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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시인 문정희 ‘삶 속의 시, 시 속의 삶’

浮萍草 2013. 12. 24. 06:00
    “시를 읽고 위로받는 건 작은 밴드로 심장병을 고치는 것과 같죠”
    
    마음 쉴 짬을 내기 어려운 시절이다. 
    쏜살같은 삶의 속도는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첨단기기가 등장하면서 되레 가속됐다. 
    이런 시대에 ‘시’는 어떤 의미인가. 
    경향신문 연중기획 ‘알파레이디 문화톡톡’ 10월 강연에서는 한국의 대표시인으로 손꼽히는 문정희 시인에게 삶 속의 시 시 속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 23일 경향신문사 5층 북카페에서 진행된 강연에서 주요 내용을 추려 소개한다.
    <문정희 시인이 지난 23일 경향신문 5층 북카페에서 경향 독자들을 만나 문학과 삶의 관계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그는 “상투에 길들여진 언어를 걷어내고 내면에서 솟아난 신선한 샘물을 만나는 것이 문학”이라면서 “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 자체가 자기 치유”라고 말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지구촌 시대, 노마디즘이라는 철학적 유목의 시대이다. 가볍게 인터넷을 터치하고 스마트폰을 손으로 조작하는 시대에 시가 과연 무엇인지 질문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집시’이자 ‘디아스포라’였던 나의 삶을 중심으로 얘기를 나눌까 한다. 공자는 국가의 불행은 시인의 행복이라고 했다. 재료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전쟁 무렵에 태어나 4·19혁명과 5·16 군사쿠데타, 10월 유신과 5월 광주를 거쳐 1997년 경제위기까지 겪었다. 미국 시인들은 “내 장난감은 탄피와 수류탄이었다”는 내 얘기에 무척 놀란다. 내가 시인의 원시체험을 한 것은 8살 무렵 할머니의 5일장을 치렀을 때다. 오래 울어서 다들 지쳤을 때 ‘곡비’라는 무당 같은 여성이 와서 같이 울어줬다. 이처럼 시인은 슬픈 사람의 울음을 대신 울어주는 존재가 아닌가 생각했다.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고 광주의 상급학교로 홀로 전학했을 때 나는 바리공주처럼 강물 한가운데 던져진 것 같은 고독감 속에 처음 시를 쓰게 됐다. 대학 때에는 제도의 억압에 눈떴고, 5월 광주를 겪으면서는 현실의 부당함을 직시하게 됐다. 결혼 이후에는 한국 여성의 억압된 삶을 체감했다. 문학이 무엇일까. 나는 ‘질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라는 주제를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 문학이다. 문학의 효용가치가 의심받는 시대지만, 문학은 언어가 있는 한 존재한다. 단순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과 문학을 아는 사람의 세계에는 큰 차이가 있다. 냉장고에 고기와 과일이 차있고 차고에 차가 있는 풍족한 삶이라도 내면의 갈증을 해소하는 문학 없이는 진흙탕을 헤매는 돼지의 삶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엄청난 속도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면서 물질주의에 매몰됐다. 텔레비전을 켜면 절반이 음식과 장수에 관한 얘긴데 구사하는 언어는 ‘담백하다’ 정도에 불과하다. 언어들이 반토막났다. 국민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문학이 꽃피겠는가. 그런데도 매년 노벨문학상 발표 때에는 촉각을 곤두세우니 난센스가 따로 없다. 문학 소재가 풍부한 환경이라도 좋은 작품은 저절로 나오지 않는다. 한국어에는 사유와 관념어가 없다. 사랑을 비롯한 한두 글자 외에는 형용사나 부사가 많다. 관념어는 다 한자어나 일본을 통한 굴절한자이다. 하지만 한 음절로 한 사물을 드러내는 우리말은 정말 아름답다. ‘새 별 꽃 잎 산 옷 밥 집 땅 피 몸 물 불 꿈 섬’(‘사람의 가을’ 중). 시는 현실을 반영한다. 20년 전에 썼던 시 ‘그 많은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는 여전히 유효하다. “학창시절 공부도 잘하고 특별활동에도 뛰어나던 그녀 여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도 무난히 합격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 사골을 넣고 세 시간 동안 가스불 앞에서 … 퇴근한 남편이 그 감자국을 15분 동안 맛있게 먹어치우는 것을 행복하게 바라보고 있을까”(후략).
    미국에서는 이 시가 유효기간이 만료됐다는 평가를 받고는 매우 부러웠다. 한국문학은 100년 동안 많이 발전했다. 참여냐 서정이냐 하는 논쟁을 거쳐 최근 미래파 논쟁까지 풍성하고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다. 하지만 균형없는 난삽한 시는 좀 더 많은 실험을 거친 뒤에 발표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폐적인 모습이 조기에 발표돼서 혼란을 불러오는 측면도 있다.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면서 문학의 보편성이 확대되는 반면 개성과 고유의 순결함은 서로 훼손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다만 모든 세계의 시인들은 삶과 자연과 생명을 노래한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시인은 자신의 내부에 화살을 겨누고 끊임없는 비상과 추락을 반복하는 혈족이다. 문학은 자라나는 산과도 같아서 정상에서 기뻐하려는 찰나 나의 발 밑에 영원히 오지 않는다. 문학의 산맥은 오만하기 짝이 없다. 젊은 시인들에게는 그저 시를 쓰되 돈을 무시하지도 말라고 말한다. 다만 돈이 언제 오는지 모르게 시를 쓰라고 조언한다. 돈을 멀리하라고 하면 되레 창작과 거리를 두게 된다. 상투에 길들여진 언어를 걷어내고 내면에 솟아난 신선한 샘물을 만나는 게 문학이다. 아무개 시인의 시를 읽고 위로받는 건 자그마한 밴드로 심장병을 고치는 것과 같다. 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 자체가 자기 치유이다. 거기에 문학의 기쁨이 있다.

    ▲ 톡톡 입문법
    “문학적 성장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
    
    문정희 시인은 “여류문학은 여성문학만 말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한국 전통시에는 여성적 어조가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 
    한용운은 남성시인이지만 여성의 목소리로 ‘님은 갔습니다’를 노래했고 서정주도 작품들에서 여성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1970년대에 등장한 여성 시인들의 작품에서는 이 같은 간드러진 어조가 없어진다. 
    이 무렵을 기점으로 한국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1969년 등단한 문 시인은“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적극적인 시도이건 우연이건 언어 자체에 있어서 생물학적 섹스가 아닌 정신적인 젠더를 획득하게 됐다”면서 “되도록 
    시에서 감성을 배제해왔다”고 말했다. 
    한국은 문학의 재료가 될 수 있는 사건들이 켜켜이 쌓인 사회이다. 
    하지만 소재와 체험이 풍부하다고 해서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 시인은 “문학적으로 나를 성장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을 통해 언어의 용량이 풍부해지면 삶이 풍성해지고 표현이 용이해진다. 
    그는 “많은 언어를 모으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는 독서를 하고, 기회가 있으면 세계 어디든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과 많은 상황, 또 많은 전통유적들을 보려고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유방이나 남근 같은 소재도 시에 등장시켰다. 
    이 같은 과감성은“누구의 시선을 끌자는 현혹주의가 아닌 시어의 당당한 선택”으로 1970년대 문학의 특징으로도 꼽힌다. 
    
    “사춘기 때부터 레이스 헝겁 속에
    꼭꼭 싸매 놓은 유방
    누구에게나 있지만 항상
    여자의 것만 문제가 되어
    마치 수치스러운 과일이 달린 듯
    깊이 숨겨왔던 유방”(‘유방’ 중에서)에 대해 이야기하고, “
    …
    꼿꼿한 기둥을 자르고
    천년을 얻은 사내가 있다
    기둥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사내가 된 사내가 있다”(‘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중에서)고 말한다. 
    그는 “1970년대 당시 한국 문단의 엄숙주의 때문에 소설가 최인호도 상업성 강한 대중작가로 매도됐지만 사실 그는 ‘타인의 방’을 통해 아파트 시대와 익명성을 예견한 좋은 작가”라고 평가했다.

    Khan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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