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쥑'이는 여의사의 행복처방

7 '오늘은 나, 내일은 너'

浮萍草 2014. 6. 3. 06:00
    ▲ 죽음의 타로 카드
    주교 대구대교구청의 묘지 양쪽 입구에는‘오늘은 나, 내일은 너(Hodie mihi Cras tibi)’라고 새겨져 있다. ‘오늘은 내가 죽지만 내일은 네가 죽는다’라는 뜻으로 메멘토 모리(Men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와 비슷한 말 이다. 오늘 이 자리에 누워있는 나 뿐아니라 내 묘지 앞에서 멀쩡하게 살아 있는 당신도 머지않아 곧 죽는다는 식의 해석은 얄밉게 들릴 수 있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니까 아등바등 애타게 살지 마라는 식은 허무하기 조차하다. 해석이야 각자의 마음에 달려 있지만, 묘지 앞의 그 글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엄마, 내일 내가 살 확률이 더 높은 것 같아 아니면 내일 죽을 확률이 더 높은 것 같아?” 아들에게 호스피스 이야기 하려고 하다가 괜한 핀잔만 들었다. 하긴 틀린 말도 아니다. 내일 당장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맞는 말이고 확률까지 들이밀면 이길 재간이 없다. 그렇지만 간절히 피하려고 애써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마는 것이 바로 ‘죽음’이었다. 나는 천덕꾸러기와 같은 ‘죽음’을 타로 카드로 해석한다. 타로 점에는 특이하게 죽음의 카드가 있다. 해골 그림과 함께 영어로 DEATH라고 검정색으로 쓰여 있는 죽음의 카드를 뽑으면 누구나 섬뜩하다. 그렇지만 우리의 죽음도 이렇게 카드를 뽑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인생을 카드놀이라고 해보자. 사람의 하루를 카드 한 장이라고 하고 80살까지 산다고 가정한다면 계산상으로는 태어 날 때 우리는 삼만 장의 카드를 가진다. 그 속에는 죽음의 카드가 반드시 한 장 섞여져 있다. 확률적으로 평균수명인 80살 까지는 살 것이므로 삼만 번째에 죽음의 카드가 떡하니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언제 불쑥 나올 줄 모른다. 마치 타로 점 볼 때 해골 그려져 있는 죽음의 타로카드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슬쩍 뽑히는 것처럼. 나는 11세부터 99세까지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호스피스 의사로서 죽음은 확률이라는 말 보다는 카드 이야기가 피부에 와 닿는다. 죽음의 카드는 독특하다.
    언제 내 던져질 줄 모르는 마지막 패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일단 나와 버리면 아무리 좋은 수천 장의 카드가 남아 있어도 그 뒤부터는 단 한 장도 쓸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죽음의 카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인생카드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어떤 카드도 이겨내는 궁극의 패다. 더군다나 내 아이가 나보다 일찍 그 카드를 뽑는 날에는……. 55세 된 말기 폐암환자 혜자 아주머니는 작년에 26살 되는 딸아이를 잃었다. 차 사고였다. 3년 투병하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같이 다녔던 그 딸아이가 폐암을 앓고 있던 혜자 아주머니보다 먼저 떠났다. 이렇게 불편한 운명의 순간들은 가끔씩 우리가 세운 인생계획과는 무관하게 펼쳐진다. 나는 언제고 일관성 없이 던져져버리고 마는 것이 죽음의 법칙이라는 사실을 호스피스의사가 되어서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젊고 야심 찬 내 아들에게 눈치 없이 죽음이야기를 꺼낸다. 우리는 살면서 죽음에 관해서는 대부분 두 눈에 붕대를 감고 살아간다.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고 또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도 죽음은 밀쳐낸다. 시간이 흘러 인생의 마지막 카드가 던져질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붕대를 벗겨내고 찬찬히 과거와 현재를 자세히 들여다보지만 때는 늦다. 시인은 천년을 함께 살아도 한번은 이별을 한다고 했다. 우리는 한번 하는 영원한 이별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 한다. 죽음을 생각하라는 것은 이별을 각오하면서 이 순간을 뜨겁게 살아 내라는 것이고,후회 없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진정으로 삶이 뜨거워지려면 내 인생의 마지막카드가 바로 내일 뽑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것이 ‘오늘은 나, 내일은 너’의 진정한 의미이다.
    Premium Chosun ☜       김여환 대구의료원 완화의료 센터장 dodo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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