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달팽이 박사의 생명 이야기

울긋불긋 '꽃색의 비밀'

浮萍草 2014. 4. 19. 10:26
    빨강·보라는 '花靑素'의 마법 
    하양은 공기와 빛의 합동연출
    ▲ 조선일보 DB
    레는 꽃소식은 어김없이 오고야 마는구나. 만화방창(萬化方暢)이라, 드디어 삼라만상은 어울림으로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기화요초(琪花瑤草)라고 꽃떨기들이 흐드러지게 울긋불긋 잔뜩 요염한 자태를 뽐낸다. 그지없이 아리따운 봄꽃들도 크게 보아 빨강·보라·파랑·노랑·하양으로 나뉜다. 칠팔월 텃밭 한구석에 보라색 도라지와 백도라지 꽃이 어우렁더우렁 무더기로 핀다. 봉곳이 벙글은 풍선꼴의 꽃망울을 꽉 눌러보면 '빵' 하고 터진다. 말썽꾸러기들의 장난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활짝 핀 진보라 꽃봉오리를 따 왕개미 한 마리를 잡아넣고 꽃부리 가장자리를 싸잡아 쥔 채"신랑 방에 불 써라, 각시 방에 불 써라" 소리 지르며 한참을 마구 휘몰아 빙글빙글 돌린 다음 꽃 아가리를 열라치면 후줄근해진 개미는 비치적거리며 부리나케 내뺀다. 저런 울긋불긋 꽃잎 새에 새빨간 초롱불이 촘촘히 여럿 켜져 있다! 갇혔던 개미가 흔듦에 움찔움찔 놀라 질금질금 싼 개미 산(의산·蟻酸)이 청사초롱을 매달았으니 산성인 의산이 보라색 꽃물을 붉게 물들인 것이다. 신통방통한 요술이로군! 리트머스(litmus)액은 실온(25℃)에서 산성이면 적색 중성에 자주색(보라색) 알칼리성에서는 청색(녹청색)을 띠는 지시약 이다. 리트머스액이나 리트머스종이에 묻은 물감은 다름 아닌 지의류(地衣類)인 리트머스 이끼(litmus lichen)에서 뽑은 안토 시아닌이다. 다시 말해 리트머스 이끼에 듬뿍 든 안토시아닌이 곧 리트머스 지시약인 것. 화청소(花靑素)라 부르는 안토시아닌(anthocyanin)의'anthos'는 라틴어로'꽃''kyanos(cyanin)'는'푸름'을 뜻하며,이것은 식물의 꽃,과일,잎줄기,뿌리 세포의 액포(液胞)에 든 색소(물색)다. 꽃에 든 화청소는 곤충을 꾀어 꽃가루받이하고 과일의 것은 동물을 홀려 먹게 하여 씨를 퍼뜨리며 잎사귀에선 광합성을 저해하는 진초록색이나 세포를 손상케 하는 자외선 흡수 차단제 역할을 하니 어린싹이나 가을 단풍이 붉은 것도 같은 이치다. 사람 세포에서 활성산소를 없앤다는 항산화제로 작용하는 이것은 무르익은 블루베리와 체리,포도에 엄청나게 들었지만 검정콩이 최고 으뜸이란다. 이제 알았다. 진달래,철쭉처럼 붉은 꽃은 꽃잎의 세포액이 산성이며,보라색인 제비꽃과 도라지꽃은 중성,나팔꽃과 닭의장풀꽃은 알칼리 성이라는 것을 한데 그럼 노랑 꽃은? 그건 꽃이나 열매 색을 발현하는 화청소와는 무관한 카로티노이드(carotenoid)계 색소 때문으로 개나리와 양지꽃이 그래 노랗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화청소도 카로티노이드 색소도 통 만들지 못하는 흰 꽃이다. 자, 인제 하얀 꽃잎을 따 거머쥐고 꼭 짓눌러보자. 돌연 흰색이 사라지고 마니 이는 세포 틈새에 들었던 공기가 빠져나가 버린 탓이다.
    또한 흰 머리칼은 멜라닌 색소가 없는 까닭도 있지만 모발이 대통처럼 비어서 속에 든 공기에 빛이 반사한 탓이다. 뭉뚱그려 말하면 꽃잎이나 모발이 하얀 것은 속의 공기에 빛이 부딪혀 꺾이는 산란(散亂·scattering)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듯 꽃의 빨강·보라·파랑은 화청소가 부린 마법이요, 노랑은 이상한 카로티노이드 색소며, 하양은 공기와 빛의 합동 연출이었다. 어쩜 이렇게 화사한 꽃에 오롯이 과학이 스며 있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인불백일호(人不百日好)다. 아무렴 봄꽃도 한철이요, 꽃이 시들면 오던 나비도 안 온다지. 매양 영원한 것은 없으매 봄은 금세 가고 꽃도 쉬 진다.
    Premium Chosun ☜       권오길·강원대 명예교수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