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달팽이 박사의 생명 이야기

물고기가 살아야 조개도 산다… 서로 도와주는 '어패류의 共生'

浮萍草 2014. 5. 31. 09:33
    ▲ 민물조개의 일종인 귀이빨대칭이. / 국립중앙과학관 제공
    은 물고기의 집일뿐더러 조개들의 서식처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찌 물밑 강바닥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담? 온 세계의 강과 호수에 사는 일부 어패류(魚貝類)들이 신기하고 절묘한 공생(共生)을 하고 있으니 유별난 이들의 공서(共棲·종류가 다른 동물이 한곳에 모여 함께 삶)·공진화(共進化)를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민물 터줏고기 210여종 중에 유독 납줄개·각시붕어·납자루·납지리 등 3속 12종과 중고기 등 1속 3종을 합쳐 15종의 어류는 기이하게도 꼭 조개에다 산란한다. 그런가 하면 17종 조개 중에서 말조개·두드럭조개·대칭이·펄조개 등 6속 10종의 조개는 반드시 유생(幼生· 변태동물의 어릴 때)을 물고기에 달라붙게 한다. 필자의 전공이 연체동물(달팽이·조개·고둥 따위)인지라 이들의 얽히고설킨 생태·생리·발생에 관한 논문도 몇 편 건졌다. 어류가 패류에 알 낳는 것부터 보자. 앞서 이야기한 물고기들은 이상하게도 산란 시기가 되면 갑작스레 수컷은 혼인색(婚姻色)을 띠어 되우 멋쟁이가 되고 암컷은 여태 없던 산란관(産卵管)이 길게 항문 근처에 늘어나 마치 물통을 길게 달고 다니는 산불 진화 헬기 같은 모습이 된다.
    한껏 긴장해진 수놈들은 텃세를 부리다가 솔깃해하는 암놈이 나타나면 헐레벌떡 온몸을 들이밀어 치근대며 부들부들 떨기나 곤두박질치기 같은 교태를 부려가며 산란장(조개)으로 유인한다. 암컷이 쩍 벌어진 조개 수관에 대뜸 산란관을 꽂아 넣어 알을 쏟고 나면 곁에서 지켜본 수놈은 잽싸게 달려가 입수관 가에다 부랴부랴 희뿌연 정자를 뿌린다. 이리하여 조개는 제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의 자식을 품은 기구한 운명의 대리모가 된다. 인큐베이터 속의 미숙아 모습을 빼닮았다고나 할까. 알은 많게는 30~40개에 이르러 조개 호흡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조개 아가미 속에 든 이 알은 딴 물고기에 먹히지 않고 고스란히 자라 나오는지라 이들은 여느 물고기보다 알을 훨씬 적게 낳는다. 신생아 사망률이 낮아지니 출산율이 줄듯 말이다. 수정란(受精卵)은 조개 둥지에서 한 달여 자라 1㎝ 크기의 어엿한 모이(물고기 새끼)가 되어 나온다. 아무튼 세상에 가짜는 많아도 거저먹는 공짜는 없다. 이제 조개가 물고기에게 신세 질 차례다. 물고기와 조개의 산란 시기가 거지반 일치하는지라 물고기가 조개에 산란하기 위해 주위에 얼쩡거리면 조개는 대번에 1.5㎜나 되는 '글로키디움(Glochidium· 갈고리란 뜻)'이라는 새끼 조개를 훅훅 내뿜는다. 이들은 여린 껍데기 끝에 난 예리한 여러 갈고리로 물고기 지느러미나 비늘을 쿡 찍어 물고 늘어진다. 기생체인 글로키디움이 더덕더덕 까뭇까뭇 달라붙어 이내 물고기의 몸속 깊숙이 헛뿌리(허근)를 박아 서슴없이 피를 빤다. 역시 한 달 남짓 지나면 조개 모양새를 갖춘 유패(幼貝)들이 밑바닥에 떨어진다. 서로 숨쉬기 힘들고 피를 빨리는 희생이 따르지만 느림보 조개는 새끼를 물고기에 붙여놔 딴 놈들에게 먹히지 않을뿐더러 날쌘 물고기 배달부가 종횡무진 멀리 새끼를 옮겨주니 한결 퍼짐(放散·방산)에 유리하고 물고기는 조개 안에 알을 낳아 안전하기 그지없다. 이들의 알뜰한 만남은 이미 유전 인자에 오붓이 박혀 있어 빼도 박도 못하는 연분(緣分)이요 숙명적인 상생(相生)이다. 그 때문에 조개가 절멸하면 물고기도 따라 전멸하고 물고기가 없어지는 날에는 조개도 줄줄이 사라지니 연쇄반응이요 장기(將棋)튀김(도미노)이다. 아무튼 허둥지둥했던'4대강 살리기 사업' 탓에 이들 어패류가 얼마나 혹독하게 죽임을 당했을지는 불문가지다. 어서 다시 제자리를 잡아가야 할 터인데….
    Chosun ☜       권오길·강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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