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과학 이야기

8 폭설에 감춰진 자연의 아름다움

浮萍草 2014. 2. 21. 11:30
    울에는 봄기운이 완연한데 태백산맥을 넘으면 사정이 전혀 다르다. 
    기상관측을 시작한 1908년 이후 가장 긴 9일이 넘는 기간 동안 연속적으로 쏟아진 폭설에 모든 것이 깊이 묻혀 버렸다. 
    도시의 기능은 마비되고, 산간 마을은 완전히 고립되어 버렸다. 
    허술하게 지은 체육관의 지붕이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내려앉으면서 무고한 대학 신입생의 목숨을 앗아가는 끔찍한 재앙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만 눈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일본에도 기록적인 폭설이 쏟아졌고 미국의 동부 지역도 상상을 넘어서는 추위와 폭설로 완전히 얼어붙어 버렸다. 
    전 세계의 극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겨울 왕국’에서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예쁜 주인공 엘사의 저주 때문이라는 소문이 
    그럴듯하게 들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ㆍ눈송이에 숨겨진 아름다움
    바람에 휘날리는 함박눈도 아름답지만 소나무나 장독대에 소복하게 쌓여있는 하얀 눈도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준다. 그런데 과학의 눈(目)으로 보는 눈(雪)은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찬란하고 신비롭다. 그래서 198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화학의 시인’ 로알드 호프만은 이렇게 노래했다. ㆍ<광부> 한 사람이 말했네 산봉우리에 서더라도 볼 수 없는 것이 있다고 그 사람은 광부였다네.
    높은 산의 정상에서 볼 수 있는 겉으로 드러나는 설경(雪景)이 전부가 아니라 자연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땅 속 깊이 파고 들어가야만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눈송이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눈송이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처음 찾아낸 사람은 르네상스 시대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였다. 돋보기를 통해 눈송이가 아름다운 육각형 대칭성을 가지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낸 케플러의 호기심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케플러는 1611년에 둥근 공을 쌓아서 육각형의 눈송이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한‘육각형 눈송이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물질을 구성하는 원소는 물론이고 물 분자의 존재조차 짐작할 수 없었던 케플러가 정말 놀라운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17세기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와 자연학자 로버트 후크도 아름다운 육각형 눈송이에 감춰진 비밀을 알아내려고 애를 썼다. 철학자라고 언제나 인간만 생각하는 우리 식의 ‘문과형’ 인물은 아니었던 셈이다.
    ㆍ과학으로 밝혀낸 눈송이의 아름다움
    고도로 발달한 현대 과학에서도 눈송이는 여전히 아름답고 신비롭다. 눈송이는 수분이 많은 저기압이 상승하면서 차가운 고기압을 만날 때 만들어지는 눈구름 속에서 만들어진다. 차가운 눈구름 속에서 만들어지는 작은 얼음 조각이 구름 속의 강한 바람에 휘날리는 과정에서 물 입자들이 달라붙으면서 만들어진다. 그런 과정에서 물 분자가 얼음의 매끄러운 면보다 두 면이 만나는 모서리에 더 잘 달라붙기 때문에 육각형 모양으로 자라게 된다. 마루의 구석진 곳에 먼지가 많이 모이는 것과 똑같은 원리다. 그러나 눈송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아무도 분명하게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눈송이의 모양이 손가락의 지문처럼 모두 다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눈송이가 자라는 모양은 공기 중에 들어있는 수증기의 양과 온도 그리고 구름 속의 바람의 속도에 따라 달라진다. 온도가 너무 높거나 낮으면 밋밋한 육각형 기둥 모양이 잘 만들어지고 잔가지가 많이 달린 정말 예쁜 눈송이는 섭씨 영하 10~20도 사이에서 잘 만들어진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물리학과의 케네스 리브레흐트 교수가 최근에 밝혀낸 과학적 진실이다. 눈송이는 수학적으로도 흥미로운 대상이다. 육각형의 큰 가지에 많은 잔가지가 붙어있는 눈송이는 복잡계의 과학에서 사용하는 프랙탈(分次元) 도형의 대표적인 예다. 스웨덴의 수학자 헬게 폰 코흐는 1904년에 눈송이를 닮은 프랙탈 도형을 만드는 수학적 방법을 찾아냈다. 코흐의 눈송이는 수학적으로 1차원의 직선이나 2차원의 평면의 중간에 해당하는 1.26186 차원의 특성을 가진 프랙탈 도형이다. 바닷가의 모래알로 만들어지는 해안선의 모양도 코흐의 눈송이만큼 신비로운 프랙탈 도형이다.

    ㆍ아름다운 눈이 골치 아픈 사치가 될 수도
    눈송이가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지만 차갑고 미끄러운 눈이 언제나 반가운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많은 양의 눈이 내리면 오히려 우리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위험해질 수도 있다. 이번에 경험했듯이 재앙적인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대도시의 주민들에게 폭설은 감동을 주기보다 골칫거리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건물과 도로에 쌓인 눈을 치우는 일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눈을 치우는 일에도 과학적 원리와 상당한 수준의 기술이 필요하다. 물론 상당한 노력과 비용을 투입해야 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하기 어렵다. 도로에 쌓은 눈을 치우는 방법은 기후, 도로, 교통량 등에 따라 달라진다. 남의 나라에서 쓰는 방법이라고 무작정 흉내 낼 수는 없다. 눈을 치우는 가장 간단한 방법는 물론 물리적으로 눈을 밀어내는 것이다. 작은 길의 경우에는 삽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자동차가 다니는 대로의 경우에는 대형 제설차를 이용해야 한다. 빠르게 회전하는 팬에서 쏟아져 나오는 강한 바람을 이용하는 제설 장비도 있다. 도로에서 밀어낸 눈은 덤프트럭을 이용해서 도시 바깥으로 실어내기도 하고 보일러의 열기로 눈을 녹여 하수구를 통해 배출시키기도 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도로가 붐비는 경우에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제설 장비의 구입과 유지에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ㆍ화학을 이용하는 지혜도 있다
    서울처럼 교통량이 많은 경우에는 염화칼슘이나 암염(소금)과 같은 제설제를 이용할 수 있다. 물론 무작정 제설제를 뿌린다고 도로 위의 눈이 녹는 것은 아니다. 염화칼슘이 제설제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우선 약간의 눈이 녹아서 액체의 물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서 기온이 너무 낮거나 도로에 자동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도로에 뿌린 염화칼슘은 무용지물이 된다. 그러나 일단 염화칼슘이 물에 녹게 되면 물이 어는점이 내려가서 더 많은 양의 눈이 녹게 된다. 소금이 녹아있는 간장이 쉽게 얼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염화칼슘이 물에 녹으면서 상당한 열이 발생하는 것도 제설 효과를 향상시키는 일에 도움이 된다. 염화칼슘이 대도시에서 편리하고 효과적인 제설제로 사용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로수의 성장을 저해하기도 하고 아스팔트 도로를 파손시키기도 한다. 염화칼슘이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키고 수중 생태계를 교란시키기도 한다. 자동차나 철제 구조물의 부식을 가속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수 배출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에는 젖은 도로(블랙아이스)가 자동차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다. 염화칼슘의 화학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사용량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리 많이 뿌려도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는 소위 ‘친환경 제설제’는 기대하기 어렵다. 염화칼슘을 미리 물에 녹여서 사용하는 것은 염화칼슘이 녹을 때 발생하는 아까운 열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일이다. 바닷물을 사용하는 것도 현명한 대안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차피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는 바닷물도 육지 생태계와 철제 구조물에 피해를 주는 것은 마찬가지다. 화학적 입장에서 염화칼슘보다 더 효율적인 제설제를 개발하기는 쉽지 않다. 첨단 기술을 사용하려면 준비도 필요하다. 염화칼슘에 녹은 눈이 하수구를 통해 쉽게 배출되도록 도로의 구조도 개선해야 하고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염화칼슘의 보관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보존기간이 지났다고 무조건 폐기해야 할 필요는 없다. 딱딱하게 굳은 염화칼슘에서 수분을 제거하고 적당한 크기로 분쇄하면 제설제로 사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게 된다. 물론 비용이 들겠지만 값비싼 대형 제설차를 차고에 묵혀두기 위해 부담해야 하는 비용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Premium Chosun   이덕환 서강대 교수 duckhwan@sogang.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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