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달팽이 박사의 생명 이야기

쓱 문지른 나비 날개선 無色 가루만… 여기엔 '나노의 비밀'이

浮萍草 2014. 3. 29. 10:56
    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꽃샘추위도 이미 지나고 어김없이 백화난만(百花爛漫)하는 싱그러운 봄이 할금할금 찾아든다. 
    봄볕에 그을리면 보던 임도 못 알아본다고 겨울난 여린 살결 자외선에 쉽게 탄다. 
    또 봄에 흰나비 보면 엄마 죽는다 하여 금방 보고서도 '아니야, 아니야, 노랑나비 봤어' 하고 체머리를 흔들었는데…. 
    암튼 화접(花蝶)은 뗄 수 없는 연분을 맺었다. 
    한데 꽃이 고와야 나비가 모인다고, 내 딸이 예뻐야 사위를 고르지.
    하늘하늘 팔랑팔랑 가녀린 호랑나비나 제비나비들도 늘 다니는 길이 있으니 그것을 나비길(접도·蝶道)이라 한다. 
    나비의 날갯짓 속도는 종류나 기후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1초에 20여번으로 초속 0.9m 빠르기며 나비 비늘은 지붕 기왓장을 포개놓은 듯 비늘 축받이에 끼여 있어 
    잘 빠지지 않는다. 
    또 나비는 가시광선 말고 자외선도 알아보니 늙다리 수놈들은 비늘이 낡고 닳아 자외선 반사가 흐릿하기에 암놈들이 본체만체한다. 
    그리고 날개 윗면과 아랫면의 색이 다르니 전자는 친구와 짝을 알아보는 신호로 쓰고 후자는 보호색으로 이용한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이 화려하고 현란한 색상과 무늬를 뽐내는 나비 비늘에서 물감을 뽑아보려고 했다는데 과연 성공했을까? 꽃잎을 따서 손가락으로 꽉 눌러 으깨보면 색소가 묻어나지만 쓱 문지른 나비 날개에서는 무색 가루만 묻어난다. 도대체 어찌 노랑 빨강 파랑의 그 영롱한 비늘 빛깔이 감쪽같이 사라졌단 말인가? 꽃잎은 나름대로 색소가 빛을 내지만 인분(鱗粉·나비 날개에 있는 비늘 모양 분비물)은 색소 없이 색을 내는 구조색(構造色)이다. 색소가 발하는 색깔은 모든 각도에서 봐도 같지만 인분은 광결정체(光結晶體)인 나노 구조(Nanostructure)라 다른 각도에서 보면 약간씩 다르게 보인다. 손가락에 묻은 나비 비늘이 무색인 것은 나노 구조가 파괴돼 본래 빛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리따운 꽃잎이 '생화학'적인 고운 색소를 품었다면 곱상한 나비 날갯죽지는 '물리학'을 싣고 휘날린다. 진주조개, 오팔, 공작 꼬리 깃털, 딱정벌레의 찬란한 물색도 화학 색소가 아니고 나노 구조란다. 한데 나비 한 쌍이 살랑살랑 스치듯 말듯 잇따라 맞닿기를 하는데 이는 결코 밀월여행이 아니라 수컷의 항문 근처에 있는 연필 지우개 닮은 돌기로 암놈 더듬이에 사랑의 향수(성페로몬)를 묻혀주는 짓이다. 그렇게 1시간 넘게 전희(前戱)를 하다가 이윽고 후미진 곳에 사뿐히 내려앉아 너부죽이 날개를 펴고는 둘의 아우름이 일어난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에드워드 로렌츠의'나비효과(Butterfly Effect)'란 브라질의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텍사스에서 토네이도를 일으킨다는 이론으로 사소한 일도 나중에 커다란 결말을 가져오니 마땅히 대수롭잖고 미미한 것이라도 얕보지 말라는 것이다. 근데 나비 중에서 애호랑나비나 모시나비 무리의 수놈은 생뚱맞게도 암놈 자궁에 정자와 함께 큼직한 영양 덩어리를 슬며시 삽입한다. 놀랍게 거기에는 성욕 억제제가 들어 있어 암놈 나비로 하여금 다시는 더 짝짓기 하고 싶지 않게 할뿐더러 반투명한 이것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져 자궁 입구를 틀어 막아 버리니 이를 수태낭(受胎囊)이라 부른다. 일종의 정조대인 셈이다. 이 얼마나 이기적인 수컷들의 생식 행태란 말인가. 오로지 제 씨(유전인자·DNA)만 퍼뜨리겠다는 수놈들의 짓궂은 심보에 아연히 혀가 내둘린다. 나비야 청산(靑山) 가자 범나비(호랑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이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Chosun ☜       권오길·강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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