 갈치구이가 콩나물무침,김치찌개,애호박나물,건새우 마늘종 볶음,배추김치 등 12가지 반찬과 함께 나왔다. 그는 음식 먹는 속도가 빨랐다. 김용진씨는"회장님과 1989년 말부터 일했다"고 했다.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그는 군대에서 운전병으로 근무했다. 제대 이듬해인 1975년 한 기업에 운전기사로 취직하며 사회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세 명의 임원 승용차를 운전하다가 1989년 당시 그 회사 전문경영인이었던 지금의 '회장님'을 만났다. 회장님이 독립한 뒤에도 인연이 여태 이어지고 있다.
    ▲ 김용진씨와 마주앉은 식당 유리창 밖으로 고급 승용차가 서 있었다.김씨는“강남 이면도로
    (큰 길과 연결된 좁은 길)에 주차된 대형차는 100% 대기차량”이라고 말했다. /이덕훈 기자

    그는 밥 먹을 식당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가장 중요한 건 가깝고 싸게 빠르게"라고 말했다. "메뉴는 중요하지 않아요. 대기 상태니까 멀리 갈 수는 없잖아요." 그는 남산 중턱에 있는 그랜드 하얏트처럼 호젓하게 동떨어진 호텔에서 회장님의 저녁 약속이 잡혔을 때가 난감하다고 했다. "근방에 식사할 만한 데가 없잖아요. 저렴한 김치찌개집이나 중국집이 있는 이태원이나 경리단길까지 꽤 걸어가야 하거든요. 옛날에는 호텔마다 기사대기실에 식당이 있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어요. 요즘은 골프장 정도가 직원 구내식당을 운전기사들에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줘요." 김씨는"예전엔 요정에도 (운전기사가) 식사하는 곳이 따로 있었다"고 말했다. "낙원동에 있던'오진암'에서는 지배인이 기사한테 밥값을 줬어요. 그게 얼마 있다가 변해가지고, 식당을 지정해줬어요. '우리 집에서 보냈다고 말씀하고 식사하세요'라고 했죠. 주로 옆에 있는 백반집이나 찌개집을 정해줬죠." 비록 스스로 선택은 할 수 없지만 그가 선호하는 식사 장소는 강남이나 강북의 사무실 밀집 지역이다. "주위에 맨 음식점이니까 강북에선 (소공동에 있는) 웨스틴조선호텔이나 롯데호텔 근처에는 북창동도 있고 명동으로 넘어갈 수도 있잖아요. 시간이 충분하다 그러면 남대문에 가죠. 냉면집도 있고 갈치조림 등등 많잖아요. 강남에선 선릉역 뒤쪽이 좋아요. 칼국수부터 백반까지 별의별 게 다 있고요." 가장 좋아하는 식사 메뉴는 설렁탕이나 갈비탕 같은 탕국이다. "끓여 나오니까 배탈 날 일 없잖아요. 콩국수 이런 거는 여름에 잘못 먹었다가 설사하죠. 짜고 매운 음식도 꺼리는 편이에요. 물을 많이 먹게 돼 소변이 마려워요. 장거리를 뛰려면 이동시간 줄이려고 휴게소 들르지도 않고 갈 때도 있거든요."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점심은 폭식하게 될 때가 많다. "CEO의 출근 시각에 맞추려면 저는 더 일찍 하루를 시작해야 합니다. 집에서 6시에 밥 먹고 준비하고 나오죠. 그런데 회사 CEO 분들은 점심 식사를 12시 반 이렇게 좀 늦게 시작해요. 운전기사는 일찍 아침을 먹었으니까 배가 고프죠. 그러니까 폭식을 하게 되고 속이 늘 안 좋죠." 그는 "운전기사들 중에서 위궤양을 앓는 사람이 꽤 있다"고 했다. "항상 뒤에 앉아 계신 분을 모셔야 하잖아요. 뒤에서 잔소리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계시는 분도 있어요. 조용히 계신 분이 더 신경 쓰여요. 브레이크를 밟아도, 왼쪽 차선으로 끼어들어 갈 때도 항상 오만 신경을 다 쓰는 거죠. 그러니까 소화도 잘 안 되고." 10분 만에 식사를 마쳤다. 시계를 보니 7시 20분. 그는"오늘 저녁은 시간 여유가 있다"며"운동 삼아 일대를 한 바퀴 걸으려고 한다"고 했다. " 전에는 기다리는 시간에 고스톱 많이 쳤어요. 요즘엔 안 해요. 회사들이 금지했고 호텔이나 골프장에서도 못하게 해요." 그는 안세병원 쪽으로 횡단보도를 다시 건넜다. 여유가 있다면서도 회장님 주변에서 멀리 벗어나지는 않았다.
    Premium Chosun ☜       김성윤 조선일보 문화무 기자 gourme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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