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세종 회장과 충무공 사장

2 세종대왕이 창조경영 CEO인 7가지 이유

浮萍草 2014. 4. 15. 21:46
    ▲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앞을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리 반만 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의사결정을 한 왕은 조선 3대 태종이다. 장자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폐하고 3자 충녕대군(세종)으로 왕위를 계승하게 하여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왕이 되게 한 것이다. 세종은 미국의 발명왕 에디슨을 훨씬 뛰어넘는 불세출의 발명왕이며 인문학자,언어학자,음악가,복지가이며 벤처창업 경영자이다. 세종의 벤처창업 정신은 논리와 합리도 중요시 하지만 백성과 고통을 공감하는 것을 우선하는 감성적 복지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감성이란 논리와 반대 개념으로 다른 사람들의 슬픔이나 기쁨 등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같이 공감해 주는 것을 뜻한다. 세종은 대단한 독서광이었고 유학서적보다 역사책들을 더 좋아 했는데 이는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덜어주기 위한 역사적 고찰과 고증을 위한 것이었다. 세종은 지배와 통치의 논리를 뛰어 넘어 글 모르는 백성들이 무식하여 답답한 것은 물론,수없이 억울함을 당하는 뼈아픈 고통을 가슴 아프게 공감하였다. 이에 어머니의 감성으로 한글을 창제하고 각종 과학기술들을 창조하였던 것이다. 세종대왕이 감성적 벤처경영자인 7대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도전적 교육복지 창조 정신
    훈민정음은 말 그대로 백성을 가르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서문에 세종은 백성을 위한다는 신념과 우리말과 일치하는 쉬운 소리글자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언문일치의 가치관을 갖고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창조한다고 하였다. 이에는 세종의 위대한 창조정신과 벤처정신 그리고 홍익인간의 정신이 담긴 감성을 기초로 한 지식경영의 의지가 그대로 나타나 있다. 그 목적도 백성들을 위한 복지에 있다. 당시는 한자만이 가장 위대한 문자로 인식되었던 시대이다. 이때 피지배자인 무식한 백성들의 학습과 편의를 위하여 배우기 쉬운 소리글자 한글을 창조하였다는 것은 인간존중의 위대한 창조적 교육 복지정신이고 중국 문화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② 고객 지향의 User Friendly한 한글 창제
    세종은 지배계급이 아닌 피지배 계급인 불쌍한 백성들을 위하여 문자를 만든 세계역사의 유일한 제왕이다. 한글 창제는 자칫하면 귀족들로부터 정치적으로 보복을 받아 왕의 자리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힘없는 무식한 백성들을 위해서 당뇨,고혈압,안질,창병(악성종기) 등 거의 30 가지에 달하는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 초인적인 정신으로 한글을 창제하였다. 이렇게 세종은 자신의 목숨과 왕의 자리를 담보로 하여 사랑하는 그의 백성들을 고객으로 생각하고 이미 550 여 년 전에 현대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들이 가장 중시 하는 사용자 편리(user friendly)개념으로 한글을 만들었던 것이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실용적인 무형적 지식자산이다.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현대 첨단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들이 인류에게 편리성을 제공하고 있지만 우리 민족에게 한글만큼 편리와 실용성 그리고 독창적인 지식을 산출할 수 있는 도구는 되지 못하고 있다.
    ▲ 훈민정음 해례본.
    ③ 백성들의 암묵적 지식을 형식 지식으로 전환
    훈민정음 서문에 백성들이 제 뜻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데에 대한 세종의 아픔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정상적인 인간이면 누구나 모두 내면적으로 즉 암묵적으로 갖고 있는 지식과 사상,철학,감정,창조적 아이디어가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문자)가 없으면 그것들을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형식지식(책이나 서류 등)으로 바꾸지 못한다. 이에 세종은 조선 백성 모두 각자 내면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암묵적 지식을 형식지식으로 바꿀 수 있게 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한글을 창제하였던 것이다. 만약 한글 창제 후 온 나라가 계속하여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면 조선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지식을 생산하는 지식국가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면 조선은 세계 최초의 민주국가(영국 같은 입헌군주국)가 되었음은 물론 가장 찬란한 문명 문화의 일등 선진국이 되었고 한일합병 같은 치욕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④ 출산 휴가와 세법에 대한 전국적 여론조사
    세종은 광화문 밖 광장에서 관이 끓여 주는 죽을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받아먹는 백성들의 참담한 모습을 보고 하도 슬퍼 눈물을 흘렸다. 그들의 곤궁하고 처절한 삶을 직접 체험하고 느끼기 위하여 경복궁 안에 버려진 헌 나무토막들을 주어 초가삼간을 짓게 하고 그 안에서 집무를 보았다. 세종은 관청의 여노비들의 출산 시 산후 100일의 휴가를 주었고 후에는 남편에게도 30일의 휴가를 주었다. 이는 현대판 출산 휴가의 효시이다. 세종은 농민들이 내는 세금에 관리의 농간으로 인한 농민들 고통을 구제하기 위해 세법을 바꾸는데 관리와 농민들에게 함께 설문조사하는 역사상 최초의 전국적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선은 태조 때부터 중국에서 처녀공출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받는 처녀들과 부모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중국과 외교교섭을 하여 처녀 공출을 산삼 공출로 대체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렇게 세종은 어머니의 감성과 사랑으로 백성들의 고통을 하나라도 덜어 주려고 불철주야 노력하였다. 세계 어느 나라 역사에 이렇게 백성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베푼 제왕이 있었겠는가? ⑤ 노예 출신을 신과학기술 발명가로 발굴
    세종이 발굴한 당대의 가장 위대한 신지식인 창조인은 동래 관아의 노예 출신 장영실이었다. 재주는 비상하지만 노예 신분인 장영실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세종은 깊이 느끼고 있었다. 대신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장영실을 노예 신분에서 풀어 주었고 그가 해시계, 물시계를 만든 뒤 종3품 대호군까지 신분 상승을 시켰다. 윤득홍이란 천인출신도 왜구와의 전투에서 공이 크고 능력이 있어 정2품의 반열에 오르게 하였다. 세종의 이렇게 신분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인사관리 패러다임 때문에 장영실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기술자가 될 수 있었고 조선의 과학혁명을 주도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장영실이 창조한 해시계는 백성들을 위하여 백성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현재 조선일보사 건너편인 청계천 입구와 종로에 설치하였다. ⑥ 국방력의 강화로 백성 복지 기반 구축
    세종은 국방력이 약하면 국가와 국민의 안녕이 보장될 수 없다는 생각에 군사력도 막강한 국가를 원했다. 세종은 태종 때부터 개발한 강력한 화약과 철제화포들을 새로 더 많이 제작하였고 1444년에는 화포주조소를 만들어 계속 화포들을 개량하였다. 특히 1443년에는 사정거리 1500 미터의 대포도 개발하였다. 그리고 당시 인구가 600 만 정도로 추정되는데 군사의 수는 약 30 만 명의 대병력이었다. 세종 초 대마도 정벌 후에는 고려시대 윤관이 개척한 만주의 공험진(두만강변 경흥에서 북쪽 700리)까지 영토 확장을 기했다. 김종서와 최윤덕을 시켜 두만강 변 6진과 압록강 변 4군을 개척하고 야인들을 몰아내어 그 지역의 민생을 안정시켰다. 즉 강한 국방력이 없으면 국가의 존재는 물론이고 민생의 안정과 복지도 없다는 세종의 강한 의지를 지금의 정치인들과 경제인들은 본받아야 할 것이다. ⑦ 농업과 의학의 발달
    조선은 농업이 산업의 근본인 농업국가다. 그러므로 농사가 잘 되어야 경제가 잘 돌아가고 민생의 복지도 향상된다. 세종은 우리나라 농업책인 본국경험방 등의 농업서적을 통해 농업기술을 전파했다. 그리고 정초의 농사직설을 편찬·반포하여 조선시대 농업기술 발달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또한 당시는 질병이 발생하면 거의 속수무책이었다. 이에 세종은 의약발명에도 관심을 기울려 향약채집월령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등의 각종 의약서적을 편찬하였다. 특히 향약집성방과 의방유취는 15세기까지의 조선과 중국 의약학의 발전을 결산한 것으로 동양 과학사에서 빛나는 업적의 하나가 되고 백성들 의료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 2013년 7월 31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하는‘2013 재외한글학교교사 초청연수’에 참가한 교사들이 한글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ㆍ미국·유럽의 경영모델 보다는 세종 모델 본받아야
    세종은 국가와 백성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각종 질병의 고통 속에서 최선을 다 했다. 세종의 국가경영이 주는 시사점은 국민의 안녕과 복지는 기득권자들이 국민을 고객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고통에 대하여 공감하면서 국방력을 강화하고 독창적 문화와 과학기술을 창조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단일 민족의 한국에서 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가 왜 그렇게도 어려운 과제일까? 200 여년 짧은 역사의 다민족 이민 국가인 미국식의 합리적 논리적 자본주의 경영에만 의존하지 말자. 또 무턱대고 복지만 해주는 남부 유럽도 본받지 말자. 정부 측이든 민간 측이든 한국의 CEO 들이 인간에 대한 사랑을 기본으로 하는 세종의 감성적 창조경영을 한다면 어떠한 위기도 극복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강한 복지국가가 될 것이다. 한국의 기적적 경제발전은 미국 자본주의 경영도 주요한 역할을 하였겠지만 한국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한 한국적 경영이 함께 하여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Premium Chosun ☜        장대성 전 강릉영동대 총장 dschang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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