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달팽이 박사의 생명 이야기

위대한 김치, 알고보면 유산균이 부린 마법… 물김치·깍두기 담글땐 풀 쒀 '밥' 줘야 발효

浮萍草 2013. 12. 7. 12:30
    우내 먹을 김장 하느라 집마다 온통 북새통이다. 
    김장은 침장(沈藏)이 어원이다.
    김치도 침채(沈菜)→딤채→김채→김치로 바뀌었다고 한다. 
    금강초롱이나 열목어가 한국 특산종이듯 김치도 우리 고유 음식이며 김치 발효의 주인공은 세균(박테리아)의 일종인 유산균(乳酸菌·젖산균)이다.
    김칫거리는 배추나 무가 주지만 열무·부추·양배추·갓·파·고들빼기·씀바귀 등 일흔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무를 숭덩숭덩 썰어 채를 치고, 마늘·부추·파·생강·고춧가루·소금·간장·식초·설탕·조미료 등등 갖은 양념은 기본이고 곁들여 아미노산이 그득한 멸치젓·어리굴젓·
    새우젓에, 비타민·무기염류가 담뿍 든 호두·은행·잣·홍시 같은 과일 종류와 갈치·생태·대구·가자미 생선에 쑨 풀까지 넣는다.
    조선일보 DB

    김치는 마냥 푸성귀 절임 정도가 아니고, 고른 영양소에 유산균까지 망라한 종합 영양 식품이다. 세상 사람들이 홀딱 반할 만하다. 통배추의 노란 고갱이(배추속대)에 통소금을 설렁설렁 뿌려 소쿠리에 착착 쟁여놓아 밤샘하고 나면 알맞게 절여지면서 숨이 죽는다. 소금 먹은 배추를 맹물로 깨끗이 씻고 온갖 김장거리를 매매 버무린 김칫소를 배추 잎 한 장 한 장 들쳐가면서 속속들이 싹싹 문질러 집어넣고 퍼런 겉잎을 펴서 돌돌 감아 김치 그릇에 차곡차곡, 꼭꼭 눌러 담는다. 배추 잎사귀에 묻은 미생물은 짜디짠 소금에 거의 죽어버리지만 염분에 잘 견디는 내염성세균(耐鹽性細菌)인 유산균이 살아남아 김치 발효를 도맡는다. 김치를 김칫독에 넣고 김칫돌로 꼭꼭 눌러 담는다. 이는 김치에 사는 유산균이 산소가 있으면 되레 죽어버리는 혐기성세균(嫌氣性細菌)이기에 공기를 빼버리는 것이다. 김칫독은 유산균이 잘 번식할 수 있는 서늘한 응달에 묻는다. 따라서 김치는 과학이요, 손끝 매운 주부들은 정녕 화학자들이시다! 여기까지 아울러 보면 김치 유산균은 짠맛에 강하고 공기를 싫어하며, 저온을 좋아함을 알았다. 이제 젖산균이 신나게 불어나니 이때는 다른 미생물은 맥 못 추고 유산균만 득실득실 판을 친다. 말 그대로 유산균 세상이다. 김치가 곰삭으면서 유기산(有機酸)을 많이 내놓으면 특유한 감칠맛과 산뜻한 향이 생긴다. 발효하면서 생긴 이산화탄소는 김칫국에 녹아 탄산이 돼 톡 쏘는 맛을 낸다. 그런데 여기 김칫독의 유산균은 풀·설탕 등 먹을거리가 천지지만 맹탕인 물김치·열무김치·깍두기에는 꼭 밀가루·쌀풀을 쑤어 넣어야 한다. 이것이 유산균 번식에 쓰이는 배지(培地·medium)다. 농익은 김치에는 유익한 유산균이 99%요 딴 미생물이 1% 정도란다. 숙성한 김칫독 유산균이 어느 순간 시들시들 맥 못 추고 대신 여태 옴짝달싹 못하던 세균·효모가 득세하면서 군내 나고 골마지가 낀다. 일종의 부패다. 그러므로 아주 시어 빠진 묵은 김치에는 유산균이 도통 없다. 이제 우리나라 인구가 절반 넘게 아파트에 살지 않는가. 그리하여 땅에 묻은 김칫독 속 온도가 겨우내 변하지 않고 영하 1℃ 근방을 유지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흉내 낸 것이 김치냉장고다. 하긴 여느 발명품치고 필요의 산물에, 자연을 모방하지 않은 것 없다. 그렇다. 김치란 말만 들어도 이리도 침이 동하는 것은 분명 오랜 세월 이어온 조상의 숨결이 서린 김치 DNA 탓이렷다. 어릴 적에 먹어보지 않은 음식은 커서도 꺼리기 마련이니 자라는 아이들에게 김치를 자주 먹여 인이 박이게 해 줄 것이다. 김치 또한 귀중한 우리 문화유산이기에 말이다.
    Chosun         권오길·강원대 명예교수

     草浮
    印萍