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달팽이 박사의 생명 이야기

넘치는 거름에 살충제까지 더하니… 해거리를 모르고 열매 맺는 요새 감나무

浮萍草 2013. 11. 10. 11:40
    이가 귀했던 어린 시절에 감잎을 접어 딱지치기를 했고 샛노란 감꽃을 알알이 실에 꿰어 주렁주렁 목에 매달고 다니다가 출출하면 텁텁하고 달착지근한 그것을 군것질 삼아 먹었다. 아낙네들은 감꽃 목걸이를 걸면 아들을 낳는다고 해서 목에 둘렀다. 어린 감잎은 따 말려 감잎차로 쓴다. 빠닥빠닥한 감잎은 달걀 모양이고 둘레에 톱니(거치·鋸齒)가 없다. 통꽃인 둥그런 종(鐘) 꼴인 감꽃잎은 4개이고 4∼7갈래의 꽃받침은 감이 익어도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열매 밑을 떠받친다. 퍼런 생감 도사리(다 익지 못하고 떨어진 과일)를 소금물 항아리에 넣어 타닌의 떫은맛을 삭인 것이 우린감(침시· 沈枾)이다. 땅바닥에 떨어진 홍시로 허기를 달래다 땡감(덜 익은 떫은 감)까지 마다치 않고 먹다 보면 거뭇거뭇 감물이 흰옷에 밴다. 이렇듯 풋감을 짓이고 으깬 떫은 즙(타닌)으로 무명천을 물들인 옷이 칙칙한 갈옷이다. 그리고 죽죽 검은 줄무늬 나는 나이 많은 '먹감나무'는 재질이 좋아 장롱 짜는 데 안성맞춤이다.
    필자는 이름 날리는'지리산 산청 곶감'이 나는, 감이 흔한 마을에 살았기에 여러 소중한 체험을 했다. 많이 나는 고종시(高宗枾)와 단성시(丹城枾)는 깎아서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쫀득쫀득하고 달콤한 곶감을 만들고 주먹만 한 대봉은 달달한 홍시(紅枾)를 만들고 아삭 아삭 맛나는 단감은 그대로 쓱쓱 베어먹는다. 후드득 떨어진 연시(軟枾)는 모조리 얼른얼른 주어다가 독에 차곡차곡 넣어둬 감식초를 만든다. 무서리가 내린다는 상강 무렵이면 우리 시골은 곶감 치기에 손길이 바빠진다. 감을 나무에 너무 오래 두면 말랑말랑해져 버리기에 때맞춰 장대로 감을 똑똑 꺾어 따야 하니 목이 빠진다. 어떤 고장에선 사람들이 감 껍질을 기계로 척척 깎고 곶감 건조기로 쉽게 말린다는데 우리야 언감생심 한참을 뱅글뱅글 돌려 벗기고 나면 손가락이 얼얼해지고 만다. 그러다 볼품없고 흠집 난 감은 통째로 얇게 저며 꾸덕꾸덕 말리니 그것이 감말랭이(감똘개)이다. 옛날에는 깎은 감을 대꼬챙이나 싸리꼬치에 꿰어 말렸다. 그러나 요즘은 감꼭지(꽃받침)에 실을 칭칭 매어 바람 잘 통하는 그늘에 줄줄이 뒤룽뒤룽 매달고는 고운 때깔 나게 하고 곰팡이가 번식을 못 하게끔 유황(硫黃)을 태워 쐰다. '곶감'은 '꼬챙이에 꽂아서 말린 감'을 뜻하니'곶다'는 '꽂다'의 옛말이란다. 또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맛있다고 곶감을 너무 많이 먹으면 타닌 탓에 변비로 고생한다는 경고를 담은 말씀이다. 감을 매단 지 한 보름 지나면 말랑말랑하고 입에 짝짝 감기는 반시가 되고, 이때쯤 꽃받침을 떼고는 둥글납작하게 손질하여 굳어지게끔 비람에 말리니 달포 지난 것이 건시(乾枾)다. 오래된 곶감에 핀 하얀 가루분은 포도당과 과당이 6대 1로 들었다고 한다. 숙취(熟醉·술에 흠뻑 취함)하면 입에서 홍시냄새가 나는데 우연하게도 숙취(宿醉·다음날 까지 남아 있는 취기) 깨는 데는 홍시가 으뜸가니 포도당이 많이 든 때문이다. 삶에 휴식이 있어야 하듯이 예전엔 감나무도 한 해 감이 열리면 이듬해는 쉬는 해거리를 했는데 요샌 퇴비거름 실컷 주고 살충제를 치는 까닭에 도통 해거리가 없다. 가지가지에 주렁주렁 한가득 매달린 진분홍빛 감나무에서 가을의 풍성함을 흠뻑 느끼고 우듬지에 달려 있는 너더댓 개의 까치밥에서 아름다운 나눔의 덕행(德行)을 깨닫게 되는 계절이다.
    Chosun         권오길·강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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