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쥑'이는 여의사의 행복처방

6 기적은 항상 당신 옆에 있어요

浮萍草 2014. 6. 2. 06:00
    도 한번쯤은 환자를 살려내고 싶다. 
    암이 싹 다 없어진 말기 암환자가 방송에 한 번씩 나오기도 하니까 제발 우리병동에서도 그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말기 암 환자를 돌보는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이 비현실적인 바람은 역시 부질없었다. 
    최고로 오래 산 사람이 9개월이니 말이다. 
    그것도 마지막 서너 달은 침대에서만 보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가슴 저리게 갈구하기도 하고 신(神)에게 떼를 쓰며 의지 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적이겠지만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 훤히 
    보이는 나로서는 시간 낭비인 것 같다. 
    그런 애절한 생각을 할 시간이 있으면 조금밖에 남지 않은 삶에 집중해야한다는 것이 그동안 내린 슬픈 결론이었다. 
    사람이 좀 민민하고도 삭막하게는 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것이 옳았다.
    “호호, 난 아직 여기 입원 할 단계는 아닌걸요.”
    “아직 마약성 진통제를 쓸 만큼 아프지는 않은 걸요.”
    “어제도 산에 다녀올 만큼 멀쩡한 걸요.”
    이렇게 말하면서 외래로 멀쩡하게 걸어 들어서 오는 말기 암 환자가 얼마를 버틸까? 
    겉으로는 건강해 보이는 환자가 한두 달 뒤에는 간성혼수나 온몸이 누렇게 변하는 황달이 와서 급하게 떠나 버리곤 했다. 
    그래서 나는 남겨진 시간에 대해 불안 초조하기 보다는 그 짧은 시간에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칠순잔치를 하든지 마지막 콘서트를 하든지, 이혼 한 후 한번도 보지 못했던 아들을 찾아주는 일을 했다.
    그러나 지난 여름 12살짜리 뇌종양환자 빈이가 입원하고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꽤나 이성적이었던 나도 말기 암이 완치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학수고대했다. 
    가을이 예쁘게 다가 왔을 때 호스피스팀은 빈이와 달성공원으로 소풍을 갔다. 
    의사 간호사 7명의 자원봉사자 60대 췌장암 환자 둘과 빈이 그리고 빈이 엄마까지 총출동했으니 그야말로 대 이동이었다. 
    오죽했으면 소풍 온 유치원생들이 동물을 구경하지 않고 우리만 뚫어지게 봤을까. 
    걷지도 앉지도 못하는 빈이 때문에 응급차를 한 대 빌리고 다른 사람들은 택시 3대에 나누어 탔다. 
    3대의 휠체어를 밀고 당기면서 우리는 호랑이도 보고 코끼리도 봤다. 
    과자만 던져주면 짝짝짝 박수쳐주는 엉덩이 빨간 원숭이한테 관리인 몰래 오징어 땅콩과자를 던졌다. 
    305호 병실을 장식할 분홍색 돌고래 풍선도 샀다. 
    빈이는 6개월 만에 병실 밖으로 처음 나와서인지 살짝 흥분했다.
    하루 종일 재미있게 놀고 퇴근하면서 눈물이 찔끔 났다. 
    빈이가 아픈 것이 내 책임인 것 같아서 가슴도 저려 왔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크리스마스까지는 살까? 싶었다. 
    처음으로 호스피스의사가 된 것을 후회 했다. 
    나는 빈이 엄마가 행여 눈치 챌까봐 꾹꾹 눌렀다. 
    일부러 더 밝은 척도 했다. 
    안 그럼 우리가 하루 종일 울기 밖에 더하겠느냐 싶었다. 
    짧게 남겨진 시간 동안 이 세상에서 사랑받았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토끼,사막여우,사자인형도 사주고,아이스크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빈이를 위해 아이스크림 케잌 파티도 했다. 
    머리로는 이별을 착착 준비하면서 가슴은 늘 먹먹했다. 
    살릴 수 없음에 미치도록 미안했다. 
    왜냐면 나도 딸이 있는 엄마이니까.

    밥도 잘 먹고 깔깔거리면서 놀고 있는 모습이 하도 좋아 보여서 머리 CT사진을 찍었다. 역시 암은 그대로였다. 그래도 올 때보다 체력이 부쩍 나아진 것 같아 혹시나 항암치료를 더 할 수 있을까 하고 의사소견서를 썼다. 대학병원으로 상담을 하러 갔던 빈이 엄마가 돌아 왔다. 눈가가 촉촉한 걸보니 안 들어도 뻔했다. ‘그래. 몇 개월 사이에 새로운 항암치료가 개발 되었을 리는 만무하지.’ 빈이 엄마가 불편한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먼저 말을 건네 왔다. “선생님, 저는 만족해요. 그전에는 매일을 울면서 지냈어요. 그런데 이곳에 와서 빈이가 얼마나 즐거워하는데요. 저도 하루하루가 소중하구요. 이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영원히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요.” 그랬다. 말기 암이 완치 되는 것,꼴찌가 일등 하는 것 노숙자가 대기업의 CEO가 되는 것 그런 것만이 기적은 아니다. 아이의 죽음을 코 앞둔 엄마에게서 환한 미소가 번지고 영원한 이별이 등 뒤에 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살아내는 이 병동의 하루가 멋진 축복인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 기적의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었다.



    Premium Chosun ☜       김여환 대구의료원 완화의료 센터장 dodo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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