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간호사의 흰색 가운이 화려한 색으로 진화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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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명품으로 가득 찬 백화점을 거니는 느낌입니다.
여자들이라면 숨 막히게 아찔할 신상으로 가득한 곳 그림의 떡이라도 좋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기분이니까요. 웨스 앤더슨 백화점 최고의 명품 샵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오픈했습니다.
동화적인 판타지하면 떠오르는 감독은 팀 버튼이지만, 좀 그로테스크하고 예측불허입니다.
웨스 앤더슨은 조금 온도가 따뜻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예쁜 색채와 정교하게 짜 맞춘 화면 구성에 있을 텐데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웨스 앤더슨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알프스 산맥 어딘가에 있는 가상의 호텔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호텔은 유럽의 부자들, 특히 여자 손님들이 많이 찾습니다.
전설적인 지배인 므슈 구스타브(랄프 파인즈) 때문입니다.
그의 애인 마담 D.(틸다 스윈튼)도 손님 중의 하나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다녀간 후에 그의 저택에서 의문의 살해를 당합니다.
그녀는 유언을 통해 최고의 명화 ‘사과를 든 소년’을 호텔 지배인이자 연인 구스타브(랄프 파인즈) 앞으로 남깁니다.
마담 D.의 유산을 노리고 있던 그의 아들 드미트리(애드리언 브로디)는 구스타브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그녀의 유품과 함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까지 차지하기
위해 무자비한 킬러 조플링(윌렘 대포)을 동원합니다.
구스타브는 충실한 호텔 로비보이 제로(토리 레볼로리)와 함께 누명을 벗기 위한 기상천외한 모험을 시작합니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스토리도 흥미진진하지만 화면 곳곳에서 깨알 같이 쏟아지는 최고의 배우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입니다.
시대적인 배경에 맞추어 화면비율이 달라지고(흑백 장면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좌우 대칭의 장면들과 그림책의 한 페이지 같은 연기,무표정의 유머는 관객들에게
시각적인 즐거움을 가득 안깁니다.
무엇보다 웨스 앤더슨적인 것은 화면 가득한 색채들입니다.
핑크빛 호텔, 붉은 엘리베이터, 보라색 호텔 제복, 파스텔 톤이 가득한 장면들은 영화가 색의 예술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줍니다.
색으로 그 아이덴티티가 결정되는 곳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붉은 색은 소방서, 흰 색은 병원이라고 언젠가부터 정해져 있습니다.
빨강, 파랑과 흰 색의 삼색 기둥이 돌아가는 곳은 어디일까요? 네 이발소입니다. 사실 이발소의 세 가지 색은 병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중세 시대에는 이발소에서 간단한 외상 환자들을 처치하였다고 합니다.
뼈가 부러지거나, 칼에 찔린 부상들은 이발소에서 치료를 하기도 하였는데 이발소의 삼색 기둥은 그 때부터 시작된 표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빨강은 동맥, 파랑은 정맥을 의미하고, 흰 색은 신경, 혹은 하얀 붕대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 중의 흰 색이 병원의 상징으로 굳어진 것입니다.
의사와 간호사의 가운이 하얀색인 것은 그러한 유래도 있지만 더러운 것이 묻으면 빨리 알 수 있어 바로 교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가운의 색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간호사들의 유니폼은 병원마다 개성 있게 달라졌습니다.
이제 머리에 캡을 쓴 백의의 천사를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수술실에서도 보이고 있습니다.
수술실에서 외과 의사들의 수술복은 전통적으로 흰 색이었습니다.
현대에는 환자들에게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눈의 피로를 덜어준다는 의미로 녹색으로 바뀌어 오랜 시간 수술실의 대명사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원색인 녹색보다는 파스텔 톤의 하늘색이 더 눈이 편하다는 결과가 있어서 최근에는 일회용 수술 포와 수술 가운은 전부 하늘색으로 바뀌었습니다.
수술 모자와 마스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아가서 외과의사나 수술실 간호사의 모자는 다양한 색도 선보이고 꽃무늬나 귀여운 동물들이 그려진 것도 있으니 과히 색의 반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이제 점점 흰 색과 녹색은 병원의 상징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흰 색은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한 때 병원의 분위기도 그러하였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철저히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한 병원들은 자세를 낮추고 환자 중심의 병원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환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디자인하고 있으며, 병원의 상징인 흰 색도 이제는 바뀌고 있습니다.
특히 병원 감염의 원인으로 의사들의 넥타이와 가운이 주목되자 일부 선진국의 병원들에서는 넥타이와 가운 착용을 금지하기도 하였습니다.
대신 수술복 같은 유니폼을 착용하도록 하였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하얀 셔츠와 넥타이 잘 다려진 흰 가운을 입고 회진을 도는 의사의 모습을 보기 어려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양한 색의 병원, 이제는 시대의 변화입니다. 물론 깨끗함의 상징인 흰색은 병원의 기본입니다.
청결,소독,치유의 의미인 흰색의 바탕위에 다양한 색으로 변화를 주는 병원들의 탈바꿈을 즐거운 눈으로 바라봐야겠습니다.
☞ Premium Chosun ☜ ■ 임재현 나누리서울병원 원장 nanoori1002@naver.com
草浮 印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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