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浮萍草音樂/아시아 불교민속

<16〉 대만 ⑧

浮萍草 2014. 4. 29. 06:00
    성운스님과 증엄스님
    계를 놀라게 하는 대만불교의 힘은 불과 사오십년 만에 이루어졌다. 대만불교라 하면 너나없이 불광산사ㆍ자제공덕회ㆍ중대선사ㆍ법고산사의 4대 종파를 드는데, 이들 모두가 철저히 무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더 놀라게 된다. 우리와 달리 법인 형태의 불교단체들이지만 종단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특히 불광산사와 자제공덕회를 일으킨 성운스님과 증엄스님은 불교계의 신화적 인물이다. 성운(星雲) 스님은 23세에 혈혈단신으로 대륙에서 건너와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황무지를 일구어 세계적 규모와 조직을 자랑하는 불교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25세 유발제자로 출가한 증엄(證嚴) 스님은 수십 명의 동참자와 함께 가난하고 병든 노인을 후원하기 시작하여 어려움이 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든 달려가는 관음보살의 상징이 되고 있다. 두 스님에 주목하는 까닭은 지극한 원력과 정법이 얼마나 큰 힘을 불러올 수 있는가를 기적처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설 속 인물 같은 이들 개산조는 지금도 양대 산맥을 이루며 대만불교를 이끌고 있다.
    세수 88세인 성운스님과 78세인 증엄스님은 비구ㆍ비구니 스님으로 각기 남쪽과 북쪽을 지탱하고 있으니 그 균형 또한 오묘하지 않은가. 짧은 시간에 기적을 일구어 세계에 우뚝 선 스님들. 이러한 분들이라면 매사에 큰 그림을 그리며 거시적 행보로 살아왔을 법하다. 그러나 눈에 띄는 두 분의 공통점을 꼽자면 가장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해왔다는 사실이다. 불광산사의 한국인 유발수행자는 학인시절 성운스님과 대면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80대 중반인 거장의 노스님이 정기적으로 학인들과 만나 의견을 경청하여 놀랐는데 외국에서 공부하러온 이들에 대한 배려가 마치 할아버지와 같았다. “한국에서 왔다니 고생 많구나. 좀 있으면 국제행사가 있으니 거기서 한국인 통역을 맡도록 해라.” 언어가 능숙치 않은데다 풋내기에게 통역을 맡기는 데 당황했지만 그녀는 감동하여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또 한국 불교학자들이 불광산사를 방문했다가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는데 성운스님이 만나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왔다고 한다. 감히 생각도 못한 일이었기에 이들은 성운스님 친견을 대만여행의 가장 인상적인 일로 꼽았고 이것이 바로 노스님의 힘이자 오늘날 대만불교의 상징적 힘이라 감탄 했다. 증엄스님이 1966년에 자제공덕회를 처음 만들었을 때의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회원은 스님 6명과 가정주부 30명이었는데 노인후원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스님은 이들에게 대나무저금통을 나눠주면서 하루에 50전씩 모으자고 했다. 그때 한 신도가 하루에 50전씩 모으는 것보다 한 달에 15원을 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의견을 내자,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원하는 건 매일이랍니다. 매일 50전을 저금하면 여러분은 한 달 내내 좋은 마음을 내게 되지만 한 달에 한번 15원을 내면 그저 한 번 좋은 생각을 할 뿐이지요.” 높은 지위에 올라 큰일을 하는 이들이라면 사소한 데 신경 쓰기 힘들다는 편견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이들이 일군 대만불교는 작은 것에 최선을 다해왔기 때문이고 그 진심이 눈덩이 같은 감동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이란 닫히면 겨자씨도 들어가기 힘드나 열리면 우주를 감쌀 수 있다지 않았던가. 이들 입지전적 개산조의 마음과 그 진심에 감동한 대중의 마음이 우주만큼 넓고 커 보인다.
    ☞ 불교신문 Vol 3005 ☜       구미래 불교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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