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쥑'이는 여의사의 행복처방

8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만남

浮萍草 2014. 6. 4. 06:00
    
    말끔한 표정의 신복연 할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았다. 
    나는 점심식사를 뒤로 미룬 채 진료실에서 미적거렸다. 
    거칠고 빠른 호흡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이다. 
    신복연 할머니는 86세 말기 위암 환자다. 
    305호에 입원한 11살짜리 여자애와 비교한다면 죽음이 뭐 그리 아쉬울 것도 없는 꽉 찬 나이다. 
    그래도 호상(好喪)이란 없는 것이다.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나 버리는 죽음이라는 것은 어떤 나이에도 아쉬운 순간일 뿐이다. 
    나도 반찬냄새 풀풀 풍기면서 사망 선언하는 것이 찜찜해서 그저 기다렸다. 
    김간호사가 진료실 문을 빼꼼히 열고“과장님,사망 선언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했다. 
    이제 호흡이 영원히 멈춘 모양이다.

    사람의 심장은 마지막 숨을 몰아 쉰 뒤 조금 있다가 정지된다. 이렇게 심장이 완전히 멈춘 상태를 현대의학에서는‘죽음’이라고 한다. 신복연 할머니의 심전도도 자로 죽 그은 듯이 일직선이 되었다. “2012년 8월 21일 12시 42분, 신복연 할머니는 사망하셨습니다.” 나는 할머니가 더 이상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것을 말했다. 그리고 통증 없이 편안히 좋은 곳으로 떠났다는 따뜻한 위로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짤막한 사망선언 뒤에는 언제나 남아 있던 가족의 대성통곡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오늘은 조용했다. 할머니의 둘째딸이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했다. “우리 엄마가 평소에 유언을 했어요. 내가 떠나면, 우지마라고. 자식들이 우는 소리가 들리면 뒤 돌아 보느라 떠나는 것이 힘드니 우지마라고 신신 당부를 했어요.” “아…. 하여간 대단하세요. 입원 내내 웃지 않으신 날이 없었는데 그런 멋진 유언까지 하실 줄은 몰랐어요. 제가 들어본 유언 중에 가장 훌륭한 유언인 것 같아요.” “과장님, 그렇죠! 우리 엄마가 암에 걸렸다고 하니까 동네사람들이 이제 꽃 한 송이가 지는구나 했다니까요.” 곱게 아껴 두었던 꽃 분홍 한복으로 갈아입고 흰 양말까지 정갈하게 신은 신복연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살아 있는 그 누구보다도 따뜻해 보였다.

    호스피스의사 생활 6년째다. 그동안 수백명 환자의 ‘죽음과 죽어감’을 함께 했다. 살아가는 모습 이상으로 죽어가는 모습은 천차만별이었다. 죽음이라는 그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한계상황이 밀어 닥치면 살아갈 때 보다 더 부끄러움 없이 인생의 속살을 훤히 드러냈다. 신복연 할머니처럼 부드러운 마지막도 있었고 다시 볼까 두려운 오싹한 마지막도 있었다. 드라마나 소설책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생생하고 낯선 경험이었다. 대학생이 된 딸아이의 손을 부여잡고 부인 옆을 지키는 중년남자의 선한 모습도 있었고 종교가 다른 두 딸이 죽어가고 있는 어머니 앞에서 장례절차를 이야기하다가 티격태격 싸우기도 했다.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금고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할아버지가 괘씸해서 임종실을 박차고 나온 할머니도 있었다. 생전(生前)에 연락해도 오지 않던 전처와 아들이 환자가 떠난 6개월 뒤에 경찰을 대동해 떡하니 나타났다. 노인의 이종 사촌동생이 꿀꺽한 500만원을 되찾기 위해서다. 나는 마지막 주치의였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희한한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런 특별한 경험을 하면서 나는 아직 찾아오지도 않은 ‘나의 마지막’과 자연스럽게 만나기 시작했다. 떠나가는 환자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내가 임종실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 나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면서 떠나야 할까?’라는 상상을 했다. 짧은 글 한 장을 쓸 때도 마지막에 무슨 말을 쓸까 부터 생각하면서 쓰면 글의 흐름이 매끈해지듯이 인생도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고 살면 보다 일관성 있는 삶이 될 것 같았다. 이기적이고 좌충우돌했던 내 삶들은 이렇게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내가 세상에서 만난 가장 소중한 만남은 바로 ‘나의 마지막’이었다고.
    Premium Chosun ☜       김여환 대구의료원 완화의료 센터장 dodo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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