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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 건봉사

浮萍草 2013. 11. 26. 11:04
    승탑밭 한 가운데서 건봉사의 봄을 생각하다
    봉사는 안타까움이 짙게 배어 있는 절집이다. 그 단면은 절의 초입에 선 안내판에서부터 시작된다. 보통 일주문 근처에 놓이게 되는 안내판에는 사찰의 가람배치를 보여 주는 것이 일반적인데 건봉사의 안내판에는 배치도가 아닌 1920년대 건봉사의 모습이 사진으로 담겨 있다. 전국 4대 사찰이라는 칭호와 함께 31본산 가운데 하나였던 과거 사진 속 건봉사는 부속암만 18개를 거느리고 설악산의 신흥사와 백담사를 비롯해 양양의 낙산사를 말사로 거느렸을 정도의 거대한 사찰이었다고 한다. 그런 옛 모습이 요원해 보이는 이유는 현재 위치만 보아도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간다. 바로 지척에 휴전선이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 3년여 간의 한국전쟁 중 후반 2년의 전투는 휴전 협상 중 일어난 것으로 대부분 38선 부근에서 일어났다.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얻기 위한 치열한 전투가 전선 곳곳에 걸쳐 격전지를 만들었다. 그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텐데 그 한 가운데 자리했던 건봉사 역시 전쟁에서 유형적인 많은 것들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풍파의 세월을 거친 건봉사는 지금은 다가갈 수 없는 민족의 영산인 금강산 자락을 부둥켜안은 채 옛 영화를 꿈꾸고 있는 듯하다. 지속된 복원으로 어느 정도 가람도 갖추어 가고 있고 1980년대 후반까지 만해도 비포장도로에 민통선 북방에 위치하여 부처님오신날에만 출입이 가능했던 것을 지금은 시원스레 놓인 아스팔트 도로를 타고 마음껏 가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곳곳의 텅 빈 장소들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미 지을 터라도 반듯하게 준비해 놓았다는 생각으로 미래를 그려 보며 위안이라도 삼아야 할까.

    결국 지금의 이 시간들은 창건되고 1500년의 세월을 흘러온 사찰의 역사 속에서는 순간에 불과할 테니 말이다. 돌아 나오는 길에 승탑밭을 들렀다. 원래 경내에는 200여기의 승탑과 비가 흩어져 있었다고 하는데 한국전쟁 이후 많은 수가 도굴되고 지금은 남은 50여기를 모아 새롭게 자리를 마련한 것이라고 한다. 낮은 기와 담장 너머 고르게 잔디가 깔린 너른 승탑밭은 한 눈에 보아도 옛 건봉사의 위세를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탑과 비 하나하나에 깊이가 느껴졌다. 한 중간에는 나이 많은 산벚나무 두 그루가 힘겹게 서 있었다. 삶과 죽음이라는 멀고도 가까운 극한의 이면들 나는 늦가을 승탑밭 한가운데 벚나무 아래 서서 건봉사의 이른 봄을 생각하고 있었다.
    ☞ 불교신문 Vol 2963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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