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와 병원, 둘 다 생명과 관련… 탑승과 마취로 죽을 확률 매우 낮아
항공사, 기내 서비스로 승객 유치, 병원도 환자가 느끼는 감성에 관심
병원, 항공의 안전 평가 의무로 하고 의사 밤샘·음주 수술 없애 믿음 줘야
▲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요즘 세상에 여태껏 비행기 한번 안 타 본 사람은 드물지 싶다.
본인이나 가족 중에 누군가가 병원에 한 번쯤은 입원한 경험도 있을 것이다.
비행기와 병원, 전혀 다른 분야일 것 같지만 실은 매우 유사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둘 다 생명과 관련돼 있다. 비행기 좌석에 앉으면'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이 비행기가 떨어지면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공포감이
마음 한구석에 든다.
비행기가 강풍에 심하게 흔들리면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니냐?' 하는 불안감을 느끼곤 한다.
그렇다고 비행기 추락이 무서워 항공 여행을 기피하는 사람은 적다.
그만큼 항공기 안전에 대한 믿음은 있다.
병원에 가서 전신마취 수술을 받을 때도 비슷한 심정이 된다.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수술이나 마취가 잘못되면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한편에 든다.
그렇다고 그게 무서워 병원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는 드물다.
전 세계적으로 하루에 약 10만 번 어딘가에서 비행기가 뜨고 내린단다.
일년으로 치면 3000만 번이 넘는다.
그중에 일어나는 추락 사고는 뉴스에 나올 정도로 매우 드물다.
일평생 비행기 탑승으로 죽을 확률은 0.0002%이고 교통사고로 사망할 확률은 1.02%라는 통계도 있다.
확률로 치면 비행기보다 무서운 게 자동차이다.
의료사고로 인한 사망 사건도 잊을 만하면 터지며 뉴스를 탄다.
의학 책에는 전신마취 1만3000건당 한 번 심각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하는데 요즘은 마취 약물과 기술이 발달하여 사고 가능성이 '비행기' 수준이라는 평이다.
항공산업 초기에는 비행기가 지금처럼 안전한 이동 수단은 아니었다.
정비 불량과 조종사 착오로 인한 사고가 꽤 났다.
그때는 승객들이 항공사를 선택하는 최대 기준은 안전이었다.
이왕이면 대형 항공사의 신형 기종을 선호했다.
그러다 항공기 안전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은 안전 점검 체크리스트 시스템을 도입하면서부터다.
비행기를 띄우기 전에 체크해야 할 항목별 목록을 만들어 그것이 확인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게 했다.
그러면서 비행기 사고는 확연히 줄었다.
병원도 항공 안전 체크리스트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의료사고가 줄었다.
요즘은 의료 전산 체계 발달로 필수 확인 사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처방이나 처치 지시가 전산에 입력되지 않도록 한다.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이제 어느 비행기를 타나 목적지까지 가는 비행시간은 비슷하다.
인천에서 뉴욕까지 가는 데 14시간 걸리는 것은 어느 항공사나 같다.
안전과 속도에서 별 차이가 나지 않자 항공사들은 기내 서비스를 갖고 승객 유치를 경쟁한다.
항공사 광고가 편안함과 따스함을 유난히 강조하는 이유다.
비행기에 머무는 동안 승객이 지루하지 않게 다양한 영화나 게임,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한다.
비행기는 항공 운송 산업이 아니라 호텔 사업으로 변했다.
병원도 의료기술이 보편화되고 안전 문제가 개선되면서 환자들이 병원에 머물며 느끼는 감성과 공감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어디 가나 '환자 행복'이요 '환자 감동' 문구와 표어가 눈에 띈다.
의료 서비스도 비행기 비즈니스 클래스를 닮아 가고 있다.
병상에서 환자마다 설치된 모니터나 태블릿 PC로 MRI도 보고 수술 경과 설명도 듣고 건강관리 정보를 얻고 영화를 본다.
이 때문에 외국에서는 항공사 직원이 병원 환자 관리 담당으로 채용되기도 한다.
항공 여행이 늘면서 쌓이는 마일리지는 항공사 선택 기준이 됐다.
마일리지가 승객을 계속 잡아놓는 최적의 마케팅 수단이다. 병원도 비슷하다.
환자 기록이 마일리지 역할을 한다.
환자가 해당 병원을 이용하면 이용할수록 진료 기록이 쌓이면서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게 불편해진다. 이것도 병원과 비행기가 유사한 점이다.
하지만 아직 병원이 항공기 안전 체계를 따라가기에는 미흡한 면이 있다.
항공사는 정부와 국제민간항공기구로부터 정기적으로 안전 체계를 평가받고 이를 채우지 못하면 운항이 취소된다.
평가 결과는 모든 항공사가 공유하여 공동 운항 여부를 결정한다.
반면 우리나라 병원의 절반은 아직 안전 평가를 의무적으로 받지 않아도 된다.
평가 결과는 공개되지 않아 환자를 병원 간에 옮기는 데 유용한 자료로 이용되지 않는다.
항공사는 승객의 안전을 책임진 조종사가 피로·졸음 운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근무에 따른 휴식 시간을 정해서 철저히 따르게 한다.
비행 전 조종사를 대상으로 불시에 음주 검사도 한다.
병원 의사들은 응급 수술을 하느라 밤샘 당직을 해도 다음 날 다시 수술을 해야 하는 일이 빈번하다.
이에 대한 의료 비용 보상 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때론 전날 먹은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수술실에 들어가기도 한다.
고령사회가 될수록 병원에 입원할 날이 많고 수술받을 일도 있을 텐데 비행기 타는 정도의 믿음으로 병원 문을 들어서야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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